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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패밀리앱 아들이 관리합니다

by 그리다 살랑 Jan 02. 2025

며칠 전 구글 계정 안된다고 포효하던 그 놈이다.

한밤의 구글소동


나는 기계치에 천생 문과, 아니 예체능과다. 하나님이 내게 숫자나 기계, 논리 쪽 뇌세포는 빠뜨리신 것이 틀림없다. 처음부터 주시지 않았으니 개발 혹은 개선이 불가능하다. 혹시 주셨다면, 흥미가 없으면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ADHD까지 같이 주셨기 때문에 이건 내가 어찌할 수가 없다.


남편은 이과다. 논리가 없는 걸 힘들어한다. 근데 논리 없는 나랑 결혼했다는 것이 당신의 가장 큰 무논리입니다. 연애할 때 내가 통통 튀고 유쾌해서 좋았다면서 지금은 언제까지 튀기만 할 거 냔다. 남편은 대문자 T인지라 대문자 P인  섭섭한 적이 많았는데 연애할 땐 츤데레 같아서 나도 그게 좋았다지. 여하튼 를 낳았는데 성향이 천 프로 만 프로 즤 아빠다. 4 즈음었나 로봇 변신을 해달라고 다. 성별이 아들이란 걸 알았을 때 우려했던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아빠가 있을 때 조립도 변신도 어떻게 하는지 알려다. 알긴 아는데 혼자 하려니 요령과 힘이 부족했나 보다. 이놈에 로봇들은 왜 자꾸 변신을 해대는지, 로봇이 왜 자동차가 되는 것인가. 그냥 로봇 따로 자동차 따로 만들면 되지 합쳤다가 풀었다가 쌩 난리 아니다.


- 어디를 눌러야 된다고? 여기? 왜 안돼? 여길 잡고 빼라고? 안 빼지는데?

- 아니! 여길 잡고 이걸 빼라고! 이렇게! 그리고 여길 이렇게 해야 하는데 이게 안된다고!

 

아이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한참을 끙대더니 그다음부터는 도움을 구하지 않고 혼자 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기댈 곳이 없어야 살 길을 찾 보. 내가 못해줌으로 아이가 스스로 하게 됐다고 좋아했는데, 아이는 이때부터 엄마라는 사람을 파악하고 서열을 정했는지도 모르겠다. 한밤의 구글소동이 있던 날도 혼자 한참 지랄을 떨다가 내게 왔길래, 왜 혼자 끙끙댔냐고 엄마한테 말하지, 했더니 "엄마가 할 줄 알아?"라고 해서 또 마음에 생채기를 낼 뻔했다. 예전의 나는 아이가 이렇게 말하면 를 무시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고 버릇없다며 화를 냈었다. 이런 태도가 아이 앞에서 권위가 없는 것임을 이제 알겠다. 아이는 그저 팩트를 말한 것이었. 물론 좀 더 상대방을 배려해서 말하긴 해야  것이다. 순간 욱하는 감정을 다스리고 "엄마가 요즘 패밀리 앱 깔아서 이렇게 된 거잖아. 그러니까 엄마가 같이 알아보면 도움이 될 수 있지."하고 말해줬다.


2학기 기말고사로 중학생 되어 첫 시험을 치르고 온 날이었다. 나름 수학엔 자신이 있었는데 한 문제를 틀렸나 보다.

- 엄마, 엄마가 이거 풀어봐.

- 야, 내가 이걸 어떻게 풀어? 난 예체능 쪽이야. 수학은 잘 몰라. 그리고 졸업한 지가 언젠데 그래.

- 아 그래, 이 문제는 엄마한테 어려울 거 같고. 그 윗 문제는 풀 수 있 거야. 진짜 한 번만 풀어봐. 공식으로 알아내야 하는 건 내가 써놨잖아, 그다음부터 풀어봐.

오기가 생긴 나는 그 문제를 풀어냈다. 못 풀까 봐 떨렸다(휴).

- 다 풀었다.  

- 오 그래도 풀었네?

- ... (맞을래?)


지난달 처음으로 아이가 용돈으로 게임 현질을 했다. 아빠가 미리 깔아준 토스를 이용하려고 하는데 내가 패밀리앱으로 토스사용에 제한을 걸어놨단다.

- 엄마, 핸드폰 내놔 봐.

- 왜?

- 엄마가 토스사용 제한 걸었대, 그거 풀게.

(건네준다) 손가락을 몇 번 촤촤촤 밀어대고 착착착 누르더니 내게 돌려준다.

- 야, 그거 네가 맘대로 결제하게 해 놓으면 어떻게 !

- 내가 결제할 때마다 엄마한테 문자 와.

- 그래?... 야 그거 함부로 막 사지 마라.

- 아, 그리고 오늘 주말이라 다운타임 풀어논다.

-......



권위적인 부모 말고 권위 있는 부모가 돼야 한다고 들었다. 아들에게 난 권위가 없는 것 같다. (같다?)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수학문제를 못 풀고 핸드폰 등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는 것 때문은 아닐 거다. 예전에 아이가 몇 번이나 말했다는데 나는 전혀 처음 듣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이는 그때 "엄마한텐 뭘 얘기할 필요가 없네! 기억도 못하니까"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이가 한 말을 기억해 주는지, 내가 뱉은 말을 분명히 지켰는지, 엄마로서 내 할 일을 분명히 하는지에 권위 여부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아침잠이 많은 나는 아침마다 아들이 나를 깨운다. 저녁에도 만날 내가 먼저 졸려서 헤롱거린다. 책 읽는다고 하고선 잠들어버린 적도 많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모습은 많이 보여준 거 같은데, 글 쓰고 있다고 하면 "그거 왜 써?" 열심히 그리고 있으면 "그거 왜 그려?" 도통 이해를 못 한다. 아마도 아들은 내가 매일 할 일 없이 놀고만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수, 금과 주일 그렇게 교회를 다니고 말씀을 요약하는데도, 교회는 자기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에 엄마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드나 보다. 아이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게 책임이 있을 게다. 말이 아닌 삶으로 신뢰가 되고 권위가 있는 부모여야 하는데... 난 그러지 못한다는 걸 자책 말고, 열등감 때문에 괜히 화내지도 말고, 내 부족을 인정하고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하. 부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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