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립 Oct 11. 2024

그 여자는 왜 벌거벗고 거기에 있었을까

세진은 학교에서 가장 유명했던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덕분에 나도 종종 그 술집에 가 술을 먹으며 자질구레한 안주들을 공짜로 얻어먹었다. 그녀는 웃는 게 참 예뻤다. 웃지 않을 땐 그저 그랬던 얼굴이 웃기만 하면 화사해졌다. 남들은 쉽게 말하지 못하는 사소한 느낌들을 푼수처럼 잘 떠들어댔다. 그 영화 다들 유치하다는데 난 그런 연애를 하고 싶어. 나 그 남자가 너무 잘생겨 보여. 이런 것들. 그 무렵 학교에서 나와 어울려주는 것은 세진 한 사람이라 세진이 아르바이트가 끝날쯤 혼자 슬그머니 그 술집으로 기어들어가 함께 마감한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그 시간대 일했던 다른 알바생들과도 안면이 생겨 종종 함께 술을 먹었다. 이따금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으나 얼마 못 가 끊겼다. 그 술집 알바생들도 모두 우리 학교 재학생들이었으므로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엔가는 강의를 듣고 학교 건물 밖으로 나오는데, 학보나 시답잖은 홍보 전단지를 붙여놓는 게시판 위에 웬 여자가 벌거벗고 쪼그려 앉아있었다. 이상하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참 서서 그 여자를 바라보며 저 여자는 어떻게 저런 곳에 안정적으로 쪼그리고 있을까 고찰했다. 그 여자가 나를 쳐다보고 나서야 심장이 이상하게 쿵쿵 뛰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으로 뛰어갔다. 높은 힐 때문에 두어 번 넘어지면서. 집으로 돌아와 다 까진 스타킹을 벗으면서도 그 여자의 벗은 몸만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던 그 두 눈도 같이 떠올랐다. 그날 난생처음 혼잣말을 했던 것 같다. 나 미쳤구나.


엄마에게 뭐라 말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신 차려 보니 나는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었다. 매번 졸린 듯한 표정으로 나른하게 말하던 그 의사는 그날도 무력하게 나를 진료할 수 없다고 했다.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 여자의 벗은 몸이 암세포쯤 되는 듯했다.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을 예약해 두 달 만에 첫 진료를 봤다. 여기저기서 알아주던 그 교수는 내가 조현병이라 했다. 정신분열증이 조현병으로 개칭됐어요. 그 교수는 엄마에게 말했다.


"현악기의 줄을 골라야 연주할 수 있죠? 인간의 정신도 똑같습니다. 지금 줄이 고르지 않은 상태라 그래요. 약을 먹으면 다시 소리가 예쁘게 나요."


연주할 수 없는 인생의 시작이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내가 정신병자인 것을 알게 되니 더 정신병적인 날들을 보내게 됐다. 아무도 없는 집에도 나를 욕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선배와 함께 있다가도 나는 종종 왜 부르냐고 말했다. 그 선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일이 허다했다. 마침내 내가 조현병이라 말하자 그 선배는 그 후로 내가 왜 그러냐는 질문을 하면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정신과 약을 먹으니 살이 계속해서 쪘다. 세진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며 휴학을 했다. 세진이 없는 학교를 다니며 그냥이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 그 선배가 있는 학교를 버티며 한 학년을 보냈다. 미친 듯이 술을 먹을 때보다 먹지 않은 그 한 학년에 살이 제일 많이 쪘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몸무게를 가지고 태어나서 처음 사보는 사이즈의 옷을 샀다. 가진 게 보기 좋은 몸 하나라 생각했는데 그것을 잃었다는 생각에 마치 인생을 잃은 것 같았다. 인생은커녕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나는 제대로 연주하지 못했다. 세진이 복학하는 해에 나는 휴학했다.


스토킹 사건 이후 나는 비싸고 좋기로 유명한 원룸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게 또 학과에서 회자가 된 모양이었다. 공강시간이 생기면 나는 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는 게 좋기도 했지만 역시나 가장 큰 이유는 함께 보낼 친구가 없어서였고, 혼자 덩그러니 집에 있는 것도 싫어서였다. 도서관에서 가장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책만 골라 읽는 동안 전임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구실로 오라는 메시지였다. 학생회에 문제가 생긴 줄로만 알았다. 나는 친구도 없는 주제에 꼬박꼬박 학생회에서 활동했다. 내 의지는 아니었고 주변에서 자꾸만 시켜줬다. 다들 앞에선 내가 사람을 이끄는 재주가 있다고 했지만, 실은 까탈스럽기가 하늘을 찔러 학생들이 대하기를 꺼려하는 교수가 내게는 관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학생회에서 문제가 터지면 늘 내가 그 교수를 대담했다.


연구실에 들어서자 전임교수는 늘 그렇듯 앉으란 말도 않고 본인이 할 말을 꺼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이사했다며? 이게 왜 문제가 될까 싶은 마음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라던데. 또 그렇다고 대답했다. 전임교수는 대뜸 학교 뒤편에 있는 아파트를 아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대답했다. 기러기 아빠가 됐다는 그는 아파트를 하나 구했다고 하며 아파트에 방이 세 개나 된다고 했다. 서재로 쓰시기 좋겠네요. 내가 대꾸하자 나에게 방을 하나 내주겠다고 선심 쓰듯 말했다. 정말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래서 괜찮다고 사양했다. 그는 피차 외로운 사람들끼리 외로움이 무엇인지 대화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을 했다.


"외로움을 대화하면 뭐가 좀 나아지나요?"

"일상이 덜 외롭겠지."

"아예 외롭지 않은 건 아니네요."

