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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 Apr 05. 2022

# 5. 내 맘이 내 맘 같지 않아서...

득조가연(得肇佳緣):비로소 아름다운 인연을 만났다

# 5. 내 맘이 내 맘 같지 않아서  


승주가 다녀가고 나서 나는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아냐 아냐..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치다 보면 더 많은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몰라..

다시 내 감정을 가다듬었다. 다시 자야겠다. 주말은 이제 몇 시간도 안 남았으니까..

전화기가 또 울어댄다. 이놈의 기집애들을 그냥.. 미현이었다.

-유라: 왜 무슨 일인데 자꾸 전화질이야?

-미현: 나참 기가 막혀서.. 넌 이 사단을 어떡할 거야?

-유라: 왜? 뭐가?

-미현: 와서 정미 애들이라도 데리고 가.. 내가 지금 미치기 일보직전이다.

-유라: 내가 왜? 그저께 정미를 부른 건 너 아니었어? 둘이 죽이 잘 맞더구먼.. 정미한테 전화해봐 정호 씨한테 전화해봤어?

-미현: 가 열두 번도 더 했거든.. 잠시만 누구 왔다. 잠깐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소리는... 정미와 정호 씨의 목소리였다. 미안하다며 애들을 데리고 나가는 듯했다.

정미는.. 어찌하다 보니 이 시간이 돼버렸다고 미안하다며 급하게 나가는 것 같았다.

-미현: 내참 기가 막혀서..

-유라: 왜? 애들 다 데리고 갔음 된 거지.. 대충 치우고 너도 쉬어.. 나는 머리가 복잡해서 잠이나 자야겠다.

-미현: 뭔데? 뭐가 그리 복잡해서..

-유라: 내일 퇴근하고 저녁이나 같이 먹자. 내가 오늘은 길게 말할 기분이 아니라서..

-미현: 알았어.. 뭐길래 그리 뜸을 들이는지.. 자라.



전화를 끊고 나서는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차라리 말을 말걸.. 

내일이 되면 미현은 오늘 있었던 일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 들으려고 할 것이다.

아냐 생각하지 말자.. 오늘은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것이다. 이미 하루의 절반이 다 가버렸지만.. 지금부터 내일 아침까지 꼼짝도 않고 잠만 잘 것이다.

알람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중간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잤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개운한 아침이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토스트를 구웠다. 화장도 했고 옷도 갈아입었고.. 여느 때와 변함없는 아침이다. 토스트를 먹으며 인터넷 뉴스를 보고 양치를 하고 립글로스를 바르고 신을 신었다.

오늘따라 차가 막히지도 않는다. 오늘이 월요일임에도 말이다.

신호 빨도 너무 좋다. 쭈욱 신호가 뚫렸다. 아침부터 기분이 상승곡선이다.

사무실 입구에 들어서자 김 과장이 보인다. 역시나 웃는 얼굴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유라: 김 과장님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김 과장: 그래? 글세.. 좋은 일이라.. 오늘 날씨도 좋아서 정말 좋은 일이 있을 거 같네..

-유라: 웃는 얼굴이 너무 보기 좋아서 옆에 있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김 과장: 사실은 오늘.. 프러포즈를 할까 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야.. 그런데 자꾸 웃음이 나네..

김 과장은 반지를 보여주며 활짝 웃는다. 김 과장의 그녀가 왠지 부러워진다.



결혼은 무덤이라고 했다. 정미를 보면 결혼하고 싶다가도 꿈에서 화들짝 깨어나고는 한다.

시댁의 “시“자도 싫어 시금치 반찬은 절대 안 한다는 정미.. 김밥을 쌀 때도 시금치는 절대 안 넣는다는 정미..

나의 현실이 될까 두려워진다.

그래, 누가 그러더라.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그 미친 짓을 세상 사람들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한때는 그랬었다. 결혼해서 날 닮은 그를 닮은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잘 살리라...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김 과장은 모니터를 보며 하루 종일 입이 실룩거린다. 좋긴 좋은가 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의 일상에 집중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전화기가 미친 듯이 울린다. 곧 끊어질 참이다.

뛰어가서 받을까?.. 내가 다시 걸까?.. 에이 다시 걸지 뭐.

서른이 넘으니 뛰는 것도 힘들다.

휴대폰을 잡으니 김 과장이 웃으며 오른손 다섯 개를 편다.

-김 과장: 누구야? 전화가 다섯 번이나 왔는데.. 다, 다른 사람들인가?

두 번은 승주였고 세 번은 미현이다. 아마 복잡한 내 머릿속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모양이다.

다시 전화가 온다. 미현이다.

-유라: 내 전화 전세 냈냐? 전화를 왜 이렇게 많이 했어?

-미현: 뭘 많이 해? 오늘 얼굴 좀 보자는 거지..

-유라: 난 쉬고 싶을 뿐이다.

-미현: 그럼 내가 너네 집으로 갈게.. 있다가 보자.

-유라: 뭘 온다고 그래, 여보세요?

