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사이로 흘러든 궁궐의 바람

도시 속 작은 여행에서 찾은 배움

by 유혜빈



초등학교 앞 골목에는

언제나 학원차가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차 문이 열릴 때마다 아이들은

무거운 가방을 다시 메고 뛰어올랐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괜찮을까. 우리 아이들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그 불안은 늘 마음 한편에 있었지만,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많이 시키는 대신,

스스로 호기심을 키울 시간을 주는 것.

학원 대신 함께 읽고, 함께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길을 선택했다.


서울은 아이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배움의 길로 가득했다.

궁궐의 처마 밑에 울려 퍼지던 해설사의 목소리,

박물관 전시실에 메아리치던 끝없는 질문들,

자연사박물관의 커다란 공룡 앞에서 빛나던 눈빛까지.


주말이면 우리는 도시 속 여행자가 되었다.

아침이면 작은 간식을 가방에 넣고 서둘러 버스를 탔다.

돌아올 때면 다리는 천근만근이었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하루의 장면들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 시절의 주말은 공부가 아니라

함께 떠나는 작은 여행이었다.


같은 전시실이라도 해설사가 달라지면

이야기는 늘 새로웠다.

경복궁 단청 무늬 속에 담긴 조선의 철학,

근정전 앞마당 돌비석에 새겨진 서열의 무게,

덕수궁 석조전 앞에서 마주한 낯선 서양 문물들.


책 속에서만 보던 역사가

그 순간, 아이들의 눈앞에서 숨 쉬듯 살아났다.


과학관에서는 거대한 공룡 뼈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한참을 바라보던 아이는 조용히 물었다.

“공룡은 다 사라졌는데 왜 뼈만 이렇게 남아 있는 걸까?”


별자리 체험실에서는

까만 천장에 쏟아지는 빛을 올려다보며

“저 별들을 우리 집에서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그 눈빛에는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설렘이 담겨 있었다.


질문은 끝이 없었고, 해설사의 설명이 멈춘 뒤에도

머릿속에서 다시 이어지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려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늘 서점에 들렀다.

아이는 방금 본 주제의 책을 들고 창가에 앉았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은 분주했고,

저녁빛이 물드는 창밖 풍경과 책 속 그림이 겹쳐 보였다.


그렇게 박물관과 과학관은 지루한 공간이 아니었다.

호기심이 자라는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키운 건 사교육이 아니었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찾는 힘.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 배우던 시간들이었다.


나는 언제나 처음 듣는 학생처럼 귀 기울였고,

아이들의 질문 앞에서

함께 고개를 갸웃거리며 길을 찾았다.

서점의 책장, 도서관의 책상은

아이들에게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교실이 되어주었다.


가르치려던 내가, 결국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있었다.

같은 장면을 바라보고 같은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부모와 자녀를 넘어 배움의 동료가 되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은 결핍의 시간이 아니었다.

돈으로 채울 수 없었던 만큼,

우리는 시간과 마음으로 배움을 채워갔다.


궁궐의 돌계단, 과학관의 별빛, 역사박물관의 사진,

도서관 책장의 종이 냄새까지—


그 모든 것이 우리 가족의 교실이었고,

책장 사이로 스며든 궁궐의 바람처럼,

아이들의 눈빛 속 별빛처럼,

아직도 내 안에서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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