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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케이크 언제 나와?

Consensus-Building

by 유엔이방인 김상엽

풍선이 터지는 소리, “케이크 언제 나와요?”라며 울먹이는 아이들, 소파에 반쯤 널브러져 왜 왔는지도 모르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어른들. 한쪽에선 음료를 엎지른 아이가 서럽게 울고 있다. 처음 유엔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은 바로 이런 생일파티였다.


유엔에서 합의를 도출하는 일은 늘 그랬다. 시끄럽고, 뒤죽박죽이고, 모두 제 목소리를 내지만 타협은 쉽지 않다. 누군가는 반드시 울고, 누군가는 끝까지 떼를 쓴다.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도, 기적처럼 타협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타협은 의외로 오래간다.


내가 참여했던 G77+China 예산 협상도 그랬다.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부터 아프리카, 아시아의 경제 대국까지, 130개국이 넘는 개발도상국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였다. 배경은 달랐지만, 공통된 전제가 있었다.


G77+China(77그룹+중국)이란?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고 유엔 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1964년 설립된 정부 간 조직이다. 원래 77개국이었지만 현재 134개국이 참여하며, 경제 발전, 무역, 지속가능한 개발, 기후 변화 대응 등을 논의한다. 중국은 정식 회원국은 아니지만 협력 파트너로 활동하며 재정적·외교적 지원을 제공한다. G77은 글로벌 경제 질서 개혁, 남남 협력 강화, 선진국의 재정 지원 확대를 요구하며, 개발도상국의 공동 이익을 대변하는 중요한 국제 협의체로 기능한다. 한국은 1996년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공식적으로 G77을 졸업했다. G77은 유엔본부에서 열린 연례 외교장관회의에서 이를 선언하며,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전환된 국가로 인정받았음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유엔 및 국제사회에서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개도국을 지원하는 국가로 입장이 바뀌었으며, 국제 개발 협력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세계 무대는 공평하지 않다. 국제법은 그 불균형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은 특별정치임무단(SPMs) 예산을 논의할 때였다. 이름만 보면 공상과학 소설의 줄거리 같지만, 실제로는 평화와 불안정을 가르는 현실적 사안이었다.


어떤 국가는 더 투명한 자원 배분을 원했고, 어떤 국가는 평화유지군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몇몇 국가는 국제 협상에서 늘 손해만 보는 것 같다는 불만을 터뜨렸다.


마치 두 팀이 서로 다른 스포츠를 하는 것 같았다. 한쪽은

"이 예산이 없으면 국가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며 생존을 이야기했고, 다른 한쪽은

"모든 달러는 반드시 정당화되어야 합니다."

며 효율성을 내세웠다.


내 역할은 중재자였다. 우선 아무도 반대할 수 없는 단어를 꺼냈다.

“안정성.”


부유한 국가도, 가난한 국가도 새로운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 단어를 중심에 두자 두 진영이 서로 다른 종목에서 같은 경기장으로 들어온 듯했다.


다음 단계는 각자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부유한 국가는 재정 감시를 강화하고 싶어 했고, G77은 자원 증대를 원했다. 최종 합의문에는 예산 증액과 함께 회계 기준 강화가 동시에 들어갔다. 양쪽 모두 “우리가 얻어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결과였다.


그리고 마지막 무기는 시간이었다. 사흘째 새벽을 넘기자 완고하던 대표들도 지쳐갔다. 첫날엔 “절대 불가”였던 문장이 마지막 날엔 “뭐, 괜찮네”로 바뀌었다. 피로는 논리보다 강력할 때가 있다.


결과는 늘 그렇듯 모순적이었다. G77은 “우린 충분히 못 얻었다”라고 했고, 선진국은 “너무 양보했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외교의 본질이다. 완벽한 승자도, 완벽한 패자도 없는 것. 대신 ‘충분히 많은 사람’을 같은 방향으로 걷게 만드는 것.


나는 협상을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며 다시 그 생일파티를 떠올렸다. 아이들은 결국 케이크를 받는다. 울고불고 다투었지만, 촛불이 켜지는 순간 모두가 잠시 같은 노래를 부른다. 국제 협상도 다르지 않다. 완벽한 합의는 없지만, 불완전한 타협이 세상을 조금 더 버티게 한다.


Takeaways

협상의 첫걸음은 아무도 반대할 수 없는 단어를 찾는다.

양쪽이 각자 승리했다고 믿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ㄷ.

논리가 막히면 시간과 피로가 전략이 되기도 한다.


06 <유엔에서는 모두가 평등한가?>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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