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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Jul 28. 2024

그녀를 미치도록 갖고 싶다

[26분 13초] 9화

에블린이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13년 전 바람이 자신들의 목표를 정한 1월이었다.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관심은 그녀의 향기로 깊어졌고, 그녀의 향기로 시작된 설렘은 그녀에 대한 집착으로 발전했다. 그렇게 영원히 꺼지지 않을 사랑이란 촛불은 로반고등학교에서 30분 떨어진 외곽진 동네에서 피워졌다.




[2008년]


에블린은 근무 중 여가 시간이 생길 때면 학교 주변을 서성이곤 했는데 이는 자신의 것이 될 사랑을 찾기 위함이었다. 가깝게는 10분, 최대는 1시간 정도 되는 거리까지 둘러보았다. 1시간 정도의 범위, 왕복으로는 2시간 정도의 거리가 적당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교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오지랖 많은 지구과학 선생의 말 때문이었다. 지구과학 선생은 교무실 옆자리로, 곱슬기가 심한 50대 중년이었다. 그들 사이에 놓인 우드 칸막이 위로 지구과학 선생의 곱실거리는 머리칼이 종종 눈에 들어오곤 했는데, 그런 지구과학 선생의 머리를 볼 때면 우주 연구에 미쳐 폭탄머리가 되어버린 과학자가 생각났다. 에블린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지구과학 선생의 머리를 보고 긴장을 풀곤 했다.


"일이든 2시간 내로 호출되기만 하면 교장이 별 말없이 넘어갈 거야. 단, 시간은 천천히 늘려야 해. 뭐든 갑자기 바뀌면 선이 가기 마련이니까."

에블린은 자신의 사랑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시간을 '탐구시간'이라 자칭했다.

지구과학 선생 말을 들은 기점부터 탐구시간을 천천히 10분씩 늘려갔다. 스위라에 대한 열망을 깨달은 순간은 탐구시간을 30분으로 늘렸을 때였다.


섭씨 35도에 육박한 한여름에도 에블린은 역시 검은색 정장에 파란 넥타이를 하고 있다. 에블린은 에 젖어 이마에 붙어버린 앞머리를 털며 신음했다.

"하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냥 카린이나 가져볼까."

카린은 1학년 고교생으로 긴 검은색 머리의 여자였다. 데칼코마니처럼 자란 양쪽의 덧니가 귀여워 종종 에블린의 눈에 밟히곤 했다. 에블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에 들어간 땀날렸다.   

"아니야, 아니야, 만족이 안돼. 카린은 뭔가 부족해."


에블린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안경태가 땀에 미끄러져 아래로 추락할 때, 등 위쪽열기 막대한 물을 방출해 낼 때, 엉덩이 사이의 마찰이 바지를 끈적하게 적혀갈 때, 에블린은 그저 짧게 탄식하며 자신의 여인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걸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을 때 에블린은 굽어 있던 허리춤에 손을 얹고 상채를 뒤로 당겼다.

'아아- 오늘도 수확이 없는 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과 구름이 유난히 높은 탓에 평소보다 고개를 크게 젖힌 에블린은 뒷목의 신경이 뻐근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자세를 고치지 않고 구름 두 점 사이에 놓인 하얀 태양을 바라보았다. 에블린은 자신이 원하는 소녀를 찾지 못할 때면 고개를 힘 있게 들어 태양을 바라보곤 했는데, 이는 그녀를 찾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자, 태양의 하얀 점으로 시각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다시 채색되는 세상의 경이로움을 느끼기 위한 의식이기도 했다.


태양으로 인해 자신의 눈에 하얀 점이 생겼을 때 여자들을 빠르게 훑어본다.
눈알을 계속 굴리다 하얀 점이 특히 커지고 빛나는 여자를 발견한다.
그 여자를 빤히 쳐다본다.
그 여자로 채색되는 세상을 통해 시력을 되찾는다.

