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나 Apr 01. 2022

#2. 친구는 무슨..

득조가연(得肇佳緣):비로소 아름다운 인연을 만났다

#2. 친구는 무슨..


악~~~ 나의 주말은 무참히 짓밟혔다.

거실 소파에서 자던 정미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구역질을 시작한다.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8시 10분

평소 같으면 한창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을 시간..

내 소파는 친구인 정미에게 점령당했고 거실 바닥은 그녀의 구토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잠이 든다. 정말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물티슈로 그녀의 구토물을 모아 변기에 버리는 찰나...

띵동~~ 띵동 띵동~~

이 아침에.. 나의 황금 주말에... 누구인가..

인터폰으로 보니.. 이런 씨... 정미의 아들 둘이 밖에 서 있다.

문을 안 열어 줄 수도 없는 상황이다.. 현관문을 열었다.

-준호: 이모 안녕하세요..

-유라: 어, 그래 어떻게 왔어?

-민호: 아빠 가요 오늘 여기서 놀라고요 데려다주고 갔어요?

-유라: 아빠 갔다고?

안돼~~~ 나는 서둘러 신을 신고 엘리베이터로 갔다. 이미 엘리베이터는 1층에 멈춰 있었고, 정호 씨는 가고 난 후다.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정미의 아들들은 내 방과 거실을 뛰어다니고 있다. 나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고 드디어 폭발..

-유라: 야!! 최정미!! 일어나 어서!

꿈쩍도 하지 않는 그녀다. 여기서 멈출 내가 아니다.

-유라: 야이 기집애야! 당장 안 일어나?

이불을 걷었다. 뭐라고 구시렁대더니 다시 자는 정미.. 그녀의 아들 둘은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다.

인내심이 바닥을 보인다. 발로 정미를 흔들었다.

-유라: 최정미!! 안 일어날 거야! 민호 준호 그만해! 뛰지 마!

-준호: 이모 TV 봐도 돼요?

아이들에겐 나의 허락 따윈 필요치 않았다. 볼륨을 계속 올리고 소파에서 뛰고 있는 정미의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아직 싱글인 내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소파에서 뛰는 아이들 덕에 정미가 뒤척이더니 눈을 뜬다.

-유라: 야 이 기집애야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애들 데리고 너희 집으로 가라

-정미: 애들? 어, 준호 민호 어떻게 왔어?

그제야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나 보다.

-준호: 아빠가 오늘 바쁜 일 있다고 여기서 놀아라고 했어

-민호: 엄마, 엄마, 아빠가 여기서 자고 와도 된다고 했어. 근대 진짜 자고 가는 거야?

정미의 얼굴이 점점 울그락 불그락해져 가고 있다.

나만 하겠니...



갑자기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가방을 뒤진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누구에게 거는지는 뻔한 거지만..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는 모양이다. 네 번 정도 다시 걸어도 상대방은 받지 않았다.

-정미: 이 인간이 진짜 뭐 하자는 건지? 아.. 진짜 악~~~~~

머리를 쥐어뜯으며 몸부림을 친다. 진짜 지랄이 풍경이구만..

-유라: 야! 됐고 깼으니까 너네 식구들 다 데리고 당장 집으로 가라..

-정미: 넌 친구라는 애가 이 상황에 그런 말을 해야겠어?

-유라: 그럼 이 상황에 뭐라고 할 거 같냐? 내 황금 같은 주말에 잠도 못 자고 쉬지도 못하는데.

-정미: 이 나쁜 것아..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냐?

-유라: 너무 한 건 내가 아니라 너라는 생각은 안 드냐? 어제 일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고 하는 건 아니지?

정미는 눈을 깜빡깜빡하더니.. 멍한 표정을 짓는다. 고로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는 뜻이다.

-정미: 아~ 속 쓰리다. 갈 때 가더라도 아침은 먹고 가자.

뭣이라? 아침까지 달라고? 진짜 이거 뭐하는 짓인지.. 친구 잘 못 둔 죄다. 에효..

냉장고에 있던 콩나물을 꺼내 국을 끓이고 스팸을 구웠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밥을 펐다.

정미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아이들과 히히덕 거리고 있었다.

