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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 Apr 03. 2022

#4 내 맘은 시작하고 싶다는데...

득조가연(得肇佳緣):비로소 아름다운 인연을 만났다.

다시 2년 후 


-유라: 여보세요..

-승주: 어, 잤어? 나땜에 깬 건가?

그래 너 때문에 깼다.. 황금 같은 내 주말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유라: 아냐. 웬일이야?

-승주: 어제.. 반가웠어.. 오랜만에 보니까 좋더라..

-유라: 그랬니?..

그리고 30초 정도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

-유라: 나 많이 피곤한데.. 무슨 할 말 있는 거야?

-승주: 미안해. 내가 내일 전화할게...

내일 전화해서 뭘 어쩌자는 건지.. 나이가 드니 성질도 급해진다.

-유라: 그냥 지금 말해.. 내일은 내가 좀 바쁠 거 같거든..

-승주:....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볼 수 있을까?

-유라: 무슨 일 있어? 중요한 이야기야?

-승주: 어.. 많이 중요한 거야.. 내일 너 시간 되면 전화해..

-유라: 그, 그래.. 알았어

아... 잠이 다 깨버렸다. 다시 잠들기 위해 애써보지만 생각만 많아질뿐이다.  





아이고 허리야 어깨야.. TV는 밤새 혼자 켜져 있고 나는 소파에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TV를 보다 어느 순간 자버린 모양이다. 불편하게 자서 그런지 온갖 뼈들이 자주독립을 외쳐대고 있다.

어제 아무것도 안 먹은 탓에 내 위장은 음식을 갈망하고 있다. 밥도 하기 귀찮고 설거지도 귀찮은데..

집에 라면이 있던가.. 다행히 하나가 남았다.

물이 끓는 동안 김치를 꺼냈다. 라면.. 이거 먹으면 살찌는데.. 걱정이 되면서도.. 괜찮아,, 어제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이 상황을 합리화시킨다.

양치를 하다가 어젯밤 승주와의 통화가 생각이 났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세수를 하는데 전화가 걸려온다. 혹시 승주인가? 얼굴에 비누가 묻은 채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미현이었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밤새 안녕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화장실로 가 마치지 못한 세수를 했다.

다시 벨이 울린다. 미현이었다.

화장대로 가서 스킨을 바르고 로션을 발랐다. 분명 밤새 있었던 정미와의 일을 나에게 토해내기 위함일 것이다.

그나저나 승주한테 전화를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전화기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 순간 미현의 전화가 온다. 안 받으려 했는데... 만지작 거리면서 받아져 버렸다.

전화기 저 너머로 미현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미현: 한유라!! 너 이럴 거야? 이럴 거냐고??

-유라: 왜?? 무슨 일 인대??

-미현: 몰라서 묻는 거 아니지? 우리 집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 아냐고??

-유라: 하나도 안 궁금하다.. 나 약속 있어 나가야 돼.. 잘 해결해봐.. 정미는 뭐하는데?

-미현: 신랑 전화받고 나갔대.. 자고 일어났는데 집이 내 집이 맞는 건지..

안 봐도 비디오다..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미현의 집은 그보다 조금 더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쌤통이다.. 그나저나 정미는 왜 애들만 나 두고 간 건지 모르겠다. 정호 씨랑 잘 해결하려고 나간 것일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옷을 갈아입고 전화기를 또 만지작 거리다가 결국 승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심호흡을 하고 또 한 번 더 했다.

-승주: 유라야. 전화해줬구나.. 오늘 시간 있어??

-유라: 어 잠시 시간 될 거 같아.

-승주: 내가 너 있는 곳으로 갈게.. 어디로 가면 돼??

-유라: 나 집.. 이야..

-승주: 그럼 집 앞에서 전화할게.. 있다가 보자..

전화를 끊고 다시 심호흡을 했다. 승주는 그저 동창일 뿐이다. 다시 주문을 건다. 

띵동~~

설마 집으로 찾아온 거야? 인터폰 너머로 승주가 보인다. 오랜만에 그가 우리 집에 온 거였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유라: 잠시만. 나 나갈게..

-승주: 아냐 그냥 내가 들어갈게.. 조용히 할 말이라서..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들어오라고 해야 하나.. 한숨을 쉬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승주: 들어가도 될까?

승주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미 문을 열어버렸는데 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유라: 들어와...

신을 벗고 들어오는데.. 순간 울컥했다. 내 신 옆에 그의 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승주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승주: 집이 많이 바뀌었네..

-유라: 어.. 분위기를 좀 바꿨어..

승주의 표정은 뭔가 심각한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유라: 커피 마실래?

-승주: 아니 괜찮아. 잠깐 앉을래?

주방으로 가려다 다시 소파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 일까..

-승주: 2년 전에 있었던 일.. 너한테 하지 못한 말을 해야 할 거 같아서...



2년 전.. 그래.. 모델한다던 새파란 계집애를 기억해야 한다면 그때가 맞는 거 같다.