"인간이 어떻게 외롭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럼 온전히 외롭겠습니다. 애매한 건 싫어요."


교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연구실을 나왔다. 그제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더 외로워져 집으로 도망쳤다. 나를 외롭게 하는 존재에게로 도망쳤다. 그 선배에게 전화해 횡설수설하며 털어놨다. 학생회를 그만두라고 했다. 그래서 그만뒀다. 그 학기, 그 교수 담당 과목에서 처음 보는 낮은 학점을 받았다. 그쯤 그 선배는 임용고시를 준비한다며 아르바이트를 그만뒀고 퇴직금 비슷한 것을 받았다며 비싼 레스토랑에 가 하우스 와인을 사줬다. 취향이 아닌 술을 삼키며 내가 교수 이야기를 했다. 학교를 쉬라고 했다. 그래서 휴학했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문제가 생길 때 집에다 얘기하면 엄마는 나를 숨겨줬다. 중학교 때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이 돌았을 때 엄마는 학교를 며칠 쉬라고 했고, 고등학교 때 내가 문학 교사와 잠자리를 가지고 논술 시험을 만점 받았다는 오해를 받아 동급생들에게 둘러싸여 욕지거리를 배 터지게 먹고 체했을 때 엄마는 학교를 관두라고 했다. 내가 무언가가 힘들다고 하면 엄마는 무조건 그만하라고 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엄마는 무조건 병원에 데려갔다. 사는 동안 도망치는 법만 배웠다. 법적으로 혼자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게 되자 애인이 도망을 종용했다.


휴학을 하고 병원만 다니며 집에 틀어박혀 약만 먹으니 얻게 되는 것은 체중뿐이었다. 굶고 운동해도 살이 빠지질 않았다. 먹지 않아도 살이 찌는 것 같아 목구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억지로 구토했다. 위액이라도 내뱉어야 살이 덜 찔 것 같았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가끔은 손목을 긋고 가끔은 일주일치 약을 모조리 먹어버리며.


복학하고 이름은 고사하고 얼굴도 잘 모르는 후배들과 수업을 들었다. 그 선배는 수업을 어려워하는 나를 의아해하며 도왔다. 책을 펼치면 글자들이 날뛰었다. 교수가 하는 말이 불어나 독어 같았다. 이상했다. 나는 국어 전공인데 왜 교수는 외국어를 할까 강의 내내 생각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성적에 강박이 심했던 나는 시험이 너무 두려웠다. 더 이상 술을 먹지 않게 됐다. 공부를 해야만 했다. 매일 울면서 책을 들여다봤다. 어느 틈엔 내 원룸에 사람으로 가득 차 들어갈 수가 없었다. 모두 나를 욕했다. 그 선배 집에서 지냈다. 그 좁디좁은 지하방에서. 가끔씩 동 틀 무렵 몸을 섞었다. 앉을 수도 없이 좁은 화장실에서 몸을 씻으며 또 생각했다. 대체 사람들은 이런 걸 왜 할까.


교생실습을 준비하며 나는 또 그 선배 앞에서 많이 울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두렵다고 울었다. 그 선배는 일단 뭐라도 해보라고 했다. 처음 듣는 조언이었다.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해보라는 말이 꼭 성경 구절 같았다. 그 선배는 피우던 담배를 내게 물려줬다. 물을 먹지 않고 약을 삼킬 때 나는 맛이 났다. 이런 걸 왜 피우는 거야? 내가 묻자 그 선배는 그 생각을 세 번쯤 하면 이런 걸 왜 안 피우는지 궁금해진다고 했다.


실습이 시작되고 나선 정말 잘 시간이 없었다. 내 담당 교사는 곧이곧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중년 여성이었고, 다른 실습생은 했다 치고 넘어가는 보고서나 계획서를 꼬박꼬박 받아냈다. 남들보다 세 배쯤 더 되는 분량의 서류를 만들고 수업을 했다. 그러다 한 번은 수업을 하다 실신했다. 그 뒤로 담당 교사는 내게 다른 학생들이 하지 않는 일은 시키지 않았다. 나는 그게 더 죄책감이 들었다. 잠을 자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선배는 담배를 피우면 졸린 게 좀 사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담배를 시작했다. 그 선배의 허락을 꼬박꼬박 받으며 담배를 피웠다. 정말로 이런 걸 어떻게 안 피울까 생각하게 되자 나는 그 선배가 흡연을 허락하지 않으면 짜증이 났다. 그걸로 가끔 싸웠다. 본인이 허락할 때만 담배를 피우라고 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나는 누군가의 허락을 받으며 일상을 지내야 하는지.

나는 나에게 무언가 허락을 구한 적이 있는지.


정신없이 졸업했다. 선배는 고향으로 떠났다. 나는 남겨졌다. 나는 임용고시를 보지 않았고 그 선배는 떨어졌다. 그 선배는 돈을 벌어야 한다며 방문 학습지 일을 시작했다. 거기서 제일 빨리 연락이 왔다고 했다. 이걸 탔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법한 오래된 중고차를 산 그 선배는 기름값을 무서워하며 나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다. 그러면서 담배를 피우고 가끔은 섹스를 했다. 그 선배는 꽤나 진득하게 그 일을 했고 무슨 직함이 하나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나와 미래를 함께하는 것이 무섭다고 했다. 그래서 잘 살라고 말해줬다. 이상하게 그 후로 얼마간은 담배가 생각나지 않았다.






(추신. 조금 아팠습니다. 제 날짜에 연재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비겁하게 덧붙여 봅니다. 건강한 주말 보내세요.)

이전 03화 빨간 하이힐이 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