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0204.
오늘은 24절기의 시작이자, 봄의 문을 연다는 ‘입춘(立春)’이다.
창 밖엔 여전히 칼바람이 불고, 아침 출근 길엔 코트 깃을 바짝 여며야 할 만큼 시린 겨울의 공기가 가득하지만 달력은 무심한 듯 벌써 ‘봄’을 알린다.
입춘(立春)이라는 말을 입춘(入春)이라는 말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도 그랬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입구(入口), 입장(入場), 입춘(入春).. 왠지 '봄에 들어선다'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왜 '들일 입(入)'자의 입춘(入春)이 아니고 '설 입(立)'자의 입춘(立春)일까?
우리 조상들은 특정 단어로 대상에 대한 사유를 그대로 드러냈다. '입춘(立春)'이란 글자에도 옛선인들의 철학이 담겨있다. ‘들어선다’(入)는 것은 특정 시공간에 ‘나’라는 존재가 들어가는 모습을 형상화 한 글자다. 반면 ‘봄을 세우다’(立)라는 표현은 조금 더 늘어난 햇볕과 따뜻한 동풍, 깨어나는 생명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시공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생동감이 그려진다. 그렇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이 다함께 봄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인 것이다.
입춘은 1년을 24절기로 나눈 '절기력'에서 첫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다. 계절의 변화를 다루는 절기력을 기준으로 보면 새해 첫 날인 셈이다. 봄이 선다는 입춘을 시작으로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의 봄과 관련된 절기들이 차례로 이어질 것이다.
입춘은 새해의 첫 절기인 만큼 옛사람들은 입춘부터 '진짜 새해'가 시작된다고 보았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이 때가 새로운 농사를 시작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농경의례와 관련된 행사가 많을 뿐 아니라, 다가올 일 년 동안 대길(大吉), 다경(多慶)하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의례와 풍속들도 많았다.
1.집집마다 입춘첩을 붙였다.
요즘엔 생경한 풍경이지만, 어렸을 적 시골 외갓집 대문에 붙어있던 입춘축츨 보았던 기억이 난다. 봄이 시작되었으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는 뜻으로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문구를 적어 대문 앞에 붙여 놓았다.
2.입춘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입춘을 맞아 음식을 만들어 먹는 풍습도 있었다. 입춘날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가 무쳐 먹거나 춘일 춘반(春盤)의 세생채라 하여 파·겨자·당귀의 어린 싹으로 입춘채(立春菜)를 만들어 이웃끼리 나눠먹었다.
3.점을 보고 운을 점쳤다
보리뿌리를 뽑아 뿌리가 3개 이상이면 풍년, 2개면 평년, 1개면 흉년을 점치는 보리뿌리점을 통해 한 해의 운수를 점쳤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 먼저 솥 밖으로 튀어 나가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믿는 점도 쳤다고 한다.
최근 열흘 넘게 날씨가 추웠던 탓일까?
왠지 '봄(春)'이라는 말만 들어도 괜시리 따스함이 전해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 입춘이라는 단어가 더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봄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체감하는 날씨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봄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이른 모습이다.
옛사람들은 계절의 시작을 온도가 아니라 일종의 이정표 개념으로 정의했구나 싶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지만, 우리가 봄을 향해 간다는 일종의 방향 표지판처럼..
생각해보면 일을 할 때도 늘 이런 순간이 존재했던 것 같다.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 어제와는 다른 국면으로 들어섰다는 신호 같은 것이 느껴질때가 있다. 상품이 매장에 깔리고 매출이 발생하는 화려한 ‘런칭’의 순간은 아직 멀었지만,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꺼내어 기획안의 첫 장을 만들고 사업의 골조를 세우는 시기. 남들이 보기엔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겨울’ 같아 보여도, 기획자의 눈에는 이미 그 골조 위로 피어날 꽃과 잎사귀들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순간이 있다.
‘소한’ 편에서 다루었던 겨울눈이 내부적인 축적의 시간이었다면, ‘입춘’은 그 축적된 에너지를 밖으로 꺼내어 구체적인 ‘방향(立)’을 정하는 시간이다.
여전히 춥지만 나는 오늘부터 봄이라 부르기로 했다.
현실은 겨울의 한복판일지라도 마음의 기둥을 봄 쪽으로 옮겨 세우는 것. 그것이 변화를 주도해야 하는 기획자의 자세가 아닐까?
오늘 나는 다이어리에 조용히 나만의 입춘첩(立春帖)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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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대길(立春大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