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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Apr 25. 2022

단상 4

1. 

소리에 민감한 편이다. 누군가 생각나는 날이면 그의 입으로 흘러나왔던 목소리가, 극세사 침구와 그의 얼굴 사이로 새어 나왔던 숨소리가 선연해진다. 고르고 길게 호흡하던 모습. 소소하고 귀중했던 삶의 한 장면. 그것을 한참 곱씹다가 –했더라면, 하고 발음하는 날도 종종 있었다.      


2.

바닷소리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강문의 파도 소리는 해운대의 것과 다르고, 해운대의 소리는 만리포의 것과 다르다. 구름의 정도, 그날의 대기압, 기온과 수온, 여타의 영향도 물론 있겠지만 오늘은 사람이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3. 

파도에 자갈 굴러가는 소리를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는 가보기로 해놓고 가지 못한 곳이 많았다. 나는 갖가지 이유를 둘러대면서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만큼 발길을 막을 정도의 것들이 아니었다. 그만큼의 무력을 가진 것들은 대개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나를 무너뜨린 것들은 평범해 보였기 때문에.      


4. 

누군가를 억울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거나, 가슴을 찢었다거나, 얼마간 무너지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설친 적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아침이 다 되어서야 잠들었고,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한 번씩 돌이켜보게 되었다.     


5.

나는 바다에 서 있을 적마다 고개를 죽 둘러 자갈을 찾아보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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