사실.. 승주는 호감만 가지고 있는 정도였고 그 민주라는 애가 승주에게 매달린 거였다는 걸 나중에 미현이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 승주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거부했었다. 그를 믿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나도 긴 연애기간이 지겨워진 것도 사실이 있었다.

다 안다고 말해야 하나? 나는 그냥 이대로가 좋은데.. 설마 다시 시작하자는 건 아니겠지?

-유라: 2년 전 뭐?? 이미 2년이나 지난 일인데 무슨 말을 하려고... 난 할 말이 없는데.

-승주: 나는 있어.. 그땐.. 우리가 너무 오래 사귀어서 그런가 좀 지치기도 했었고 나 좋다고 쫓아다니는 그 애가 귀엽기도 했었는데.. 그런데 나는 네가 싫은 게 아니었어.. 그냥 그 애가 신선했을 뿐이었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고.. 그런데 네가 화를 내고 나를 믿지 못하니까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낫겠다 싶더라. 지난 2년 동안 네 생각이 안 난 적이 없었는데 어제 너 보니까 더 확실해지더라 넌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네가 그립고 오히려 더 설레였어. 넌 아니면 어쩔 수 없는데.. 난 이제 내 맘을 솔직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차일 때 차이더라도 나는 아직 널 기다리고 있다는 말은 꼭 해야겠어서..

-유라:.....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나도 가끔 생각나긴 했지만 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승주: 좀 웃기는 상황인 건 알겠는데.. 그냥 나는 네가 더 좋아진 거 같아.. 어제 밤새 네 생각밖에 안 나더라..

-유라:...... 커피 마실래?

나는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이제 와서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이제 와서..

좀 더 일찍 말해주지.. 나는 지금의 내 생활이 좋다. 다시 연애를 시작하기엔 나는 마음이 많이 지쳐있다.

기대하고 실망하고 상처받고..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다.



오랜만에 원두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원두를 내리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여기서 승주를 받아들인다면 나는 정말 바보가 되는 거겠지?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나는 서른셋이다. 아직 솔로이고 지금 이 생활에 만족하고 살고 있다. 사람에게 얽매여 사는 것도 지쳤고 무엇보다도 기대했다가 상처받는 일 따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머그컵을 꺼내 닦았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인기척이 났다 어느새 승주는 내 뒤에 와 있었고 뒤에서 나를 안았다. 내 몸은 그를 느끼고 있었다. 아직 그에 대한 내 감정은 사랑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선을 그어야 한다. 예전의 바보가 될 수 없었다.

그의 손을 풀었고 뒤를 돌아보았다.

-유라: 뭐 하는 거니? 설마 내가 2년 전의 나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승주: 2년 동안 다른 사람을 사귀지 않았던 건 날 못 잊어서가 아니었어?

-유라: 착각하지 마. 그런 거 아니야.. 일이 더 중요했고 그 덕에 승진도 했고.. 나는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하고 있어. 왔으니까 커피만 마시고 가라.

커피를 머그컵에 따르고 그에게 컵을 내밀었다. 승주의 눈빛이 흔들이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승주: 알았어.. 네 마음이 뭔지 알겠어. 그런데 니 눈은 왜 다른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커피는 다 마시고 갈게..

커피를 들고 그는 소파로 갔다. 승주의 뒷모습은 쓸쓸했다.



 커피를 마시던 그가 컵을 내려놓더니 장식장 쪽으로 갔다. 장식장 문을 열었다. 그리고 활짝 웃고 있었다.

대체 뭘 보는 거야... 아.. 뿔사.. 그와 내가 찍은 사진이었다. 그리고 반지.. 액자 앞에 그와 나눴던 커플링이 들어가 있었다. 저 물건을 내가 아직 안 치웠구나..

-승주: 유라야? 이거 뭐야? 

뭐 기는 봐놓고 뭐냐고 왜 묻는 건지.. 난 못 본 채 했다.

-유라: 뭐가? 그게 뭐야? 그게 왜 거기 있지?

사실.. 그와 헤어지고 집안 인테리어를 바꾸면서 그와 함께 했던 물건들을 정리하려 했다. 차마 커플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와 행복해하는 사진 속의 그를 무참히 쓰레기 통에 넣을 수가 없었다.

장식장 한편에 넣어놓고는 2년간 잊고 있었다.

-유라: 버리려고 했었는데 잊었나 봐. 그게 거기 있는 거 조차 몰랐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매몰찬 말이었다.

-승주: 그런 거였어?.. 나도 아직 이 커플링 가지고 있어.

-유라: 그래  요즘 금값 조금 떨어졌다던데.. 다음에 또 오르면 팔아야겠다.

승주는 반지를 보며 한숨을 쉰다.

승주: 나 그만 갈게.. 또 보자.

장식장에 반지를 다시 넣어놓고는 현관으로 간다.

유라: 아냐 또 안 봐도 돼. 그냥 넌 너대로 잘 살아..

승주: 또 통화하자..

나가버리는 승주의 뒷모습에 가슴 한편이 시려옴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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