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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 Mar 31. 2022

#1. 술이 웬수지

득조가연(得肇佳緣):비로소 아름다운 인연을 만났다

득조가연(得肇佳緣):비로소 아름다운 인연을 만났다득조가연(得肇佳緣):비로소 아름다운 인연을 만났다

#1. 술이 웬수지 


2010년 12월

-김 과장: 한대리 퇴근 안 해? 주말 잘 보내고.. 나는 먼저 간다!

-유라: 김 과장님 데이트 있으신가 봐요? 주말 잘 보내요"

김 과장은 나에게 손을 흔들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무실을 나간다.



또 주말이 된 건가... 한 달 전 선본 여자랑 잘된다고 하더니... 요즘 들어 김 과장의 얼굴에서 웃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이번 주말은 하루 종일 잠만 자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퇴근 준비를 했다.

첫눈이다.

첫눈이 오면 설레었던 10대의 내가 있었는데.. 어느새 나는 삶에 찌든 30대를 시작하고 있었다.

오늘도 변함없는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휴대폰의 요란한 벨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쉬려고 했건만..

싱글들은 주말이 힘겹다.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고 퇴근길에 연인들의 염장질을 보면서 옆구리의 허전함이 견디기가 어려워질 겨울이고 곧 크리스마스이다.

-유라:여보세요?

미현이다. 얼마 전 남자 친구와의 결별로 며칠 밤 나를 괴롭혔는데.. 역시나 주말이 힘들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미현: 여기 블루 씨.. 빨리 와라.. 올 때 던힐 알지? 그냥 보루로 사와라

-유라: 헐~. 야!!

역시나 자기 말만 하고 끊어버린다. 나도 주말이 힘든데 너는 오죽하겠니.. 이해해주자는 마음에 블루 씨로 핸들을 돌렸다.

 

 주말이라 시내는 붐볐고 주차장은 만차였다. 집에 들렀다 차를 두고 오는 건데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내를 두 바퀴 돌고 나서야 겨우 주차를 했고 편의점에 들렀다.

-유라: 던힐 한 보루 주세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네? 아.. 이만 원입니다.

뒤에 서있던 남자가 나를 힐끔 쳐다본다.

남들의 시선 따윈 상관없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내가 필 것도 아닌데.. 지갑에서 이만원을 꺼냈다. 아르바이트생이 봉투에 담배를 넣는다.

 

30대란 나이는 20대가 가지는 삶에 자신감 또는 무모함 보다 미래에 대한 조급함이 더 앞선다.

결혼이라는 숙제를 완성해야 할 나이이다.

사실, 나는 결혼을 꼭 해야만 하는건지부터 의문을 가진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로 남편과 시댁의 험담,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든 일 혹은 자랑이 대부분이다.

남편과 시댁의 자랑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혼을 하면 나는 없어지고,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살아야 한단다. 3~40대의 나는 없다. 아이들로부터 해방되고 나면 어느덧 50이다. 생각할수록 끔찍한 일이다.

그저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삶이 안타까워 보일 뿐이다.


블루 씨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런, 미현 외에 다른 친구들이 더 있었다. 그리고 승주...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헤어진 지 2년이나 흘렀는데... 뒷모습만 봐도 그가 승주라는 것을 알아버리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최대한 담담하게 행동해야 한다. 나는 그를 잊은 지 오래다.

나의 다짐이 끝나기도 전에 미현이 나를 부른다.

-미현: 야! 한유라!! 왔어? 사 오라는 건 사 왔어?

-유라: 나쁜 기집애..넌 나보다 담배가 우선이지?

미현은 비닐봉지를 받아 들더니 급하게 포장지를 뜯는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급하게 빨아들이더니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겉옷을 벗고 의자에 앉았다.

-유라: 웬만하면 끊지. 어째 점점 골초가 돼가는 거 같냐?

-미현: 이 좋은걸 왜 끊어? 차라리 죽으라 그래라..

