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ecdote
뉴욕, 한겨울의 밤. 유엔 본부 회의실의 형광등은 새벽 두 시를 넘겨도 여전히 눈부셨다. 오래된 카펫은 수천 번의 발걸음을 기억한 듯 눌려 있었고, 커피 향과 서류의 잉크 냄새가 공기 속에 섞여 있었다. 각국 대표들의 목소리는 언어와 억양이 다 달랐지만, 그날만큼은 모두 같은 긴장감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이 복잡한 무대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유엔에서의 협상은 늘 탱고 같았다. 음악은 들리지 않았지만, 서로의 발끝은 끊임없이 계산되고 있었다. 한쪽이 물러서는 듯하면 곧장 다른 쪽이 치고 들어왔다. 화려해 보이는 연설도, 힘 있게 이어지는 악수도, 모두가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정교한 발놀림이었다. 완벽한 승자는 존재하지 않았고, 합의란 결국 모두를 ‘적당히 불행하게 만드는 타협의 기술’이었다.
그날의 무대는 특별정치임무단(Special Political Missions, SPMs) 예산 협상이었다. SPMs는 이름은 낯설지만, 세계 곳곳에서 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지탱하는 실질적 도구였다. 사헬 사막의 작은 마을에서부터 중동의 국경선까지, 그들의 임무는 전쟁의 불씨가 번지는 것을 막고, 정부가 붕괴 직전까지 흔들리는 순간을 붙잡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회의실 안에서는 그 모든 것이 단지 예산서의 몇 줄 숫자로 환원되어 있었다.
특별정치임무단(Special Political Missions, SPMs)은 안보리가 승인한 임무로서, 국제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는 정치적 노력을 지원하며, 이 임무들은 주로 정치적 중재, 갈등 예방 및 평화 구축 활동을 수행한다.
회의장은 이미 둘로 갈라져 있었다. 스프레드시트를 들여다보는 선진국 대표들은 “재정적 책임”을 반복했고, 표정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는 기세가 서려 있었다. 반대편, 개발도상국 연합인 G77은 서로 문화와 언어는 달랐지만, “형평성”이라는 깃발 아래 목소리를 모았다. 그들에게 예산은 통계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유럽의 한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완벽하게 매만진 넥타이처럼 목소리도 매끄러웠다.
“우리는 모든 달러가 가치 있게 쓰이도록 해야 합니다. 효율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때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대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단호하게 말했다.
“모든 달러는 정말 중요합니다. 평화유지군의 보호 아래에서 겨우 살아가는 우리 가족들에게는, 그것이 곧 생명입니다.”
그 짧은 교환이 협상의 본질을 드러냈다. 숫자와 문구는 차갑지만, 그 뒤에는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국제법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표와 그래프 너머의 삶을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 그러나 회의장에 앉은 모두가 과연 그 시선을 가질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시간은 느린 음악처럼 흘렀다. 몇 문장의 문구를 조정하고, 잠깐 휴회를 하며, 다시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드라마틱한 장면은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양측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합의문에 서명하자, 회의실은 아주 잠시 고요한 해방감을 공유했다. 그 합의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재정 논리와 인도주의 사이에 놓인 다리였다. 삐걱대더라도, 그 다리가 무너지지 않는 한 세상은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다.
협상의 탱고는 완벽함을 약속하지 않는다. 발이 엉키기도 하고, 리듬이 뒤틀리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시 발을 맞추는 일이다. 넘어져도 일어나 다시 춤을 이어가는 것. 백절불굴(百折不屈), 그것이 협상가의 숙명이다.
그날의 작은 승리는 거대한 성취처럼 다가왔다. 권력과 정치가 얽힌 무대 위에서도, 국제법은 여전히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불완전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실했다. 그리고 나는 그 한복판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탱고의 리듬에 발을 맞추고 있었다.
Takeaways
외교 협상은 힘겨루기가 아니라, 서로의 발을 맞추며 균형을 찾아가는 ‘탱고’다.
차가운 숫자와 문구 뒤에는 언제나 사람의 얼굴과 삶이 있다.
불완전한 합의라도, 그 다리는 세계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02 <다양한 현실의 세계를 연결하다>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