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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속도를 줄여주십시오

Laws Without Handcuffs

by 유엔이방인 김상엽

도로 위의 제한속도 표지판을 떠올려 보자. 분명 눈에 띄고, 법적으로 지켜야 한다. 그러나 단속 카메라도, 갓길 경찰차도 없다면? 표지판은 서 있지만, 운전자에게는 권고사항일 뿐이다. 국제법 집행의 현실이 바로 그렇다.


이 허점은 파리기후협정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2015년, 파리 회의장에서 200개 가까운 국가가 서명하는 장면은 역사적 돌파구처럼 보였다. 지구의 미래를 위한 전 세계적 약속, 언론은 환호했고 대표단은 박수를 쳤다. 그러나 문제는 단 하나—법적 구속력의 부재였다. 각국이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는 선언일뿐, 이를 어겨도 처벌은 없다.


나는 그 현장에 있었다. 단상에 서서 “더 야심찬 목표를 설정하겠다”는 연설이 이어지던 그 순간, 동시에 회의장 밖에서는 석탄 기업들의 후원 만찬이 열리고 있었다. 몇몇 대표가 돌아와 내게 속삭였다.


“내일 우리 정부가 새로운 발전소 건설을 승인할 겁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을 가득 채운 채 “올해는 운동을 하겠다”는 결심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목표 미달의 대가는 고작 유엔 보도자료에 담긴 외교적 실망 표명 한 줄.


파리기후협정은 2015년 195개 당사국이 채택한 기후변화 대응의 분수령이었다. 이 협정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 이하로 억제하고, 가능하다면 1.5℃로 제한하겠다는 공동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각국은 자국의 상황에 맞춘 국가결정기여(NDCs)를 5년마다 제출하며 점진적으로 상향된 감축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또한, 투명성 강화 체계(ETF)를 통해 이행 상황을 보고·검증하고, 5년마다 실시되는 글로벌 스톡테이크(Global Stocktake)로 집단적 성과를 평가한다. 협정은 참여 폭을 넓히고 탄소중립 선언을 촉진하는 등 긍정적 성과를 냈으나, 현재 국가별 공약은 여전히 1.5℃ 목표에 미치지 못한다. 선진국의 기후재원 공약 지연, 기술 이전의 격차, 제재 수단 부재도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파리협정은 기후 위기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국제 합의로, 법적 강제성은 약하지만 ‘명분과 신뢰’라는 정치적 동력이 국가들을 협력의 궤도로 묶어두고 있다.


인권 조약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은 표현의 자유, 고문 금지, 공정 재판을 보장한다. 그러나 서명한 국가 중 일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반대파를 탄압하고, 강제수용소를 운영한다. 서명과 동시에 위반이 시작되는 셈이다.


나는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장에서 독재국 외교관이 “우리도 국제 인권 규범을 존중한다”라고 연설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그러나 그 연설이 끝나기도 전에 그 나라에서는 반대 언론이 폐간되고, 활동가가 구속된다. 손으로 서명하면서 다른 손으로 규칙을 짓밟는 이중 플레이. 그 이유는 단순하다. 국제법에는 이를 단속할 보안관이 없기 때문이다.


국제경찰이 없는 시스템에서 위반의 대가는 제한적이다. 최악의 경우 경제 제재나 외교적 고립이지만, 이는 종종 ‘제국주의적 간섭’이라는 프레임으로 국내 정치에 이용된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은 1966년 유엔에서 채택된 핵심 인권 조약으로, 생명권·사상·양심·종교의 자유, 표현과 결사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개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도록 가입국에 의무를 부과한다. 2024.6월 기준 174개국이 당사국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조약은 이동의 자유, 사생활 보호, 혼인과 가족을 형성할 권리, 법 앞의 평등, 소수자 권리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이행 여부는 18인의 전문가로 구성된 유엔 인권위원회가 감시하며, 각 국가는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해 자국 내 권리 보장 현황을 설명해야 한다. 더불어 두 개의 선택의정서가 이를 보완한다. 제1선택의정서는 개인이 직접 인권위원회에 위반을 제소할 수 있게 하고, 제2선택의정서는 사형제 폐지를 목표로 한다. 강제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ICCPR은 국제인권법의 주춧돌로서, 국가 권력을 법의 원칙 아래 두고 인간 존엄을 국제규범의 중심에 두려는 세계적 합의의 상징으로 기능해왔다.


