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진정한 사랑은 과연 해답일까?

『목소리를 삼킨 아이』를 읽고

by 서이안

"내가 바랐던 건 걔가 한 번이라도 나한테 말을 걸어주는 거, 한 번이라도 나를 ‘아빠’라고 불러주는 거였어."


출처: 네이버 이미지

파리누쉬 사니이의 『목소리를 삼킨 아이』는 말 대신 침묵으로 세상을 대하는 아이, 샤허브의 이야기다. 그는 선택적 함구증을 지녔고, 부모의 사랑을 믿지 못한 채 자란다. 특히 아버지는 샤허브의 침묵을 불편해하고, 그 불편함은 조급함과 분노로 나타난다. 샤허브와 아버지의 갈등은 계속 깊어지고, 그 사이에서 어머니는 점점 지쳐간다.


하지만 그런 샤허브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된 건, 다정함을 말없이 실천한 외할머니를 만난 이후다. 외할머니는 조건 없이 아이를 사랑했고, 기다려주었고, 아이의 존재 자체에 기뻐했다. 결국 아이는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문득, 교사로서 내가 만난 아이들이 떠올랐다.

한 아이는 가정의 상처로 조용히 전학을 왔다. 도움반 학생이었고, 심각한 얼굴로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나는 그 아이가 교실에서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일부러 아이들 앞에서 자주 칭찬하고, 교무실로 불러 사탕과 젤리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먼저 수업 시간에 손을 들었다. 그리고 수행평가 시간에는 질문을 쏟아내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며 아이는 점점 웃음을 찾아갔다. 사랑과 환대가 아이를 바꾼다는 걸, 그 순간만큼은 믿을 수 있었다.


또 한 명은 축구부 학생이었다. 최소 성적이 나와야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기에, 나는 그 아이가 수업을 빠지지 않고 듣도록 챙겼다. 그런데 수학 시험에서 0점을 맞았다. 혹시 채점 오류일까 싶어 직접 답안지를 확인했지만, 정말 ‘이리저리’ 찍은 흔적이 가득했다. 마음이 안타까워 무거운 기분으로 교실에 들어갔는데, 아이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래서 속으로 혼자 말했다. '괜찮아, 다음엔 더 잘 보면 되지.' 그리고 작은 문제집을 하나 선물했다.


『목소리를 삼킨 아이』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필요한 건 강요나 훈육이 아니라 사랑과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그리고 교사로서, 어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비슷하다. 단 한 마디라도 환대하는 말, 한 번의 따뜻한 시선, 그리고 조건 없는 기다림.


너는 샤허브 걱정만 하지, 샤허브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지는 못 하잖니. 네가 보여주는 건 걱정이지, 사랑이 아니란다.


이 대사처럼, 나도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더 자주 기뻐하려 한다. 걱정보다 사랑이 먼저인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그리고 그 다정함이, 언젠가 누군가를 말하게 하기를 바란다.

keyword
이전 27화사람은 정말 무엇으로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