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부의 아내입니다
입동이 지났다.
바닷일을 시작하고 처음 맞는 겨울. 이 계절 바다 한복판에서 맞는 바닷물은 얼음 조각 같다는 다른 뱃사람 선배님의 말씀도 있었고, 따뜻하게 좀 입고 다니라는 이웃 형님의 말도 있었다.
패션의 조예가 깊은 것과는 다르게 일을 시작할 때마다 작업복 컬렉트를 시작한다. 그렇게 지난 직장에서 입던 옷만 한 보따리 정리를 했는데 또다시 옷장을 채우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계절 별로 작업복은 당연히 달라야 하기에 내의부터 티셔츠, 기모의 유무, 아우터, 조끼, 기타 모자와 같은 액세서리류까지 살림살이가 슬슬 또 늘어가고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이 옷 어때?” 라며 메시지가 온다.
실제로 나는 옷을 구매할 때 오래 고민하는 편은 아니라 조금 귀찮기도 하고 워낙 온라인 쇼핑으로 물건을 고르는 일을 피곤해하는 탓에 아이들 쓰던 물티슈나 기저귀도 남편이 주로 주문을 했었는데 이제와 옷을 골라준다고 들여다보려니 너무 정신이 사나워져서 힘들었다. 결국 내가 골라준 스타일은 너무 나이가 들어 보인다며 패스. 작업복에도 이렇게나 신경을 쓰나 싶었는데, 나라도 그랬을 터이니 금방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3만 원 대 패딩을 사고, 집 근처 오일장에서 기모 티셔츠를 각 만원에 깔별로 두 벌을 샀다. 이게
뭐라고 내심 신나 있는 것 같기도 하게 역시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장비부터 갖추고 시작하는 게 중요한 한국인 맞는구나 싶었다.
뱃사람은 보통 장화가 달려있는 우의를 입고 작업을 한다. ‘삼*우의’가 국산이기도 하고 그 이상의 선택지가 없어서 거의 독점하고 있는 듯했다.
동네 신발가게에서 우의를 판매하고 있는데 인터넷 가격이랑 차이가 없어 종종 구매하러 가면 사장님께서 꼭 푸념하신다. “물건이 이 집 밖에 없어서 우리도 이거 팔면 남는 게 별로 없어요.”
비슷한 품질에 선택지가 여러 개라면 가격 경쟁이 가능할 텐데 고작해야 중국산과의 경쟁이니 단연 독보적일 수밖에……
우리는 인터넷가 만큼 저렴하게 사서 좋았지만, 블루오션이 여기 있었네 싶어 “우의 만들어 팔아야겠네요. 사장님!” 하며 너스레를 떨었더니 “재주 있으면 좀 만들어 보이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허허
남편이 어부가 되고 나니 관찰하기 좋아하는 나는 다른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는 게 흥미로웠다. 옷가게는 외출용 옷만 파는 곳이다 싶었는데, 작업복만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들도 있었다는 게 새삼 놀랍고, 의외로 수요도 많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작업복에는 소위 냉장고 바지부터 남방, 조끼, 하이넥 집업(목이 타지 않도록) 등 다양한 종류와 디테일에 신경 쓴 제품들이 많다는 사실까지……
그중 스테디셀러는 뭐니 뭐니 해도 밀리터리룩인데 군인 출신인 남편은 그래서인지 밀리터리룩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겨울이 되어 기모가 들어있는 작업복을 구비하긴 했지만 바로 입을 수는 없었다. 작업을 하다 보면 너무 더워지는 탓에 기모를 입어버리면 옷을 벗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래서 한겨울까지 조금 아껴두는 모습이다.
운동복도 점점 진화해서 다양한 디자인에 소재도 좋고 가격은 더 좋은 제품들이 쏟아지는데 어부의 작업복은 그 수요에 못 미쳐 고르는 재미가 있지는 않지만, 요즘은 취미생활이라는 게 삶의 당연한 콘텐츠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낚시, 캠핑하시는 분들 덕에 작업복을 고르는 폭도 조금은 넓어지는 것 같다. 그렇게 방한, 방수 바지를 구매했다.
어쨌거나 남편의 작업복 컬렉션 때문에 나의 미니멀라이프는 또 한 걸음 멀어져 가지만, 그 덕에 맘 편히, 몸 편히 일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오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