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더 이상 부서지지 않도록

by 발자꾹

몇 날 며칠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친 화요일 아침, 다시 그녀들이 만났다.


추석 때문에 한 주 쉬었을 뿐인데, 마치 한 달은 못 만난 것처럼 그녀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KakaoTalk_20251014_133920671.jpg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 보니 떡을 거의 다 먹어 버렸다. 일주일 만에 만나니 인증 샷도 깜빡할 뻔...


누군가 깨송편을 가져왔다. 달달한 송편에 커피를 곁들이며 수다는 자연스레 이어졌다. 금목걸이를 세탁기에 넣었다가 조각조각난 잔해로 돌아온 사건, 명절 전날 북적이던 시장 풍경, 머리를 손질하느라 미용실에서 보낸 긴 시간, 피곤해서 챙겨 먹기 시작한 알부민과 알로에 영양제 이야기까지. 누군가는 “남편이 너무 보고 싶어 해서”라며 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어쩔 수 없이 두 번째로 봤다고 했다. 처음엔 그저 불편했는데, 다시 보니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에 감탄했다고 했다.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면 여전히 불편하지만, 몰입하다 보면 곳곳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고.


긴 명절 동안의 피로와 해방감이 교차하는 대화는 시누이와 올케의 관계, 명절 예절의 경계로 흘러갔다. “서로 친정에 가는 게 맞다”는 결론이 나왔다. 서로 존중하자는 것, 그것이 명절 뒤에도 남는 마음이었다.


긴 연휴에도 모두가 쉬어가지는 못했다. 누군가는 오랜만에 잘 쉬었다 했고 또 누군가는 골프를 치며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연휴 중간에 일하러 가야 했고, 또 다른 이는 제사와 동인지 퇴고 작업으로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연휴 막바지에 보일러가 터져 황망했다는 이야기에선 모두 걱정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아파트도 걱정이야.”라며 낡은 아파트의 문제점을 저마다 하나씩 보탰다.



자연스럽게 아파트 층간 소음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오늘의 책 『비스킷』으로 넘어갔다.


『비스킷』 글 김선미. 위즈덤 하우스. 청소년 소설.

부평구 2025 올해의 도서

KakaoTalk_20251014_133920671_01.jpg


누군가 최근 일어난 엘리베이터 칼부림 사건을 꺼냈다. 층간 소음으로 시작된 비극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그래도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텐데.” 의견이 갈렸다. 하지만 윗집과 아랫집 서로 조금씩 존중해 주었다면 비극을 막았을 것이라며 모두 안타까워했다.


"비스킷"은 존재감이 사라지는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점점 투명해져 가는 사람들, 그 부서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년 제성은 그들을 구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라며 이상한 눈길을 보낸다. 부모님은 제성을 정신과에 입원시킨다. 남들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제성도 답답하지만 사라져 가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가 없다.


주인공 제성(齊聲)의 이름은 말 그대로 여럿이 일제히 소리를 지른다는 뜻이지만 크게 소리 내어 우는 소리를 뜻하기도 한다. 비스킷이 울며 나직하게 우는 소리와 그 소리가 크게 울려 제성의 귓가에 들린다는 의미일까?

그녀들은 비스킷의 단계를 함께 짚었다.

1단계, 반으로 쪼개진 상태. 존재감이 별로 없다.
2단계, 조각난 채 흐릿해진 상태. 상태. 반 정도는 옆에 있어도 알지 못함. 흐릿해진 사람.
3단계, 부스러져 사라지기 직전의 상태. 존재감이 없어 사라지기 직전. 투명인간과 비슷.


누군가는 존재가 사라지는 사람을 부서지는 비스킷에 빗대어서 글을 이끌어가는 작가의 창의성이 기발하다며 엄지 척을 했지만, 다른 그녀는 소재는 독특하지만, 판타지라고 하기엔 아쉽고 현실성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토론은 이어졌다.

“제성의 능력은 선물일까? 저주일까?”

누군가는 제성의 능력은 소명이라고 했다. 답답하고 불편하지만 누군가를 외면할 수는 없기에 선물이나 저주보다는 소명에 가깝다는 것이다. 또 누군가는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너무 큰 고통이라고 했다.


“조제처럼 가족에게 외면받거나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나?”

저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대식구로 살며 엄마의 관심을 받지 못했기에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던 아이, 엄마의 인정을 받으려 우등생이 되어야 했던 아이, 오빠와 동생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잃어가던 아이. 하지만 그녀들은 이제 다른 이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정도로 어른이 되었다.


제성의 윗집에 이사 온 조제는 층간소음이라는 불편한 진실 덕분에 제성이와 알게 된다. 제성이의 지대한 관심으로 조금씩 자신감을 찾는다. 그녀들 보다 한 발 더 나간다. '너무 힘들다고, 언니랑 동생만 보지 말고 자신도 보아달라고' 부모에게 외치고 존재를 드러낸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처럼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준비가 되어 있다면 더 밝게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제성과 친구들은 존재가 부서져 가는 사람들을 구하러 달려간다. 혼자서는 어렵지만, 함께라서 가능하다. 제성, 효진, 덕환, 조제. 제성이와 친구들 덕분에 다시 세상에 나와 이름까지 얻은 희원이. 아이들은 모두 이름이 있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그저 엄마, 아빠, 이모, 박 간호사, 여사님 그렇게 이름 없이 통칭된다. 어른들은 그저 방관자 이거나 조력자일 뿐이다. 일을 해결하는 건 아이들이다.


그녀들은 잠시 숙연해졌다.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기다려주지 못했던 과거의 일들이 떠올라 미안했다. 짧은 이야기지만 우리를 뜨끔하게 해 주었다. 진짜 어른의 역할은 무얼까? 언제나 어려운 아이들 곁을 묵묵하게 지켜주는 김장하 선생님과 송원섭 신부님을 떠올리며 그녀들의 마음과 눈가가 촉촉해졌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그녀는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자신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늘 고민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들은 애쓰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녀들을 매번 성장시켜 주는 이야기 이야기.

명절 피로와 일상의 무게 속에서도, 이렇게 화요일마다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비스킷

#김선미

#화요일의그녀들

#존재감

#함께사는세상

#친구

#존중

#자존감

#어른의역할


*다음 주 10월 21일에는 김민서의 『율의 시선』을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두 번째 청소년 소설이다.

keyword
이전 11화이번 주 "화요일의 그녀들!"은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