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집에서 혼자 먹는 밥
한참 남편이 야근으로 바쁠 때 평일 저녁은 혼자 먹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집에서 혼자 먹을 때는 귀찮아서 대충 먹게 된다. 아예 안 먹게 되기도 한다. 자꾸 밥을 먹지 않으니 신체와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혼자 먹을 때는 오히려 더 공들여서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식사를 내 입맛에 맞게 준비하는 것이다. 플레이팅과 식기도 신경을 쓴다. 식기세척기에 넣을 수 없는 금테 두른 접시를 사용해서 한껏 멋을 내기도 한다.
제일 선호하는 음식은 파스타이다. 파스타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플레이팅을 했을 때 별다른 게 없어도 식탁이 풍성한 느낌이 든다. 한 그릇만으로 완전한 느낌이 든다. 간단한 재료만 있어도 완성할 수 있는 파스타를 선호한다. 마늘만 있어도 알리오 올리오가 가능하고, 운 좋게 파슬리가 있으면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 나온 스칼렛 요한슨 파스타를 해 먹을 수 있다. 나는 간이 센 파스타를 좋아한다. 그래서 혼자 먹을 때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소금을 팍팍 넣어 먹는다. 건강이 조금 염려되긴 하지만 매일이 아닌 한 끼 정도는 맛에만 초점을 맞춰도 괜찮으리라 본다.
다음 음식은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해 먹는 요리이다. 바로 야채 카레이다. 남편과 먹는 카레에는 깍둑썰기를 한 소고기가 들어간다. 그렇지만 나 혼자 먹는 카레는 야채로만 끓인다. 파스타와는 달리 만드는 시간도 꽤나 오래 걸린다. 양파에 가염 버터를 넣고 약불로 익힌다. 양파가 갈색으로 변하고 뭉근해질 때까지 가끔 타지 않게 저어준다. 이 시간은 마치 명상을 하는 것과 같다. 은은하게 졸아드는 양파와 만난 버터 냄새가 나의 명상을 즐겁게 해 준다.
마지막 음식은 정말 귀찮을 때 해 먹는 조합이다. 요리가 아니라 조합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만드는 방법이 간단하다. 토스트기에 구운 노릇노릇한 식빵 위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딸기 등 과일을 잘라서 올린다. 들인 노력에 비해 훌륭한 맛이 난다. 거기에 예쁜 컵에 부은 주스를 곁들이면 나름 근사한 저녁이 된다.
혼자 먹는 밥은 조금 쓸쓸할 수 있지만 온전히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만드는 순간에는 레시피에만 집중하면 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순간에는 화난 일도 짜증 난 일도 생각나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원하는 맛만 만들어내면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혼자 먹는 밥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먹는 밥만큼 소중하고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