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권 Oct 07. 2021

동정에 대하여

지극히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그 안에서 위로도 받고 살아갈 힘들 얻기도 한다.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는데, 가장 큰 상처는 그 구성원으로 받는 상처일 것이다. 우리는 가끔 강남역 11번 출구 앞에서 가슴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린 허름한 차림의 사람을 볼 수 있다. 지나치며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노숙자가 구걸을 한다 라는 정도의 표정을 지을 뿐 진정으로 그 사람의 행동이나 사연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보진 않는다.


그만큼 사회에서 겪는 수많은 경험치들이 비록 대단하지 않더라도 굳이 그 사건이 내 행위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알게 된다. 이것을 사회현상 속 무의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지하철 역 앞에 허리를 꺾어서 까지 엎드려 있는 그 사람이 과연 노숙자일까 아니면 최근 사업실패로 잠시 길 위에서 인생철학을 공부하고 싶은 재기를 노리는 도전자일까.


내가 최예진 선수와 그녀의 어머니 문우영 코치를 만난 건 지난달이었다. 칼럼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한 것이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많지는 않지만 각종 단체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온다. 기억에 남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다양성'이라는 주제의 시민문화 확산 캠페인에 칼럼을 써준 건데, 주제는 정해저 있으니 어떤 이야기로 쓸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최예진 선수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물론 언론의 영향도 적지 않았으나 비인기 종목인 보치아를 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도 작동한 듯하다.


Photo by@paris_shin / 한상권


"아픈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게 동정이에요"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끝낼때 즈음에 한마디로 모든 이야기를 정리해주었다. 장애인은 사실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 그렇다 보니 가난할 거라는 선입견과 동정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 것 하나만으로도 장애인과 소수자의 마음은 집안에서 굳어지고 집 밖으로 나갈 용기를 갉아 먹게 된다는 얘기다. 그 얘기를 듣는 데 가슴이 화끈 거렸다.


최예진 선수는 패럴림픽 3회 연속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했고 2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딴 엘리트 선수다. 그런 그녀도 마음 한구석에는 사회를 바라보는 아쉬움이 있는 듯했다. 밝은 이야기들 속에 이 한마디는 우리가 장애인이나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편견이 함축되어 나를 창피하게 만들었다.


사실 내가 다른 누군가보다 조금 더 우월하다는 무의식 속에 타인을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일종의 오만이기도 하고 편견이기도 하다. 즉, 그 사람이 원하는 도움에 대해서 충족해준다면 그것 이상의 행동은 적적치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일부 사람들은 과한 행동으로 자신의 봉사를 정당화하고 사회를 읽는 식견이 차있는 듯 말하곤 한다.


앞서 말했던 강남역 11번 출구 계단에 엎드리고 그 앞에 박카스 상자 하나만을 덩그러니 던져놓고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긴 그 중년이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단지 동전 몇 닢 지폐 몇 장을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자신에게 던져주는 희망의 에너지를 원하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그 사람에게 몇 장의 지폐는 자신의 삶을 바꿔놓을 희망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돈을 박카스 박스에 넣을 때는 조심스럽게 올려놓아야 한다.

이전 25화 힘들다고 말할 수 있고, 어려워도 일어설 수 있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