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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구급차에 실려간 날

임신 9주 차

by 여행하는 과학쌤

토하는 것도 정말 쉽지 않다. 위 근육을 이렇게까지 느껴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자기주장 강하게 위가 사방으로 꿀렁거리고, 꾸에엑- 우억- 웨액- 다양한 괴성과 함께 음식물이 나온다. 모든 음식물이 나온 후에 노랗거나 녹색의 액체가 나올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해서 위가 요동친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눈물, 콧물, 침이 자동으로 줄줄 떨어진다.


먹지 않아도 토하고 먹어도 토한다.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종일 굶다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기운이 없어서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다. 뭘 먹을까 고민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직장에서는 요란하게 토하고 싶지 않아서 가능한 아무것도 안 먹고 버티려고 하는데,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안 먹는다고 토가 안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말갛게 토가 나와서 덜 불쾌하다는 장점이 있을 뿐이다.


9주 차 월요일에 아침부터 서너 번 토를 하고 출근 후에 또 두어 번 토를 하다가 아랫배가 너무 아파서 식은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극심한 생리통을 겪는 느낌이었는데 해결 방법이 없었다. 전날 친구 결혼식에 다녀오느라 무리를 했던 것도 같고, 그날 하필 사무실 에어컨이 고장 나서 더위를 먹었던 것도 같다.


주변에서 깜짝 놀라며 119를 불러주었다. 조금 기다리면 가라앉을 상황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았는데, 혈압이 150까지 치솟았다. 평소 최고 혈압이 100을 넘지 않아서 헌혈도 못 하는 저혈압 인간으로 살아왔는데, 150은 말도 안 되는 수치였다.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구급차는 굉장히 불편했다. 아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간이침대가 고정이 안 되어서 몸이 엄청나게 들썩였다. 과장 좀 보태서 디스코팡팡을 타는 것 같았으니 매 분 매 초 속이 울렁거렸고, 아랫배는 끊임없이 아팠다.


구급대원의 연락 하에 담당 의사 선생님이 식사도 못한 채 진료실에 대기하고 있었고, 남편도 병원으로 왔다. 그런데 막상 병원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내 발로 서 있을 수 있을 만큼 상태가 나아져서 온갖 난리를 치며 이송된 것이 몹시 민망했다.


아이는 건강하다고 했다. 세 시간 정도 누워서 수액을 맞고 복부 통증이 가라앉은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직장 같은 건 중요하지 않으니 무리하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아가가 신호를 보내준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 너무 많았던 하루였다.


입덧의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임신 후 호르몬의 변화 때문으로 추정된다. 특히 임신 중에만 분비되는 hcg 호르몬의 농도가 높아질수록 입덧이 심해지고 hcg 농도가 낮아지면 입덧이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 hcg는 태반을 이루는 태아의 융모막 세포가 만들어내는 호르몬으로, 엄마의 황체를 자극해 프로게스테론의 분비를 촉진한다. 프로게스테론은 자궁 내막을 두껍게 만들어 임신을 유지시키는 여성호르몬이다. 보통 임신 8~12주에 hcg 농도가 최고치에 도달하며, 이후에 태반 형성이 완료되면 태반이 자체적으로 프로게스테론을 만들기 때문에 hcg 농도가 감소하여 안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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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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