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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바삭 Sep 10. 2018

19. ~님 문화

송주의 짧은 글 모음

~님 문화


요 몇 년 간 상대방을 ~님이라고 부르는

커뮤니티에  많이 소속되어왔다.


~님의 세계에서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

나이를 묻고,

암묵적으로 일찍 태어난 자로부터

서열이 정해지는 관계에 익숙한

한국사람으로서,


~님은 마법이었다.


~님의 세계에서 나이를 따져 묻지 않으니,

상대방이 누가 되든

그 사람의 직업, 성격, 취향 정도가 각인된다.

누구도 비교적 수평적인 상태로

대화에 임하게 되며,

그쪽 또한 나와 같은 태도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반면

~님 관계에서의 룰은 딱!

~님까지라는 사실!


"~님... 됐고!

오늘부터 누나라고 부를게요."

"말 놓을게 ... 요"

"진짜 말 놓는다."

"누나!"


한동안

~님이 그어놓은

한줄기 옅은 선 안에 서 있었는데,

어느 날,

훅~ 그 선을 밟고

누군가 친밀한 언어로 다가오면,

익숙하지만, 다소 어색한 감정에

혼란스러워진다.


아~ 이제 이 친구와는 ~님이 정해놓은

그 예의 바르고, 정중하며,

수평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적 룰이 깨지고,

서로의 밑장을 까고

소주 한잔을 나눌 수 있는 건가라는

묘한 기대감이 일렁이면서도...


아아~ 안돼!

나는 그 안락한 ~님의 세계를

지속하고 싶은데...

이 평화로운 ~님의 세계를

깨고 싶지 않아... 와 같은

양가적 감정에 휩 쌓이게 된다.


또, 으레 술값을 누나에게 씌우고 달아나려는

동생들의 수작이 아닐까란

생각에도 이르게 되지만...


오랜만에 누군가

~님의 금기를 밟고 넘어와 무척 신선했다.


얼마만인가!


하지만 생각을 정리한 내가

먼저 그에게 다가가

"안녕?" 인사를 하니,

그쪽이 되려... "안..녕하세요." 라며

어색한 웃음을 짓는 건,

역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한 것이 아닐까

유추를 해보게 된다.


'아.. 그냥 ~님이라고 할걸.

역시 ~님이 편한데....'

이런 고민 아니었을까?


~님에서 누나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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