역시나.. 자기 말만 하고 끊어 끊어버린다.



어제 승주와의 일이 생각났다.

전화를 해볼까? 아니, 하지 말아야 하나? 나는 또 고민에 빠진다. 다시는 이런 거 안 하기로 다짐해 놓고는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래.. 그냥 정리하자. 확실히 선을 그어 두는 게 나을 거야. 최근 통화기록에 남아있는 승주의 이름을 눌렀다. 신호음이 들린다.

-승주: 어 유라야.. 많이 바쁜 모양이구나..

-유라: 그러게.. 바빠서 전화를 못 받았어.. 미안... 왜 전화했어?

-승주: 목소리도 듣고 싶고 보고 싶기도 하고..

-유라: 목소리는 지금 들었으니 됐고, 난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맘에도 없는 소리다. 지난 2년 동안 누구보다도 더 보고 싶었고 누구보다도 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밀어내고 있다.

-승주: 6시 퇴근이지? 회사 앞에서 전화할게..

-유라: 승주야.. 그러지 마.. 불편해..

-승주: 아니, 계속 그럴 거야, 난. 불편해해도 어쩔 수 없어..

-유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니?

-승주: 있다가 보자..

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승주는 정말 날 못 잊고 있는 걸까? 그저 2년 전의 일 때문에 죄책감에서 그러는 거겠지.. 사랑.. 은 아닌 거겠지? 그래 아닐 거야.. 쓸데없는 기대 같은 건 하지 않는 게 맞아. 확실히 해두자. 나는 널 잊은 지 오래됐으니까.. 다시 주문을 건다.


 

가방을 챙겨 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승주에게서 전화가 온다.  받지 않았다.. 서둘러 주차장으로 나왔다.

익숙한 실루엣.  승주는 주차장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년 전과 같은 모습이다.

-승주: 딱 맞춰서 나왔네.. 가자!

승주는 내 차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유라: 차는 안 가지고 왔어?

-승주: 응.. 일부러 나 두고 왔어..

일부러? 김승주.. 너 진짜.. 왜 이러니... 이제 그만 날 흔들어 대..

-유라: 승주야.. 그냥 여기서 헤어지자.

-승주: 집에까지만 같이 가자.. 니 얼굴 계속 보고 싶어.

나는 점점 긴장이 풀리고 있었다. 안돼.. 어떻게 견디고 있는 건데..

차를 화서동 쪽으로 몰았다.

-승주: 어디 가는 거야?

-유라: 이사 안 했지? 너네 집까진 바래다줄게..

-승주: 넌, 나에 대한 감정, 변한 거니?

-유라: 무슨 감정? 아무 감정도 없어.. 변할 감정이 없는데 뭐가 변하겠니..

-승주:.......... 한유라! 그냥 차 세워..

-유라: 뭐?

-승주: 차 세우라고!

승주는 화를 내고 있었다. 왜 화가 났는지 나도 그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애써 외면했다.



버스정류장 조금 지나 차를 세웠다. 승주는 벨트를 풀고 문을 열고는.. 힘껏 문을 닫았다.

아무리 그래도 내 찬데...

그가 왜 화가 난 건지 뻔히 알지만 나는 모른 체 하고 있다. 나도 차에서 내렸다.

-유라: 갑자기 왜 그래?

-승주: 몰라서 묻는 거니?

-유라: 몰라! 모르니까 묻는 거잖아!

-승주: 넌, 그래,  2년이란 시간이 길다면 긴 거지만.. 난 한순간도 널 잊은 적이 없었어. 너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고. 내 맘 네가 알 거라고 생각해. 모른다고 말하지 마. 그때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네가 많이 미웠었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2년 동안 나, 멀리서 나마 널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어. 네 소식 미현이한테서 들을 때마다 반가웠고. 당장이라도 가서 널 안고 싶었어. 그리고 그저께 널 봤을 땐 심장이 터질 거 같더라. 2년 전이 아니라 어제도 만난 거처럼 너무 익숙했고 너무 그리웠어. 나는.. 내 맘은 아직도 널 많이 사랑하고 있어. 근데 넌, 넌, 니 눈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 내가 널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니 눈은 너도 날 그리워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유라: 됐어. 그만해. 네가 날 잘못 알고 있는 거야..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이 모든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나는 차를 타야 했다. 걸음을 돌리는 내 손을 어느새 승주가 잡고 있었다.

-승주: 유라야. 우리 다시 시작하자.

-유라: 아니, 안 할래.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아. 기대하고 실망하고 상처받고.. 그런 거 이제 그만하고 싶어.

그가 잡았던 손을 뺐다. 너무도 따뜻한 손이다. 나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았기에 이렇게 모질게 말하고 있다.

-승주: 그래. 알았어. 근데 나, 포기 안 한다. 내일 또 보자.

승주는 손을 흔들고는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애써 그 눈을 외면했다.

차를 타고 문들 닫았지만 내 눈은 백미러에 비친 그의 등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따뜻한 손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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