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작 Feb 05. 2022

목소리로 본 <노팅힐>(1999)

용기 낸 그대에게 마지막 브라우니를

"Indefinitely", 영화 <노팅힐>을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대사입니다. 누구에게나 가슴 설레게 하는 장면이라 기억에 남기도 하지만, 여자 주인공 애나 스콧이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분명하게(definitely) '자신'의 소리를 내는 장면이라 잊을 수 없습니다. 영화는 그 대사를 위해서 사랑의 갈등을 고조시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영화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애나 스콧의 목소리 부재와 자기 소리 찾기 그리고 대화하기로 일관된 주제로 장작(?)을 쌓아 갔습니다. 그래서  "Indefinitely"가 무엇보다 뜨겁게 다가왔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1. 목소리

    영화는 엘비스 코스텔로 노래 <she>로 첫 장면을 시작합니다. "군중 속에서 언제나 행복해 보이는~"이라는 노랫말처럼 '위대한 스콧'을 보여줍니다. 레드 카펫 위 플래시 세례와 대중의 환호를 한 몸에 받으며 이 보다 더 빛날 수 없는 할리우드 최고 스타 바로 애나 스콧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어떤 부족함도, 부러움도, 그늘도 없을 것 같은 그녀입니다.


    노래가 멈추고, 윌리엄 태커(휴 그랜트 )의 내레이션과 함께 그가 거리를 걷는 장면으로 전환합니다. 더 이상 노래는 흐르지 않고, 누구도 길을 걷는 그에게 관심이 없지만, 그는 자신이 사는 노팅힐이 런던에서 제일 좋은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참 사소합니다. "주중에는 장이서고, 과일과 채소 향을 맡을 수 있고... 주말이 되면... 수백 개의 좌판이 세워져... 사람들이 몰려온다", "친구들이 많아서 좋다"라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영화 첫 장면에서 시작된 두 주인공을 묘사하는 장면입니다. 두 캐릭터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 주목할 점은 바로 '목소리'입니다. 영화는 애나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아나운서의 소개말, 대중의 환호, BGM이 있지만 정작 애나의 목소리는 없었습니다. 반면 윌리엄 태커는 별다른 소리가 없이 자신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 목소리는 어디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윌리엄은 자신이 힘들 때 친구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눕니다. 윌리엄뿐만 아니라 그 친구들 모두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냅니다. 회사에서 실직한 이야기, 식당 경영이 어려워 문 닫는 이야기, 불임 등 말입니다. 식탁에 둘러앉은 그들의 대화는 방사능 유출, 전쟁, 화산 폭발에 비해 사소하며, 보잘것없고,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말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들의 거듭된 대화, 즉 계속된 목소리 나누기는 친구들을 한 마음의 상태에 이르게 합니다. 윌리엄과 그 친구들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반면 애나 스콧은 자신에게 일이 생겼을 때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요"라면서 윌리엄 앞에 등장합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고,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들려줍니다. 영화 촬영장에 갑자기 나타난 윌리엄을 보고 누구냐 묻는 동료 배우에게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는 장면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래서 스타 애나 스콧은 자기의 목소리를 어디서 내야 할지 모르며, 누구에게 어떻게 내야 할지도, 심지어 자신의 목소리조차 잃은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윌리엄 집 앞에 모여든 기자들을 문 앞에 두고 윌리엄에게 화를 냅니다. "신문은 내일이면 쓰레기통에 들어가요... 단 하루일 뿐이에요!" 그녀를 진정시키려는 윌리엄의 말은 전혀 먹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신문은 기록이에요... 영원하다고요!"라고 더 화를 냅니다. 내 목소리, 내 기억, 내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목소리를 잃고, 남이 기억하며, 다른 누구의 삶으로 남을 것인가란 삶에 대한 두 태도의 충돌을 보여줍니다.


3. 목소리 나누기

마지막 브라우니는 가장 불쌍한 사람에게
- 영화 <노팅힐>  


    마지막 브라우니를 먹을 자격 하고 가장 거리가 먼 애나가 불쌍한 윌리엄을 제지하고 자신의 그 자격을 이야기합니다. "19살에 데뷔해서, 10년간 굶고 있고..."로 시작해 먼 미래에 자신이 늙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을 털어놓습니다. 이 장면이 바로 애나가 스타 애나가 아닌 인간 애나로서 목소리를 갖는 대목입니다. 연기자로서 행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삶이 시동하는 순간입니다.


    영화 후반부 애나는 서점에 방문해 윌리엄에게 고백합니다. 윌리엄은 다시 헤어질까 봐 두려워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이에 애나는 "내 명성은 정말 현실이 아니에요. 잊지 말아 줘요. 나도 한 남자 앞에 서 있는 여자예요. 사랑을 간청하는"이라고 소리 냅니다. 다른 사람의 기억, 기대에 전적으로 의존한 명성은 진짜 나란 현실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인간 애나, 여자 애나가 입 밖으로 낸다는 것은 [어떤 애나]가 아닌 애나로서 삶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고백의 실패 여부와 상관없이 그녀의 삶이 궤도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두 사람이 벤치 위에 앉아 시간을 나누는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첫 장면에서 애나는 목소리 없이 시작해, 인간으로서 목소리를 갖고, 한 여자로서 목소리를 내어 끝내 진정한 사랑과 목소리를 나눕니다. 목소리를 갖고 있었지만 나눌 사람이 없어 고통스러워하던 윌리엄 역시 애나를 통해 행복에 이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은 벤치 위에서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습니다. 목소리를 나누지 않아도 나눈 것과 같다면 더없이 좋지 않겠는가 처럼 함께 나눈 시간을 잉태한 것으로 영화를 마칩니다.


    이렇게 영화는  "Indefinitely"라는 한 단어를 드러내기 위해 달렸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가치; 형용사는 어쩌면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를 스타 애나와 인간 애나의 대비로 보여주고, 간간히 형용사에 대한 해석 차이를 두고 농을 주고받는 윌리엄과 스파이크의 대화를 통해 드러냅니다. 내 밖으로부터, 남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규정되고 정해진(define) 모든 것은 분명하고 선명(definite)합니다. 하지만 그곳은 내 삶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삶은 운명된, 정해진, 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야 하고, 내야 하며, 나눠야 한다를 '사랑'이란 소재를 통해 보여 줬다고 생각합니다.


* 여러분의 라이킷은 다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 라이킷을 먹고 자라는 호덕 올림.

** 이 글은 2022.01.24에 올린 <'쓸모없음'으로 본 <노팅힐>(1999)>을 바탕으로 '목소리'라는 주제로 다시 엮어 썼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