그 속에서 다시 만난 어린 날의 나
사춘기 아이들과 마주할 때면,
나는 자꾸만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지금 아이들을 이해하는 열쇠가,
오래전 그때의 내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마음이 미궁처럼 복잡하게 느껴질 때면,
나는 내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세월은 흘렀고 세상은 달라졌지만,
사춘기라는 이름 아래 품었던 감정과 바람만은
여전히 닮아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키우며
오히려 그 시절의 나를 더 선명히 이해하게 되었다.
어릴 적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것이 특별하거나 값비싼 것이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이었다.
동생 둘과 할머니까지 늘 함께 지냈기에,
엄마를 온전히 독차지하는 건 쉽지 않았다.
단 하나, 내가 아플 때만은 예외였다.
엄마의 시선이 오롯이 내게 머물던 순간,
그 다정한 눈길이 나를 감싸주었고
그래서 아픈 게 그다지 싫지만은 않았다.
사춘기가 오자 세상은 조금 달라졌다.
가족보다 친구들이 더 좋았고,
비밀을 나누며 추억을 쌓는 일이 즐거웠다.
나는 혼자 피아노를 치고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며 감정을 표현했다.
돌아보면 내 사춘기는 혼란스럽기도 하고,
입시에 지치기도 했지만,
그 시절은 나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고
또 새롭게 발견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그때 읽었던 책을 다시 펼치거나,
그 시절 음악을 들으면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때의 설렘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함께하려 했다.
학원 대신 공연을 보고, 박물관을 다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나눴다.
캠핑을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여주고 싶어서
2주 동안 전국을 돌며 텐트를 치고
밤하늘을 함께 올려다보기도 했다.
별빛 아래에서 잠든 그 시간은 내겐 낯설었지만,
아이들에겐 오래도록 남을 추억이 되었다.
그 기억을 아이들이 아직도 꺼내 이야기할 때면,
마음이 괜히 벅차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자,
예전처럼 나와 다니려 하지 않는다.
대신 저마다의 세계 속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큰아들은 노트북 앞에 앉아 깊은 세계를 만들어낸다.
“엄마, 이번엔 심오하게 써봤어. 한번 읽어볼래?”
그의 글 속에는 늘 현실 너머의 도시와 미래가 있다.
처음엔 툭 던지듯 읽어주던 친구들이
이제는 먼저 기다려주고,
새로운 글이 올라오면 “재밌다, 다음은 언제 써?” 하며 독자처럼 반응해 준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웃으며 내게 자랑을 늘어놓는다.
글쓰기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아이의 작은 무대가 되어가고 있다.
둘째는 밴드부에서 일렉기타를 연주한다.
“엄마, 이문세 ‘붉은 노을’ 알아?” 하고 묻는 얼굴은
햇살처럼 환하다.
합주가 잘 된 날이면 땀에 젖은 티셔츠 그대로 집에 돌아와, 손가락이 얼얼하다면서도 기타를 놓지 못한다.
앰프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이는 흥얼거리며 기타 줄을 다시 튕겼다.
그 얼굴에 번진 웃음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마친 가수처럼 환했다
언젠가 반짝이는 조명 아래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게 될 날을
나도 셀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나는 잔소리 많은 엄마다.
“공부는 언제 할 거니? 숙제는 다 했니?”
말끝마다 잔소리를 달고 살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때의 나처럼,
지금의 아이들도 그저 이해받고 싶고,
자신만의 빛깔로 살아가고 싶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아이들은 지금의 시간을 힘겹게만 느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이 순간을 돌아보며,
행복하게 추억하게 되리라 믿는다.
나와의 거리는 조금씩 멀어지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줄어들겠지만,
그건 성장의 당연한 과정이니까.
다만 바라는 건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