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어(質問語)탐구(3) - 어디(where)
'인간은 세계를 알아야만,
즉 오로지 세계를 자기자신 속에서
그리고 자기자신을 세계 속에서
인지해야만 자기 자신을 알게된다.'
_ 괴테 [자연과학론]
우리는 자주 '머무름'과 '떠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선택이 강요되는 것 보다는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선택의 기회를 살리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익숙한 안전지대에 머물 것인가?
새로운 여정을 떠날 것인가?
시인(구상)은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네가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라고 하고, 소설가(파울로 코엘료) 양반은 '네가 서 있는 그 자리 아래에 황금이 묻혀 있다'고 한다. 변혁가들은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입니까?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입니까? 당신이 아니라면 누구입니까?'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당신이 바로 그 곳을 변화시킬 리더'라고 우리를 설득하려 한다. 다 좋다. 그러나 무수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 그 자리를 변혁시킬 수 없을 때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도 좋다.
유명한 신화학자인 조셉 켐벨(Joseph Campbell)은 신화속 영웅의 모험여정을 일정한 패턴으로 도식화하고 이를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이라 이름붙였다. 1949년 출간된 The Hero With Thousand Faces(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켐벨은 이 여정을 크게 “출발 (Departure)” “전개(Initiation)” “회귀(Return)”라는 세가지 큰 단계로 구분하고, 보다 세부적으로 17가지 경험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영웅의 여정'을 살펴보면, 안전지대를 스스로 떠나거나, 추방된 이들과 그들의 귀환으로 세상은 변혁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 긴 인생에서 한번 즈음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한 여정을 떠나 보는 것 또한 나쁘지 않으리라. 다만 익숙한 세계의 경계선(The Crossing of the First Threshold)을 넘는 순간 펼쳐지는 풍경은 안전지대에서 통하던 규칙과 혜택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미지의 위험으로 가득차 있을 수 있다.
만약 떠난다면 당신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는 괴테의 말처럼, 인간은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이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이 '어디(where)'인지 고민하게 된다.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할지'에 대한 답을 해야 할 순간이 있다. 다만 지금이 떠나야 할 때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 앞에 마주서 보기를 권한다. 잠시 시간을 내어 '어디(where)'라는 질문어를 함께 탐구해보자.
도서검색 시스템에서 '어디'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어디'가 포함된 도서로 2000여종의 책이 검색된다.
- 위대한 기업은 어디로 갔을까?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어디에 있으랴?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 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 그날, 하나님은 어디 계셨나요?
- 평화는 어디에서 오나요?
- 일의 미래, 10년 후 나는 어디서 누구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 전략은 어디로 향하는가?
-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
.....
[어디(where)를 묻는 도서들]
'어디(where)'와 관련하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질문중의 하나는 베드로가 예수에게 던진 '쿠오 바디스(Quo Vadis)'라는 질문이다. '어디로 가나요(Where are you going)?'라는 뜻을 담은 라틴어로, 책과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예수를 잃을까 두려운 베드로는 예수께 '쿠오 바디스?'라며 예수에게 어디를 가는지 묻는다. 우리는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어디에 있니? 어디로 가니?"라는 질문을 던진다.
기독교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한 첫 질문으로 알려진 것은 "네가 어디에 있느냐?"이다. 히브리어로 '아이에카(ayyeka)'라고 하는데,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훔쳐먹고 숨어있는 아담에게 물은 질문이다.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물었다기보다는, 길을 벗어난 아담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며 경고하는 질문이리라.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부르시며 "네가 어디에 있느냐?"하고 물으셨다. <창세기> 3:9
하나님은 종종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들이 길을 벗어났을때 나타나 질문을 던진다.
주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창세기> 4:9
선악과를 훔처먹고 숨어 있는 아담에게 하느님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네 동생은 어디에 있느냐?'며 길을 잃은 이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며 경고한다. 그렇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자들의 질문어가 바로 '어디(Where)'이다. 잃어버린 것이 있거나, 나아갈 길을 잃었거나, 부적절한 곳에 처해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어디(where)'를 묻는다. '어디(where)'는 방황하는 인간의 질문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걸으려 하는 인간의 질문이다.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 긍정적인 선물만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현재 서 있는 자리에서 만족하고 있는 것, 가치를 느끼는 것, 긍정적인 경험과 관계를 살펴보자. 그것을 가져갈 수 없다고 해도 떠나겠는가? 떠남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이 크고, 새롭게 치러야 하는 비용이나 댓가가 만만치 않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지금 서 있는 곳을 점검하기 위한 질문]
지금 서 있는 곳에서
Q1. 만족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Q2. 가치있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Q3. 긍정적인 느낌을 갖게 하는 경험은 무엇인가?
지금 있는 그 곳을 떠난다면
Q4. 포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Q5. 새롭게 치러야 하는 댓가는 무엇인가?
Q6. 후회하게 될 것은 무엇인가?
떠남으로 인해 기대되는 가능성과 유익은 무엇인가?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이 자리에서 채워지지 않는 갈망, 치르고 있는 댓가, 놓친 기회, 부정적 경험과 관계들이 떠난다고 반드시 얻을 수 있겠는가?
[지금 서 있는 곳을 떠날지를 점검하기 위한 질문]
지금 있는 그 곳을 떠남으로 인해
Q1. 기대되는 새로운 가능성은 무엇인가?
Q2. 더 이상 낭비되지 않을 것은 무엇인가?
Q3. 얻게 될 유익은 무엇인가?
