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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희 May 26. 2020

나는 죽을 때까지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아름다움에 대하여


나는 나이가 들어도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죽을 때까지 아름답게 살고 싶다. 매력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다. 자신에게만 있는 이렇다 하게 말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자질, ‘스타일’이다. 얼굴은 주름지고 흰머리로 덮히어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은 이미 사라졌을 지 모르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누군가가 사랑을 느낄 정도의 매력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과 나이를 떠나 인간은 죽는 날까지 생기있는 아름다움을 지닌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단정하고 곱게 꾸미는 것도 중요하다. 젊은 시절처럼 무엇을 입어도 아무렇게나 차려도 멋지던 나이는 지났다. 가끔 모임에 나가 아직도 멋지게 차려 입고 나와 .노년의 패션아이콘이 되는 사람들을 보면, 나 자신도 기분이 좋아지고, 모두들 함께 생기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비싸고 화려한 것보다는, 소박하게 자신에게 어울리는 차림이 더 좋다. 더구나 은퇴 후에는 대단하게 차려 입고 갈 곳도 별로 없고, 두리뭉실 해진 몸매에는 무엇을 입어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이므로 옷이나 장신구에 비싼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더더구나 우리 나이엔 명품 백이나 어느정도 값나가는 옷 정도는 입어야 한다는 세간의 속설에는 결코 신경 쓰고 싶지않다. 외모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늙어가고 싶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몇 년 전에 어느 하루 교육을 받으러 수녀원에 있는 교육관에 갔던 날이었다. 그 전 날 눈이 많이 와서 눈으로 하얗게 쌓인 수녀원 앞마당은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무언가를 가지러 차로 가는 중이었다. 수녀님 한 분이 눈이 쌓인 정원을 가로질러 으는 것이 보였다. 지나치며 목례를 하려고 수녀님의 얼굴을 본 순간, 아!~ 하는 탄성이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울렸다. 희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고혹적이기까지 한. 검은 수도복에 쌓인 아름다움! 하얗게 눈 덮힌 수도원 마당에서의 순간적인 충격!


그 수녀님은 노인이었다. 일흔도 넘어 보이는, 그런데도 고아하고, 고혹적이기 까지 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고 하얀 눈과 검은 수도 복에서 오는 착시 현상이었을까? 교실로 돌아와서도 잠시 그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좀 시일이 지나, 어느 신부님의 강론에서 그분이 그때 이미 90이 넘었었고 몇 개월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생전에 100세연을 하셨다고~

그 신부님은 웃으면서 “예쁜 사람은 100살에도 예뻐요” 하며 그 수녀님 얘기를 하셨지만 나는 속으로 “참으로 그렇다!”고 감탄했다. 정말 그 수녀님은 100살에도 예뻤던 것이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젊은 시절의 화려했던 아름다움이 스러질 때 비로소 우리는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진정한 빛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여러 신부님들이 ‘봉쇄수녀원에 계신 수녀님들이 다들 그렇게 아름다우시다’고 하던 말씀을 기억해냈다. 무성했던 나뭇잎들이 다 떨어지고 나면, 나무 사이로 들이치는 햇빛의 눈부신 아름다움이 보이는 것이다. 나는 이일로 나의 우당탕하고 덤벙대는 성격을 바꿔서, 기품 있고 사려 깊은 사람이 되어, 아름다운 노년의 단아함을 지닌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오드리 헵번을 ‘로마의 휴일’에서 처음 보았을 때 어쩌면 저렇게 예쁜 여자가 있는가 하고 그 인형 같은 모습에 경탄했었다. 사춘기였던 나는 그녀의 브로마이드 책받침을 쓰기도 했었다. 그러나 오드리 헵번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로마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빛을 발했다. 그녀는 아름다움으로 한 시대 전 세계 남자들의 로망이었지만 그것이 하루 해면 시들어 버리는 풀꽃과 같은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있었으며 정의와 진리의 편에 서서 싸워왔었다. 오랜 동안 유니세프 친선대사 이였으며, 암 투병 중이던 기간에도 기아와 질병의 나라 소말리아를 방문해 전 세계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내가 수십 년 만에 아프리카에서의 주름 잡힌 평범한 할머니 같은 얼굴의 그녀 사진을 보았을 때,처음에는 사실 다소 놀랐었다. 세월의 무상함에 쓸쓸하기 까지 했다. 그러나 다음순간 여배우로서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외모 가꾸기의 열풍에서 벗어나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 그녀의 얼굴에서 그녀만의 빛나는 개성과 아름다움을 느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타일’은 ‘패셔너블‘을 뜻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전에 의하면 ‘스타일’이란 ‘대단히 뛰어난 자질’로도 정의 되어있다.. 나는 그 뛰어난 자질이란 세상과 다른 사람의 세속적인 시선과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자유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는 능력,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조용하고 평온한 침착 함은 그녀의 깊이 있는 정신력과 인격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늙어서도 여전히 나의 아름다움의 멘토로 남아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겉모습도 변화시킨다. 나이 때문에 외모는 그늘이 생기고 빛을 잃을지라도, 인간에게는 젊음이나 화려한 외모 이상의 것이 있는 것이다. 기품 있고 우아한 태도와 마음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끄는 고상한 아름다움이다. 그런 사람은 몸 전체에서 밝은 빛이 난다. 노년에는 그 밝은 빛을 찾아서 내면의 아름다운 정신세계로 좀 더 깊이 빠져들어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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