-유라: 웬만하면 숟갈 좀 놓지 그러냐? 양심은 아침에 다 토했나 보지?

-정미: 하하하... 어? 뭐라고? 밥 다 된 거야?

그제야 일어난다. 정신없이 밥을 먹더니 한 그릇 더 달라 신다.

-정미: 야, 늘 차려만 주다가 남이 차려준 밥 먹으니까 밥맛이 엄청 좋은 거 있지.. 넌 안 먹어?

나는 그저 쉬고 싶을 뿐이다. 밥을 다 먹고는 다시 소파로 가는 정미.. 설거지는 누가 하라는 건지

-유라: 야! 설거지는 안 해?

-정미: 있다가 좀 불려서 하면 돼.. 근데 이거 엄청 재미있네.. 너도 좀 봐봐.

정미는 TV를 보면서 영혼 없는 웃음을 웃고 있다.

-유라: 안 갈 거야? 나 좀 쉬고 싶어..

-정미: 뭘 바로 가라고 그러냐. 너무 각박하게.. 배 좀 꺼지면 갈 거니까 넌 자던 잠 마저 자. 우린 알아서 갈 거니까..

아... 난 지금 가줬으면 좋겠는데.. 내 주말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단 말이지....

-정미: 유라야 우리 커피 한잔 안 할래?

이젠 커피까지 갖다 바치란 말인가..

-유라: 싱크대 두 번째 서랍에 커피 믹스 있다..

-정미: 너는 안 마셔?

-유라: 나 잘 거거든.. 커피 마시고 잠 참~ 잘 오겠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이며 깼을 땐 그들이 가고 없기를 바랐다.



거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2시.. 4시간 정도 잔 거 같다.

아직도 많이 피곤한 상태다. 문을 열고 방에서 나오니 TV 볼륨은 컸고 소파에선 TV에서 나오는 노랫소리에 맞춰 애들이 뛰고 있었다. 거실 바닥에는 과자 부스러기가, 한쪽에선 정미가 깨진 컵을 봉투에 담고 있었다. 포트메리온.. 얼마 전 선물 받은 컵이다.

-정미: 애들이 물 마시다가 떨어뜨렸지 뭐야.. 우리 집에 컵 많으니까 하나 갖다 줄게..

-유라: 야!! 그 컵이 그 컵이랑 같아? 그게 어떤 컵 인대. 그리고 왜 아직 안 가고 우리 집에 있는 거야?

-정미: 그러게.. 아직 안 갔네.. 밥 차려 줄까?

-유라: 됐고 그냥 가라. 내가 치울 테니까 지금부터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집으로 가주면 감사할 거 같으니까

-정미: 어, 그래그래. 미안해 지금 갈게.. 아참!! 그게.. 변기가 좀 막혔어.. 애들이 뭘 넣은 거 같은데 뭔지를 모르겠네.. 그리고 지갑에 택시비가 없더라고.. 이만 원만 꿔주라..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찌 됐던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방에서 차 키를 가지고 나왔다. 재킷을 입고 현관으로 몸을 돌렸다.

-정미: 역시.. 데려다주려고? 너무 고맙다.. 너 밖에 없다.. 준호, 민호 잠바 입고 신발 신어라.

애들이 우르르 나오더니 신발을 신는다. 내 구두는 그들이 질근질근 밟아 모양이 흐트러 진지 오래다.

차를 매산동으로 몰았다. 최대한 신속하게.. 푸르지오가 보인다. 곧 이들이 내릴 것이다.



104동 앞에 차를 세웠다.

-정미: 유라야 고마워. 이모한테 인사 안 해?

-준호 민호: 안녕히 가세요

-유라: 그래 잘 가.. 너도 잘 가고 담에는 같이 술 마시지 말도록 하자.

-정미: 어머 기집애.. 술 없이 무슨 대화를 하니? 담에 또 보자..

다음은 없길 바란다. 제발..

최대한 빨리 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들이 초토화시켜놓은 내 집을 빨리 치우고 숙면을 취하고 싶었다.

수원역을 지날 때쯤 전화가 울린다.. 정미다.

이 전화를 받아야 하는 건가 말아야 하는 건가..

