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척박사도 어려운 일이 있다
나는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척척박사라고 부르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괜찮은 척의 달인인 척척박사도 고민이 있기 마련이다. ‘척’이라는 건 본디 체력과 노력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인데, 특히 감정 기복이 심해진 이후로는 에너지가 바닥에 가까워서 괜찮은 척을 하기가 어렵다.
척척박사인 나에게도 되는 게 하나도 없는 하루가 있다. 딱히 재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하루가 그렇다. 이런 하루는 내게 고민을 안겨주고 떠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럴 때는 스스로가 척척박사는 커녕 척척석사도 못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최근 나의 고민은 글에 있다. 내가 쓴 글들이 너무 마음에 들다가도 뒤돌면 갑자기 모든 것이 쓰레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또 우울해졌고 글을 쓰기가 두려워졌다. 그렇다고 글쓰기가 질린 건 아니었기에 또 다시 글을 썼다. 그러다가 누군가 내 글에 대해 칭찬이라도 하면 두려워졌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문득 MBTI 질문 중 하나가 떠올랐다.
‘상대방이 나를 높게 평가하면 나중에 상대방이 실망하게 될까 걱정하곤 한다.’
원래는 저 질문에 ‘매우 아니다’ 혹은 ‘아니다‘를 선택했던 것 같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보든 그건 그의 자유라고 생각했으니까. 기대도 실망도 그의 몫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대방을 실망시키면 안 될 것 같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중이다.
오늘도 나는 열심히 괜찮은 척을 하며 살아간다. 언젠가 용기를 내어 척척박사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을 날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