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가 필요한 때도 있어요 힘들더라도
착실히 말 잘 듣는 현실적인 아이
어렸을때 꿈은 사실 없었어요
그저 막연하게 나마
나의 전문적인 기술로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뭔가 드라마틱한게 없었던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아주 현실적이었기 때문에
착실히 공부해서 성적에 맞춰 치대에 간 케이스여서
나의 재능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으면
고2때 친구집에 놀러 갔어요
집에 가보니 친구 아버지가 치과 의사였던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 아버님은
옛날 아버지의 모습 같지 않았어요
아들들과 굉장히 이야기 많이 하고
저희들에게도 자상하고 따듯하신 스타일
그때 생각을 했죠
"치과의사라는 직업" 괜찮을 것 같다.
막상가보니
나랑 안맞는 일인 것 같아
막상 가보니
저랑 너무 안맞더라구요
일단 수업이 병원 안에 있구요
수업을 들으러 반을 옮기지 않아요
덩치 큰 고등학생 이죠
심지어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기 지정석도 생기구요
1등부터 30등까지 성적표도 붙어요 중간기말로
그래서 아침에 오면 하는게 그거에요
싸인펜으로 자기이름 지우는거
대안 없는 존버의 시절
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거였는데...
그런데 다른 대안이 없는 거에요
싫다고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뭘 더 잘 알거나 잘 할 수 있는 대안
제 경우에는 “존버” 였어요
요즘 친구들이 말하는 "존X 버텨라"
어쩔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냥 버텼죠
제가 그때 배운건
버티는 방법이었죠
대안이 없다면
3개월 버티고 7개월 버티고
1년 버티고 7년 버티고
거창한게 아니라 이 테두리 안에서
4학년 졸업하면서
내가 관심있는 분야로 지원을 했어요 <교정>
그런데 떨어진거에요
그 방황 때문에 성적이 안되서
그것도 두 번씩이나...
그래서 졸업은 했지, 결혼은 해야지
그래서 싸들고 함께 유학을 간거에요
무모했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오히려 고민이 적었어요
이제야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았으니까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기쁠 때였어요
강화도에서 온 시골총각
강화도에서 온 시골총각이 있었어요
치아 때문에 제대로 웃지도 못하고
입도 조금 조금 벌리는 순박했던 친구
지금 생각해보면 30대 초반이었는데
당시 장가도 못가고 어머니와 함께 사는 노총각이었죠
나중에는 장가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뿌듯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자신감이 없어서 말도 잘 못했다는데
아내 분과 웃으며 이야기 할 모습을 그려보니
참 행복했어요
그리고 이런 즐거움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더라구요
그런 꿈이 있어요
나이들어서 직원 하나 두고 작은 치과를 개업해서
마을 어르신들 틀니 갈아주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면서
"불편한게 있는데 선생님 생각이 나서 들렸어요" 할 수 있는
내 주변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적성에 맞는다"는 말은 잘 모르겠어요
삶이란 게 "하다보니 하게 되는" 거니까
너무 방황이 되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멀리서 찾으려고 하지말고
내 주변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세요
접근하기 쉬운 것 부터
큰 시도란 결국 큰 걸 포기할 수 밖에 없어요
Q. 청년을 위한 DREAM 매뉴얼
저에게 있어서 꿈은 "시도"에요
어떤 식으로든 방황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작은 시도라도 내 주변에서 찾는 것
이것이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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