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 the Stage
회의실 문을 나서자 차갑게 번지는 형광등 빛이 등을 스쳤다. 복도 끝 유리창 너머로는 뉴욕 이스트 리버가 겨울빛을 띠며 흐르고 있었다. 강 위의 다리에는 차들이 끊임없이 오가고, 그 불빛이 물결 위에서 일렁였다. 도시의 풍경은 고요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질문이 멈추지 않았다.
“국제법은 어떻게 이 세계를 연결하고 지탱하는 걸까?”
경찰도, 초국적 법원도, 강제력을 가진 단일 권력도 없는 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권력과 문화,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들이 같은 구조물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런데 왜 국제법은 어떤 순간에는 최후의 방어선이 되고, 또 어떤 순간에는 가장 먼저 희생되는 걸까?
유엔에서 보낸 시간은 한 가지 사실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외교는 늘 모순을 품고 있다는 것. 테이블 위에는 평화와 안보, 생존이 걸린 중대한 의제가 놓였지만, 우리가 실제로 손에 쥐고 다룰 수 있는 도구는 놀라울 만큼 미세했다. 문장을 한 단어 고치거나, 예산 항목의 순서를 바꾸는 일. 그 작은 조율이 결국 거대한 구조를 지탱하거나 무너뜨렸다. 마치 다리 위에 난 머리카락 굵기의 균열을 메우는 작업 같았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방치하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국제법이란?
국제법은 국가 간 관계를 규율하는 약속과 규칙의 집합이다. 유엔 헌장, 인권 규약, 기후 협정 등 조약과 합의가 여기에 포함된다. 강제력은 약하지만, 합의와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그 불안정한 토대가 역설적으로 세계를 떠받친다.
나는 회의장에서 각국 대표들이 문장 하나를 두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봤다. 언뜻 보면 단순한 지적 게임 같지만, 그 속에는 생존을 지키려는 국가들의 진심이 숨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국제법은 추상적 규칙이 아니라, 혼란의 강 위에 걸린 다리라는 것을. 완벽하지 않지만, 우리가 건널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 다리의 힘은 설계에서 나온다. 유엔 헌장부터 파리협정까지, 국제법은 갈등의 심연 속에서도 협력의 가능성을 만들었다. 냉전 시기, 핵확산방지조약(NPT)이 끝없는 군비 경쟁을 억제했던 것도,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파리협정이 거의 모든 국가를 같은 테이블에 앉힌 것도 그 다리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 다리는 언제나 균열을 안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 공정성과 권력의 충돌. 조약이 서명된 순간에도, “누가 이 약속을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강대국은 무시할 수 있고, 약소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야 하는 규칙이 될 위험. 다리 위의 무게가 균등하지 않을 때, 구조는 삐걱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그 위를 오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이해가 다르지만, 한쪽이 무너져버리면 모두가 강물에 휩쓸린다는 사실을 알기에, 불완전한 다리라도 발걸음을 조율하며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왜 여전히 중요한가?
전쟁을 예방하고 분쟁을 조정하는 기본 틀
인권·환경·개발 분야의 공통 기준
약소국이 최소한의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
이제 질문은 분명해진다. 국제법은 더 튼튼한 다리로 진화할 수 있을까? 단순히 균열을 메우는 역할을 넘어, 급변하는 시대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새로운 구조물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강대국의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부식되어 갈까?
이것은 학문적 토론에 머무르지 않는다. 수십억 인류의 평화와 정의, 그리고 생존이 이 다리에 걸려 있다. 언젠가 이 다리를 건너야 할 당신 세대는 선택해야 한다. 그대로 건널지, 아니면 새로운 설계로 다시 세울지.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다리를 무시한 채 앞으로 나아갈 방법은 없다는 사실이다.
Takeaways
국제법은 혼란의 강 위에 놓인 유일한 다리다.
작은 조율과 합의가 구조물의 수명을 좌우한다.
다리의 유지·보수는 참여자 모두의 의지와 책임에서 나온다.
03 <동생 때리지 마!>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