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기억해주세요
후련합니다.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가슴 깊은 곳까지 후련해집니다. 이러려고 마음 속에서 이 이야기가 자기를 꺼내달라고 그렇게 성화를 부렸나 봅니다. 흔한 퇴사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다 털어놓고 나니 시원한 기분이 듭니다. 아무래도 저 자신을 위해 쓰는 글이라는 목적은 제대로 달성한 것 같군요.
이 연재글을 시작할 때만해도, 개발에 실망하고 꿈을 잃었던 일들이 마음 속에 성긴 상처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개발을 그만둔지 몇 달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저는 문득 개발을 떠올리면 거슬리는 무언가가 몸 안에 쌓여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게 결국 이 글을 쓰게 만들었고, 다행히 저는 그것들을 다 털어낸 것 같습니다.
연재를 하면서, 저도 모르고 있던 깊은 상처를 마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괜히 쓰기 시작했나' 싶어서 후회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 치유를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건, 자신을 온전히 마주보며 치유하는 행위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 연재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 과연 이게 좋은 글이었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이전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훌륭한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 더 잘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때문에 처음 개발을 했을 때 느꼈던 설렘과 짜릿한 성취감을 모조리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그 느낌을 간직하고 계신 개발자 분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은 개발을 해야만 행복을 느낄 수 있겠죠. 다만, 저는 처음의 창의성과 기쁨을 지키기에는 직장인으로서 해야할 업무가 분명히 있고, 개발자에게 가해지는 자기계발의 압박감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모든 개발자가 불행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또한 직장인으로서 개발자의 삶을 꽤 마음에 들어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새로운 기술에 민감한 업종인 만큼, 고여있기가 힘든 업계라는 건 분명 장점이죠. 게다가 개발자는 IT 업계 안에서는 꽤 좋은 대우를 받는 직종이라 연봉도 나쁘지 않고, 복지도 괜찮습니다. 모든 회사가 그런 건 아니지만, 기술 중심 회사들은 개발자 처우가 제법 괜찮습니다. 철저하게 직장인으로만 본다면, 개발자는 그리 나쁜 직업이 아닙니다.
제가 처한 환경에서 제가 실망했던 이야기를 적다보니, 회의감이 가득한 글이 되어 버렸는데요. 그렇다고 퇴사를 권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건 아닙니다. 어딘가에는 정말로 개발이 즐거운 분이 계실 거고, 그런 분은 개발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개발자는 스스로 재미있어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분일테니, 분명 행복할 겁니다. 오히려 저는 그런 분이 부러워요.
연재글의 모든 이야기는 저라는 개인이 겪은 경험과 생각일 뿐입니다. 아마 글을 읽으시며, 현업 개발자 분들은 공감하시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부분도 있으셨을 겁니다. 다양한 사례를 모아놓은 게 아니라, 그저 개인의 수기일 뿐이니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당연합니다. 아마 제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거나 놓친 이야기도 있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제 글이 정말 개발자분들에게 좋은 글이었나, 하는 의문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가벼운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이런 일을 겪은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미 글을 내놓은 마당에 제가 바라는 건, 그저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개발자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는 것 뿐이니까요. 제 글이 저 스스로를 치유했듯이, 누군가에게도 이 글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비판받아야 할 점이 있다면, 마땅히 비판을 받아야겠지만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개발만으로 행복한 분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개발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개발을 계속하는 건 스스로에게 너무나 불행한 일이 될 거라 생각했기에 개발을 그만두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개발 안 해도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개발을 안 하기에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회사를 다닐 때, 유명 IT 기업에서 한 개발자 분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뉴스에도 났으니, 단순한 소문이 아닌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지요. 그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직도 휴직도 아니고,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던 그 마음이 너무나 먹먹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게 자기 탓인 것 같고, 어딜 가도 똑같을 것 같고, 그렇다고 그만두면 굶어 죽는데, 회사 생활이 견딜 수 없게 힘든 상황에 갇힌다면 무엇을 선택하는 게 정답일까요. 그나마 저는 혼자이지만, 만약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이 있다면, 그때는 정말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저도 극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종종 나쁜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담도 받고 약도 먹어가며, 제가 내린 결론은 '죽을 바에야 그냥 개발자 그만두자' 였습니다. 어차피 회사 안에서 우울해 죽으나, 회사 밖에서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차라리 자유롭게 살아보기라도 하자, 싶더군요. 그렇게 그만두고 나니, 정말로 굶어 죽을 각오로 살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 회사를 다녔다면, 이렇게 실컷 글만 쓰는 삶은 살지 못했을 테니까요.
개발로 행복할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정말 힘들고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정말 잘못된 선택을 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지도 모르지요. 그때는 모쪼록 개발이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개발 말고도 세상에는 다양한 일이 있고, 회사에서의 인간 관계 말고도 소중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개발 안 하고도 행복할 수 있고요.
이 연재글로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입니다. 부디 모든 분들이 너무 지치지 않기를, 너무 괴로워하지 않기를, 삶을 사랑하며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개발을 포기한 개발자의 이야기였지만, 결국은 행복에 대한 말로 끝내게 되네요. 이 또한 인생을 배우는 과정이었던 모양입니다.
13주 동안 <이제 개발자 그만 하려고요>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글이었는데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셔서 놀랐습니다. 덕분에 글 쓰는 내내 힘이 되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이나마, 일상의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오랜만에 에세이를 연재해보았습니다만, 다른 글을 마감 치면서 연재까지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네요.
하반기 일정도 빽빽하게 정해져 있어서 아무래도 당분간 업로드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번 연재글처럼 갑자기 '써야 한다!'는 신호가 오면, 냅다 쓰기 시작할지도 모릅니다만...
아마 당분간은 브런치에서 뵙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더 좋은 소재와 글감이 나타나면, 그때 다시 글로 뵙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커리어 분야 크리에이터"가 됐는데...........
커리어가 끝나버리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커리어 분야 크리에이터가 되면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해야...?
커리어가 없는데 커리어 분야 크리에이터라니.....
아무튼 뭔가 뱃지를 달았는데 조금 황당했습니다.
다음 글이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커리어 분야는 아닐 것 같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더 좋은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시고, 즐거운 브런치 활동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