-정미: 유라야~ 너 전에 봤을 때 보다 좀 빠졌다. 얼굴은 더 좋아졌는데?? 너 화장품 바꿨어?

정미는 사람을 대할 때마다 아래 위로 스캔한 후 폭풍 질문을 해댄다.

-유라: 그냥 좀 빠졌어. 넌 애들은 어떡하고 나왔니?

-정미: 신랑한테 맡기고 나왔지.. 어제 대판 했거든.. 될 대로 돼라 하고 그냥 나왔어.

-미현: 그래, 한 번씩 그렇게 해. 그래야 너도 숨 좀 쉬지.. 잘했다.

-정미: 오늘따라 너네가 부럽구나.. 나올 때도 애들 눈치에 남편 눈치에... 이럴 줄 알았음 좀 있다 결혼할걸 싶다니까

-미현: 지랄한다. 애부터 만들고 결혼했으면서...

-정미: 너는 그걸 그렇게 콕 집어줘야 되니?

-유라: 과일안주 말고 마른안주도 시키지 그랬어.. 오늘따라 오징어가 당기네..

승주가 그 말에 피식 웃는다.

-승주: 여전하구나

-유라: 어..

미현은 오늘도 그 남자 이야기를 꺼낸다. 며칠을 같은 이야기만 듣자니 오늘따라 힘들었다.

누군가 나를 찾아주면 바로 나가리라 핸드폰만 계속 만지작 거리고 있다.


-정미: 유라 넌 만나는 사람 없어?

-유라: 어? 글세 요즘 많이 바빠서.. 정신이 없다 보니 그렇게 되네

-정미: 승주는 그 모델 아가씨랑 잘 돼가?

-미현: 에이 걔랑 헤어진 지가 언젠데.. 지금은 그 간호사 언니 만나나?

승주는 그냥 피식 웃는다.

-미현: 언니~~ 여기 3000 하나 더~~ 아침이슬도 두병~~

-유라: 야! 그만 시켜.. 집에 안 갈 거야?

-정미: 이제 시작인데 뭘 말려. 오늘 뽕을 뽑아보자.

11시다. 점점 피곤이 밀려온다. 미현과 정미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한참을 웃다가 다시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한다.

-승주: 야야야 이제 그만하고 가자. 너흰 지치지도 않냐?

승주는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오더니 미현을 일으켜 세운다.

-승주: 정미 좀 챙겨라. 미현인 내가 데려다줄게.

-유라: 어, 그래.. 너도 조심히 가고..

대리를 불러달라고 카운터에 이야기하고 승주는 미현을 데리고 나갔다.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승주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를 용서한 것인가?

-블루 씨 알바: 대리 왔는대요?

-유라: 아, 고마워요.. 죄송한데 얘좀 같이 일으켜 줄 수 있어요?

-블루 씨 아르바이트생: 아, 많이 취하셨네요

정미를 데리고 밖을 나왔다.

-유라: 정미야 정신 좀 차려봐.. 아.. 진짜..

비틀거리는 정미를 꾸역꾸역 내차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전화기를 꺼내 들고 대리기사에게 말했다.

-유라: 아저씨, 죄송한데 매산동 푸르지오 갔다가 동오 아파트로 가주세요. 야야 최정미.. 정신 좀 차려봐

얘가 오늘 왜 이렇게 많이 마신 거야? 여보세요?? 정호 씨?? 정미가 좀 많이 취했는데 한 15분 후면 도착할 거 같아요. 좀 내려와 주실래요?

-수화기 너머로 정호: 아뇨, 그냥 모텔에서 재우던지 유라 씨 집에서 재우세요.. 오셔도 문 안 열어 줄 겁니다.

-유라: 정호 씨, 그렇지 말고 좀 내려와요.. 오늘 저도 억지로 나간 거라.. 여보세요? 여보세요? 정호 씨?

이런 젠장. 이미 끊어버린 후였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누가 그랬던가...

-유라: 기사님 죄송한데 그냥 동오 아파트로 가주세요.

한숨이 절로 난다.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었건만.

나의 휴일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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