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s Without Handcuffs
국제법은 도로에 세워진 제한속도 표지판과 같다. 분명 거기에 있고, 공식적으로 존재하며, 기술적으로는 따라야 한다. 하지만 과속 단속 카메라도 없고, 갓길에 경찰차가 숨겨져 있지도 않다면?
결국 "법이 아니라 권고사항"이 되어버린다.
잠시 역사적인 합의라는 환상인 파리협정의 한계를 살펴보자.
국제법 집행의 허점은 파리기후협정(Paris Agreement)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200개에 가까운 국가들이 서명하며 기후변화 대응을 약속했고, 이 협정은 기후 행동의 역사적인 돌파구로 환호받았다. 문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흐음...
각국은 스스로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정하고, 이를 준수하겠다고 서명했지만, 정작 이를 어길 경우 어떤 법적 처벌도 받지 않는다.
"올해는 꼭 헬스장을 다니겠다!"
라고 결심하면서도 냉장고엔 여전히 아이스크림이 가득하고, 운동화는 방 한구석 먼지 속에 묻혀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부들은 한쪽에서는
"기후 목표를 야심 차게 설정하겠다!"
라고 선언하면서, 다음 날 새로운 석탄 발전소를 승인하는 이중 플레이를 펼친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고작해야 유엔이
"실망스러운데..."
라는 아주 외교적인 성명서를 발표한다.
기후협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 조약(human rights treaties) 역시 마찬가지다. 몇몇 국가들은 표현의 자유, 공정한 재판, 고문 금지를 약속하는 조약에 서명하지만, 정작 실제 행동은 전혀 다르다.
국가 A는 유엔 인권이사회(UNHRC) 위원국으로 활동하면서도 소수민족 수용소 운영을 지속하고,
국가 B는 국제규약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에 서명했지만, 강제노동수용소 운영을 멈춘 적이 없다.
특히 독재 국가들의 전형적인 전략이 바로 이것이다. 한 손으로 서명하고, 다른 손으로 위반한다. 왜 그런가? 간단하다. 국제법을 집행할 '보안관(sheriff)'이 없기 때문이다.
국제경찰이 부재한 시스템에서 조약 위반의 결과는? 최악의 경우 경제 제재를 받거나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을 뿐이다. 그리고 많은 독재국가는 이를 오히려 '제국주의적 간섭'이라 포장하며 내부 선전에 활용한다.
그럼 처벌 없는 세계에서 법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국내 법체계에서는 법을 어기면 경찰이 체포하고, 법원이 판결을 내리고, 감옥이 존재한다. 그런데 국제법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판결을 내릴 순 있지만, 피고국이 응하지 않으면 끝이다. 또한,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체포영장을 발부할 수 있지만, 막상 피고가 강대국의 보호를 받으면 체포 불가하다.
예를 들어, 오마르 알 바시르(Omar al-Bashir) 전(前) 수단 대통령을 기억하는가? ICC가 그를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하고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그는 몇 년 동안 국제 정상회담에 참석하며 각국 지도자들과 사진을 찍고 다녔다. 그를 체포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제법 집행을 가로막는 결정적 무기? 바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거부권(veto power).
어떤 국가가 명백한 조약 위반을 저질렀더라도, P5(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 하나라도 전략적 이익이 걸려 있다면? 강력한 대응 조치는 한순간에 무력화된다.
그렇다면 왜 아무도 국제법을 지키려 할까? 이쯤 되면 의문이 든다. 법이 집행되지도 않는데, 왜 국가들은 굳이 국제법을 따르려 할까?
그 이유는 자기 이익(self-interest)과 국가 이미지(reputation)에 있다.
국제법을 따를 때 얻는 실익: 무역 협정 접근, 글로벌 정당성, 외교적 신뢰 구축
국제법을 어길 때 따르는 리스크: 투자 감소, 외교적 고립, 제재 가능성
결국 국제법은 강제력이 아니라 국가 간의 합의와 명분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그 명분이 무너진다면? 이 시스템은 종잇장처럼 찢어질 것이다.
자 그럼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제 국제사회는 갈림길에 서 있다.
"법은 중요하다"라고 계속 믿으면서 아무런 강제력 없는 시스템을 유지할 것인가?
"법이 효과를 가지려면 강제력이 필요하다"라며 실질적인 개혁을 추진할 것인가?
지금으로선 세계는 첫 번째 옵션인 자승자박(自繩自縛)을 택하고 있다.
08 <누가 먼저 손을 놓을 것인가?>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