만일, 그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식도 깊이 침을 긁어모아 길 위의 노란 줄 가운데로 조준해 뱉는다.
만일, 그 여자가 마음에 든다면 내 것으로 만든다.


그렇게 에블린은 의식을 치르려 5초간 태양을 바라보았다.

1초, 2초, 3초, 4초, 5초.

에블린은 자신의 시각을 빼앗은 태양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 에블린은 직감했다. 자신의 세상이 다채로워질 것을. 에블린은 유독 크고 빛나는 하얀 점을 바라보았다. 하얀 점은 그녀의 얼굴 위에서 무한으로 커지며 빛을 냈다.

"에블린 선생님?"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자신의 시각엔 그녀의 얼굴이 아닌 그저 하얀 점만이 존재했다. 마침내 눈이 멀어버린 에블린은 알아보지 못할 그녀의 얼굴을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았다.


그렇게 2초, 시각을 잃어서였을까, 후각은 배가 되어 그녀의 향을 더욱 깊이 빨아들였다. 너무나도 포근하고 슬픈 향. 하얗게 질린 눈동자에 사무치도록 서러운 빗물을 내릴 것만 같은 미어질 듯한 향이었다. 에블린은 뜬 눈을 뒤로한 채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폐를 쥐어짜듯 다시 내뱉었다.

'이상하다'

에블린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리도 몽롱해지고 휘갈겨지는 이유가 단지 그녀의 향 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의 향이 자신의 온 신경계로 퍼져감을 느꼈다. 그녀의 냄새는 전신을 감싸 근육조직 사이로 몰래 들여온 보따리들을 한 번에 터뜨려 댔다. 내용물들은 그대로 사방에 튀겨 온몸을 핑크빛 멍으로 물들게 했다. 에블린은 그녀의 표현할 수 없는 달콤한 아름다움을 가장 먼저 도취한 자신의 후각에 강렬한 질투심을 느꼈다. 그녀의 향은 선홍빛 꽃 봉오리에서 암술을 가득 묻힌 귀여운 꿀벌을 연상 짓게 했다.


"에블린 선생님, 저예요. 2학년 6반 스위라요!"

하얀 점이 그녀에게 진 것이었을까, 에블린의 시야는 마침내 색을 찾았다.

"그래, 스위라구나. 여기서 뭐 하니?"

그러나 너무나 많은 빛을 머금은 안구 통증을 불러와 에블린 눈을 감게 만들었다.

"몸이 조금 안 좋아서 조퇴하는 길이었어요. 집이 이 근처거든요. 선생님은 어디 불편하세요?"

그녀는 비틀는 에블린의 몸을 부추겼다. 정확히는 자신의 몸뚱이를 균형 잡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에블린의 오른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먹기 좋은 복숭아처럼 말랑렸다.

"고맙구나, 날이 더워 순간 빈혈이 온 모양이야."


에블린은 흐트러진 넥타이를 정리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그녀의 동공빛을 가득 담은 스펙트럼 같았다. 어떠한 빛이 들어와도 투명하게 수용해 줄 것 같은 고고한 유리구슬 같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잠시나마 자신이 담겼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지, 눈물을 흘려버릴 것만 같았다. 에블린은 식도까지 침을 긁어모아 위 깊숙이 집어삼켰다.


"어디 가는 길이셨어요?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그녀의 말을 들은 에블린은 웃으며 대답했다.

"너도 아파서 조퇴하는 길 아니었니? 선생님은 괜찮단다. 들어가렴."

그녀가 대답하려 귀여운 입술을 벌렸을 때, 에블린은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정 도와주고 싶다면 물 한잔 줄 수 있겠니?"

에블린은 양손으로 관자놀이 양 끝을 눌렀다. 통증이 아직 남아있기라도 한 양 되레 눈을 질끈 감으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눈이 동그래진 그녀는 고개를 크게 위아래로 끄덕이며 말했다.

"럼요, 마침 집이 바로 앞이에요."

"고맙다."

에블린은 부축하는 그녀의 옆으로 고개를 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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