나는 이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유라: 왜? 왜?? 또 뭔데? 우리 집에 뭐 놓고 왔니? 담에 내가 갖다 줄테니까 오늘은 여기서 빠빠이 하자.

-정미: 유라야.. 그게... 우리 신랑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꿔 놨나 봐.. 어떡하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유라: 나보고 어떡하라고? 니 신랑하고 해결해.. 나를 너네 부부 문제에 개입시키지 말라고!.

-정미: 신랑이 전화를 안 받는데 어떡하냐? 나쁜 년.. 넌 내가 불쌍하지도 않니?

-유라: 네가 왜 불쌍해? 남편 있고 니 닮은 애도 둘이나 있는데 내가 널 왜 불쌍히 여겨야 되는데? 불쌍한 건 나 아니니? 이 나이에 아직 솔로인 내가 넌 불쌍하지도 않니?

-정미: 지금 현관 비밀번호가 바뀌어서 집에 못 들어가고 있다니까!. 밖에 계속 있으라는 건 아니지? 애들 봐서라도 우리 좀 데리고 가라?

어딜 데리고 가라고? 설마 우리 집?

-유라: 일단 끊어봐..

전화를 끊고 바로 정호 씨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 젠장.. 받지 않는다.

들려오는 소리는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하느님.. 제발 나를 시험에 빠지게 하지 마옵소서...

머리카락 한 움큼을 잡고 쥐어짜듯 괴로워하다 순간 아, 맞다.. 흐흐.. 나는 다시 매산동으로 차를 돌렸다. 104동 앞에 정미와 아이들이 서 있었다.

차를 세우자마자 부리나케 타는 이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미: 유라야.. 진짜 진짜 미안.

나는 짜증 섞인 눈으로 정미를 쳐다보고는 차를 화서동으로 몰았다. 한 번씩 옆으로 쳐다보면서 눈으로 할 수 있는 욕은 다 하고 있었다.

-정미: 어디 가려고? 좋은데 가려는 거야?

나는 정미를 보고는 씩 웃었다. 화서동 영광 아파트 앞...

-정미: 어? 여기 미현이 집 아니야??

빙고~~ 이 모든 사단을 만들어 낸 미현이 집 앞이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나는 내렸다. 정미와 아이들도 같이 내린다..

유유히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순식간에 어제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8층.. 초인종을 눌렀다. 일정한 간격으로 열댓 번을 눌렀을까.. 부스스한 미현이 현관문을 열었다

열린 현관문 사이로 손을 넣고 현관문을 최대한 열어 정미와 아이들에게 들어가라고 고개를 까딱거렸다.  

-유라: 준호 민호 안 들어가? 이모한테 인사해야지..

-미현: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나는 미현을 보고 활짝 웃었다.

-유라: 정미가 너한테 할 말이 많은가 봐.. 나는 집이 엉망진창이라서 가봐야 돼.. 즐거운 시간 보내고.. 아, 그리고 정호 씨한테 전화 좀 해봐. 내 전화도 안 받네. 화 많이 났나 본데 얼른 풀고..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잖아.. 난 간다.

미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나 나는 이미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고 문은 닫혔다.

아하하하 이제 집에서 푹 쉴 수 있겠구나... 집은 엉망이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집에 가는 길이 즐거웠다.

평온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생각에 노래가 절로 나왔다. 

드디어 평온한 우리 집..

비싼 포트메리온 컵이 깨졌어도 상관없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도 끝났다. 그러나..

화장실을 가자마자 나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끼는 앰플병이 변기 안에서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지난번 중국 출장 갔다 오면서 면세점에서 산 앰플이.... 아.. 진정해야 돼.. 나는 잠들어야 한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이번엔 전화 벨소리에 잠이 깼다.

이번 주말은 정말 악몽의 연속인가 보다. 저녁 9시다. 도대체 이 시간에 누구지?

김승주... 승주였다. 이걸 받아야 하는 건가.. 그냥 전화일 뿐인데 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제 그와 나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벨소리가 한참 나더니 전화가 끊어졌다. 다시 전화가 올까?

전화기를 집어 들어 비밀번호를 풀자마자 다시 전화가 온다. 그래 그냥 태연하게 받아야겠다.

그는 이제 고등학교 동창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이다. 나는 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전 01화 #1. 술이 웬수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