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탈리아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랜드 바자르의 중앙광장이었다. 있다고만 들었던 그곳이 실제로 있었다. 눈이 부실만큼 빛나는 의상을 입은 그랜드 바자르의 군중들. 정중앙에 거꾸로 박힌 거대한 원뿔 나팔. 그리고 울리는 탈리아의 노랫소리. 그 소리에 사람들은 넋을 잃은 듯 원뿔 나팔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손이 닿을만큼 가까워질때면 사람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었다. 얇은 거미줄에 걸린 나방들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 채, 거미만을 바라봤다. 베야도 그 무리에 동참했다.
군중들은 원뿔 나팔을 중심으로 끝없이 몰려들었다. 탈리아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베야는 그 소리가 좋았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듣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현기증이 났다. 베야는 몇번이나 무릎을 꿇었다. 베야의 뒤를 따라오던 람바 할아버지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탈리아의 노래가 맘추었다.
“영원한 노래는 없다는 듯.”
혹은 낮은 이들에게 들려줄 유희는 이것이 전부라는 듯 탈리아는 노래를 멈추었다. 그러자 광장에 빼곡히 모여든 이들은 일제히 흩어졌다. 누군가는 그것을 해방이라 불렀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베야는 뒤로 내달리는 사람들의 발에 치여 몇 번이고 몸을 휘청였다. 겨우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건 람바 할아버지의 등 때문이었다. 넓고 거대한 등. 그것이 베야를 지켜주었다.
"또 이런 곳에 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람바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베야는 몸을 일으켰다.
"엄마래요. 할아버지."
람바 할아버지는 답답하다는 듯 베야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게 다 뭐냐. 세상에 그런 것은 없어."
베야는 손을 뿌리쳤다.
"왜 없어요? 저기 있는데."
베야가 가리킨 곳에는 원뿔 나팔이 있었다. 그곳에서 한 여인이 탈리아의 귀에 닿는 거대한 나팔에 소리치고 있었다. 여인은 그 앞에서 기도하듯 무릎을 꿇은 채 울기 시작했다. 거대한 원뿔 나팔 안으로 그녀의 침과 눈물이 흘렀다. 그것 역시 탈리아의 귀에 닿으리라. 베야는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람바 할아버지는 그런 베야의 걸음을 지켜볼 뿐이었다. 가까이 서 본 여인의 손에는 힘줄이 잔뜩 솟아 있었다. 건조하게 마른 손톱은 하나 둘 조각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팔에는 아무런 생채기가 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인은 뭔가 계속 입을 벌리고 말을 하는데 베야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원뿔 나팔. 아니, 탈리아의 귀가 여인의 목소리를 한 호흡에 빨아들인 것 같았다. 베야는 웅크린 여인의 뒤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입을 벌려 말을 건넸다. 또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혀와 입술은 움직이는데 소리가 나질 않았다. 베야는 힘을 모아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숨만 터져 나왔다. 베야가 걸음을 멈췄다. 여인의 바로 뒤였다. 베야는 왼손을 여인의 어깨에 올렸다. 가죽은 애당초 없었다는 듯 어깨뼈가 느껴졌다.
"베야."
베야는 깜짝 놀라 손을 뗐다.
“엄마...”
베야가 말했다. 들리지 않았다. 여인의 흐느낌이 멈추었다. 베야는 여인의 대답을 듣기 위해 옆으로 발을 떼었다. 그 순간, 여인의 팔이 베야의 걸음을 막았다. 베야는 멈춰 섰다. 여인은 웅크린 몸을 펴며 천천히 나팔에서 입을 떼었다. 광장에 다시금 바람이 불었다. 돔으로 된 천장과 두꺼운 벽, 그리고 거대한 문으로 막힌 광장 안에 바람이 닿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바람이 불었다. 그건 진실이었다. 바람에 여인의 옷자락이 날렸다. 그건 증거였다. 여인은 허리를 곧게 폈다. 그러자 지하 깊숙한 곳에서부터 노랫소리가 터지듯 올라왔다. 탈리아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시장의 목소리였다. 그 아찔한 시간의 소리에 베야는 현기증이 올라 무릎을 꿇었다.
“베야, 나의 베야.”
여인의 목소리였다.
"왜 여기에 왔니?"
서서히 바람이 잦아들었다. 여인의 흔들리던 옷자락도 가라 앉았다.
"네가 여기에 있으면 이 엄마는 돈을 받을 수 없는 걸?"
여인의 몸을 감싸던 비단이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그러자 언제 따라왔는지 짓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팔겠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짓은 그것을 집어 갔다. 그래도 되는 곳이었다.
그랜드 바자르는.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