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미술관>에서 만난 문장
요리에는 확실히 명상의 기운이 있다. 나는 종종 마음이 어지러울 때 요리를 하면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씻고 다듬고 썰고 오랜 시간 뭉근히 익혀내는 일. 한두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해야 하는 일이라, 우리 앞에는 무수한 명상의 시간이 줄 서 있다. 창자를 가진 인간의 운명에서 오는, 속된 일의 성스러움. 밥 지어먹고 사는 일은 사소하고도 위대하다.
이진민, <언니네 미술관> 215쪽
살림을 하는 사람마다 각자 선호하는 집안일이 있는 듯하다. 빌 게이츠는 한때 저녁 식사 후 설거지가 뇌를 편안하게 쉬게 해주는 가장 좋은 루틴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 반려인은 주말마다 드라마를 보며 빨래를 개는 일을 좋아해서 시키지 않아도 늘 척척 해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집안일은 단연코 '요리'다.
왠지 빨래는 빨랫감을 갤 때마다 수학 문제를 푸는 기분이 든다. 널고, 말리고, 접는 일련의 과정은 덧셈과 뺄셈처럼 정해진 공식대로 흘러간다. 설거지도 마찬가지다. 물에 헹구고, 거품을 내고, 다시 헹군 뒤 정리하는 반복적인 과정. 이 반복적인 행동이 주는 단순함의 힘, 명상의 기운도 분명 있겠지만 그보다 나는 나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영역을 사랑한다. 요리는 다른 집안일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요리는 창작이다.
요리는 같은 재료를 써도 자르는 방식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고, 양념을 배합하는 비율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조합에서 새로운 맛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요리는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취미인 글쓰기와 닮았다. 정해진 공식 없이, 내가 좋아하는 재료를 골라 마음껏 조합하는 과정. 그래서 나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 살림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요리는 한두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해야 하는 일이라, 게다가 설거지나 빨래처럼 '내일로 미룰' 수도 없는 일이라 (식구들을 굶길 수는 없잖아!) 매 끼니를 반복해서 차려내는 일에 나는 점점 지쳐 갔다. 폴란드에 살면서도 우리 식구는 거의 매 끼니 한식을 먹었는데 그러자니 주방의 총책임자인 나의 역할이 어마무시했다. 마늘을 일일이 까서 다지고, 배추를 절여 김치를 만들고, 쌀을 갈아 떡을 만들고, 심지어 찰밥을 절구질해 가며 인절미까지 만들었다. 아이들 스낵 박스에 싸 줄 붕어빵은 팥앙금부터 반죽까지 모두 손수 만들고, 무를 단촛물에 담가 만든 단무지로 김밥을 싸고, 알루미늄 포일과 마스킹테이프로 김을 감싸 편의점에서 파는 것처럼 포장이 벗겨지는 삼각 김밥을 만들었다. 이쯤 되면 농사를 안 짓는 게 신기하다 하겠지만 실제로 깻잎이나 열무, 쑥갓 등의 농사도 지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하는 해외살이의 일상. 슈퍼마켓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반찬이 거의 없었으니 모든 음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손가락 관절과 손목은 점점 아파왔고, 어느 순간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뒤로 한동안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었다. 15년 동안 부엌데기로 살았으니 이제는 좀 해방되어도 되지 않겠냐는 마음과 함께 주방이 너무 지긋지긋했다. 아파트 상가의 반찬가게는 나의 빈자리를 채워주었고, 쿠팡의 새벽배송은 신세계였으며, 배달의 민족으로 살아가는 혜택도 마음껏 누렸다. 덕분에 쉽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고, 예전에 비해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확 줄었는데, 그렇게 반년쯤 지나자 기분 좋은 해방처럼 느껴졌던 주방에서의 탈출이 갑자기 아쉬워졌다. 어느 날 다시 요리가 하고 싶어졌다.
요즘 시장에 가면 봄이 가득하다. 초록빛 봄동이 산처럼 쌓여있고, 달래와 냉이에선 갓 캔 듯한 흙내음이 난다. 미나리는 싱싱한 잎을 흔들고 있고, 폴란드 마트에서 늘 그리웠던 '부드러운' 한국 두부도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다. 찌개용 두부, 부침용 두부, 순두부, 연두부, 몽글몽글한 손두부... 고르고 또 골라도 질리지 않을 만큼 다양한 식재료 앞에서 마치 화방에 들어선 듯한 설렘이 밀려왔다. 색색의 물감과 크기별로 다른 붓을 고를 때처럼, 다양한 재료를 앞에 두고 어떤 요리를 만들지 상상하는 일. 다양한 식재료를 사는 일은 나에게 창작의 도구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문구점에서 새로 산 노트를 펼칠 때 느껴지는 설렘처럼 신선한 채소와 식재료들을 장바구니에 담을 때마다 기대감이 차오른다.
오늘은 두릅을 한 팩 사 왔다. 특유의 쌉싸래한 향이 봄을 닮았다.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좋지만 오늘은 아이들 입맛에 맞춰 두릅 전을 부치기로 했다. 반죽을 입힌 두릅을 지글지글 부쳐내자 봄의 향기가 주방에 가득 퍼졌다. 노릇노릇하게 익힌 두릅 전을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 놓으니 봄의 맛이 식탁 위에서 완성되었다.
오랜만에 주방에서 다시 손을 움직이며 깨닫는다. 요리는 단순히 끼니를 준비하고,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그 과정 속에는 나만의 감각이 있고, 창조성이 있고, 계절의 흐름을 담는 작은 기쁨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리하는 행위 자체가 나를 안정시켜 주었다. 차가운 물에 채소를 씻으면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고, 칼로 야채를 자를 때의 규칙적인 리듬을 들으면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경험한다. 재료가 기름 위에서 부드럽게 익어가는 소리, 손끝에 느껴지는 반죽의 촉감이 내 안의 복잡한 감정을 정리해 준다. 갓 만들어낸 음식에 온기가 느껴질 때 마음도 함께 따뜻해진다. 요리는 단순한 가사 노동이 아니라 내 안의 불안을 다스리는 과정이었다.
이런저런 할 일들에 치여 마음을 추스릴 틈조차 없었던 바쁜 일상 속에서, 요리를 하며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차분해지는 시간을 갖는다. 따뜻한 기름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두릅 전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금 요리의 즐거움을 깨닫는다.
봄이 왔다. 나는 봄을 요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