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지하철 오지라퍼
16. 지하철, 실내, 오후
결혼식장에서 귀가하는 영수.
영수가 지하철 자리에 앉은 채로 옆을 흘낏 본다.
1만 원짜리 지폐들을 세고 있는 여대생(여, 20대)의 손.
돈을 세던 여대생의 표정이 갸우뚱한다.
금액이 맞지 않는지 다시 세기 시작한다.
옆의 여대생의 손동작을 따라
영수도 자기도 모르게 같이 돈을 센다.
영수의 고개가 까딱까딱. 여대생이 다시 한번 갸우뚱.
여대생 앞에 서있는 아저씨(남, 60대)가
여대생이 돈을 세는 광경을 유심히 지켜본다.
아저씨, 무슨 할 말이 있는지 기어이 한마디 한다.
아저씨:
아가씨, 이런 데서 돈 세는 거 아니야.
여대생:
(무슨 말인가 싶어 아저씨를 올려다본다) 네?
아저씨:
젊은 사람이 못 배워서 밖에서 돈이나 세고, 쯧.
여대생이 기분 상한 표정이다.
영수도 아저씨의 말에 인상을 찌푸린다.
여대생이 뭔가 말하려다가 말고 꾹 참고는
돈을 지갑에 집어넣는다.
그러자 만족한 표정의 아저씨.
갑자기 여대생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성큼성큼 간다.
아저씨가 의도적으로 여대생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여대생.
지하철이 정차하고 여대생이 도망치듯 내린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여자(여, 20대 후반)가 지하철 안으로 들어온다.
여대생이 앉았던 자리에 여자가 그대로 털썩 주저앉는다.
아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저씨:
(들으라는 듯) 요즘 젊은 여자들이 문제가 많구만.
대낮부터 술이나 처먹고.
아주 잘하는 짓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진짜.
여자: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인다)
아저씨: 진짜 뭐 하는 짓인가 몰라.
(주위 사람들에게 동조를 구하듯이)
젊은것들이 이러니 세상 꼬라지가 이 모양이지.
안 그래요?
아저씨의 말에 힘이 넘친다. 맞은편에 앉은
5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아줌마 두 명이
아저씨의 말에 동조하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영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화가 났다.
영수:
(참지 못하고) 어르신. 어르신이 뭔데 이래라저래라 해요?
저기 경로석도 비어있는데 왜 굳이
여기서 남의 인생에 간섭이세요?
공공장소에선 서로 조용히 가는 게 예의 아닌가요?
오지랖도 적당히 하시죠.
아저씨:
아니, (사이) 아니 나는 그게 아니고.
할 말을 잃은 아저씨가 패잔병처럼 경로석 쪽으로 걸어간다.
그러자 맞은편 아줌마 1(여, 50대 중반)이
기가 차다는 표정이더니 벌떡 일어서서
아저씨를 붙잡고는 자기 자리에 앉힌다.
결의에 찬 얼굴로 아줌마가 영수에게 간다.
아줌마 1:
아니 나이도 어린 사람이 꼭 그렇게
어른을 혼내야 속이 후련하겠어?
몇 살이나 먹었는데 그래?
영수: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거든요.
서른은 넘었어요, 왜요?
그리고 여기서 나이가 무슨 상관인데요?
아줌마 1:
아이고, 나이 먹은 게 참 자랑이다.
여자가 낮술 한 게 뭐가 자랑이야?
영수:
아니, 이 분도 무슨 사정이 있을 거 아닙니까?
아줌마 1:
좋겠다. 어른 이겨서. 요즘 젊은것들이 이렇다니까. 한 마디를 안 져요.
순간 술에 취한 여자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당황하는 아줌마와 아저씨.
여자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운다.
그녀의 울음에 조용해진 지하철 안.
정적을 깨고 다음 정차 역을 알리는 안내방송.
문이 열리자 여자가 뛰쳐나간다.
영수가 여자를 따라가려다 문 앞에서 멈춘다.
문이 닫힌다. 영수의 표정이 굳어진다.
영수:
(N) 그녀를 위로해주러 뛰어가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문득 다른 생각이 났다.
결혼식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왜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는 걸까?
내가 세상을 글로만 배워서일까?
노동을 통한 사회화를 거치지 못한
사회 부적응자의 자격지심?
아, 정말 답을 모르겠다.
영수가 씁쓸한 얼굴로 한숨을 내쉰다. 열차가 한강을 건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