지금 있는 그 곳에서 머무름으로 인해
Q4. 채워지지 않은 갈망은 무엇인가?
Q5. 치르고 있는 댓가는 무엇인가?
Q6.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하는 경험은 무엇인가?
Q7. 놓치고 있는 기회는 무엇인가?
현재 서 있는 곳은 익숙하며, 명확하다. 앞으로 걸어갈 미지의 세상은 모호하며,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선을 넘으면 돌아올 기회는 거의 없거나, 돌아오더라도 아주 오랜시간이 걸릴 지도 모른다. 확신을 선호하고, 불확실에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리라.
사실 우리는 '어디'를 찾아가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가본적 없는 '어디'를 찾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불확실함과 위험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준비할 것은 무엇인가? '어디'를 찾으려면,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까?
자네들 밤에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 얘기 알지? 자아 들어 보라고. 밤중에 길에서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이 가로등 아래에서 열쇠를 찾고 있었어. 다른 사람이 와서 그가 찾는 것을 도와주다가 물었지. <여기에서 잃어버린 게 확실합니까?> <아뇨> 하고 그 사람이 대답했어. <그런데 왜 그걸 여기에서 찾고 있습니까?>하고 도와주던 사람이 다시 물으니까, 그가 대답했지. <가로등 아래에는 빛이라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이야.
_ 베르나르 베르베르 [천사들의 제국]
밖에서 찾을 수 없다면, 안에서 찾아야 한다. 내 감정과 욕구는 관찰할 수 있는 세상 밖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느낌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만약 집 밖에서 찾아야 할 것들을 집 안에서만 찾는다면 우리는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없을 때, 다른 사람들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들도 있지만, 타인의 답이 아닌 자기 자신의 답이 필요한 질문들도 있다.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꿈과 가능성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지나온 경험들을 반추하면서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고, 미래의 어느날을 상상하면서 자신의 비전을 꿈꿔볼 수도 있다. 지금, 이곳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가운데, 함께 하는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그 속에서 미래를 발견할 수도 있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드러난 증상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는 구조와 시스템 속에서 진짜 문제를 먼저 발견해야 할 때도 있다. '열이 난다'(증상)고 해서, 해열제만 먹이는 것 같은 증상위주의 처방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감기 때문인지, 아니면 간염에 감염되서인지 근본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처방을 내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답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Map)'다. 지도를 통해 우리는 현재 서 있는 곳과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 먼저 묻자. 당신은 당신에게 필요한 지도를 가지고 있는가? 당신이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지도가 있는가? 종이 위에 행과 열로 선을 긋고, 매트릭스를 만들어보는 작업을 하면, 현재 어디에 서 있는지를 파악하기 더 쉬워진다.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아야,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된다.
당신에게 필요한 지도는 무엇인가?
현재 어떤 지도를 갖고 있는가? 당신에게 보다 좋은 지도를 선물해 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질문수업을 하다보면 "답은 어디에 있나요?"라는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대게의 경우 내겐 답이 없다. 그리고 상대도 아직 답을 발견하지 못하는 상태다. 만약 우리에게 지도가 없다면 어떻게 답을 찾아가야 할까? 이런 분들에게 답을 찾아가기 위한 간단한 공식을 안내하면 이렇다.
Answer = Question x Team X Action X Learning
(답 = 질문 x 팀 x 행동 x 학습)
좋은 답을 찾으려면, 훌륭한 질문이 있어야 한다. 혼자 답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좋은 팀을 이뤄 함께 찾아가야 한다. 멈춰 서 있다고 답이 찾아오지 않는다. 답을 찾기 위해 필요한 행동은 무엇인가? 일단 시도해 보면서 배우고 깨닫게 된 것을 함께 성찰해본다면 어떨까?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나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질문인가? 팀인가? 행동인가? 성찰을 통한 학습인가?
루이스 캐롤의 고전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재치있는 문답이 나온다.
주인공 앨리스는 길을 헤매다 서로 반대쪽으로 뻗어 있는 두 갈래 길이 놓여진 한 교차로에 이른다.
앨리스는 고양이 체셔에게 묻는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고양이 체셔는 이렇게 답한다.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달렸어.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모른다면, 어느 길을 선택하든 상관이 없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려면, 먼저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무엇(what)'을 잃어버렸는지,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망각한 이들에게 '어디(where)'라는 질문은 작동하지 않는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허락된 질문이 '어디(where)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묻는 자에게 복이 있으라.
당신은 '어디'에 갇혀 있는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당신이 꽃 필 자리는 어디인가?
2016. 4. 27. 질문술사
PS1. 이 글은 질문어(質問語) 탐구 시리즈 중 세번째 글입니다. '왜(why), 무엇을(what), 어떻게(how), 누가(who), 만약(what if), 어디에(where), 언제(when)' 등 우리가 통상 질문을 할 때 활용하는 단어를 보다 섬세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음 질문어 탐구는 'what(무엇)'입니다.
질문어(質問語) 탐구 (1) 왜(why) : https://brunch.co.kr/@ilwoncoach/30
질문어(質問語) 탐구 (2) 누구(who) : https://brunch.co.kr/@ilwoncoach/31
PS2. 추천 도서 링크
1. 조셉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참고 : 제임스 캠벨의 “Hero’s Journey” 또는 “Monomyth” by abulaphiaa)
2. 배철현 [신의 위대한 질문] : 구약성경의 중요한 질문들을 음미할 수 있게 해 주는 책
3. 켄 윌버 [통합비전] :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최고의 지도를 제공한 책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고 응원해 주시는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더 좋은 질문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