실제로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국가 간 분쟁을 판결할 수 있지만, 피고국이 응하지 않으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역시 개인의 전쟁범죄를 기소할 수 있으나, 막상 피고가 강대국의 보호를 받으면 체포는 불가능하다.


수단의 오마르 알 바시르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ICC는 그를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하고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그는 수년간 국제 정상회의에 참석해 각국 정상과 악수하며 사진을 찍었다. 모두가 불편해했지만, 아무도 체포하지 않았다. 법은 있었으나, 손발은 묶여 있었다.


국제사법재판소(ICJ)와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모두 네덜란드 헤이그에 자리하지만, 성격과 관할, 그리고 다루는 주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ICJ는 1945년 유엔 헌장과 함께 설립된 유엔의 주요 사법기관으로, 국가 간 분쟁을 국제법에 따라 해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영토·국경, 조약 해석, 국제법 위반 문제 등을 다루며, 모든 유엔 회원국이 자동으로 ICJ 규정의 당사국이 된다. 판결은 법적 구속력이 있지만, 집행은 안보리의 정치적 결정에 달려 있어 강대국의 거부권 앞에서는 한계를 보인다. 반면 ICC는 1998년 로마규정에 의해 설립되어 2002년 발효된 독립적인 국제형사재판소로, 집단학살·전쟁범죄·반인도적 범죄·침략범죄라는 4대 중대범죄에 대해 개인의 형사책임을 묻는다. 국가가 아닌 개인을 기소하며, 최고 30년 또는 예외적으로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고 피해자에 대한 배상 명령도 가능하다. 다만 ICC 역시 자체 경찰력이 없어 회원국의 협조에 의존해야 하며, 미국·중국·러시아 등 일부 주요 강대국이 비당사국이라는 점은 제도적 약점으로 꼽힌다. 요컨대 ICJ가 국가 간 법적 질서를 다스리는 법정이라면, ICC는 개인의 책임을 끝까지 묻는 마지막 법의 자리다. 두 재판소 모두 한계와 도전을 안고 있지만, 국제법의 규범성과 책임성을 구체화하는 쌍두마차로서 인류가 ‘법의 지배’를 국제사회에 뿌리내리려는 시도의 핵심 축을 이룬다.


이 모든 집행 무력화를 가능케 하는 결정적 장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P5)의 거부권이다. 어떤 국가가 명백히 조약을 위반하더라도, P5 중 하나가 전략적 이해를 걸면 강력한 조치는 단숨에 무력화된다.


나는 한 차례 시리아 관련 안건에서 이 장면을 직접 보았다. 안보리 의장이 표결을 선언하자, 한 상임이사국 대표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회의장은 싸늘해졌다. 단 한 손짓으로 수만 명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조치가 물거품이 되는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국가들은 왜 국제법을 따르는가? 강제력이 사실상 없다면, 왜 국가들은 여전히 국제법을 지키려 하는가? 답은 두 가지다.

자기 이익(self-interest): 무역 협정 접근, 투자 확대, 기술 협력 같은 실익
국가 이미지(reputation): 외교적 신뢰 구축과 국제적 정당성


국제법 위반은 투자 감소, 제재 위험, 외교적 고립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많은 국가는 완벽하진 않아도 최소한의 규칙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명분이 무너진다면? 국제법은 종잇장처럼 찢어진다.


지금 국제사회는 두 갈래 길 위에 서 있다.

"법은 중요하다"라고 계속 믿으면서 아무런 강제력 없는 시스템을 유지할 것인가?
"법이 효과를 가지려면 강제력이 필요하다"라며 실질적인 개혁을 추진할 것인가?


지금까지 세계는 첫 번째 길, 즉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길을 선택해 왔다. 제한속도 표지판은 여전히 서 있지만, 단속 카메라는 설치되지 않은 채다.


Takeaways

국제법의 가장 큰 약점은 집행력 부재다. 이는 파리협정과 인권 조약 사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국가들은 강제력이 아니라 명분과 실익 때문에 규칙을 따른다.

선택은 여전히 남아 있다. 법을 살릴 것인가, 상징으로만 남길 것인가.


08 <누가 먼저 손을 놓을 것인가?>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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