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를 닮은 아이

동병상련의 마음이 건넨 가장 따뜻한 위로

by 서이안

그날, 아이는 내 손에 시 한 장을 건넸다.

제목은 사람, 아름다운 꽃 한 송이.

한 줄 한 줄이 빛처럼 번져왔다.

“이건 꼭 제가 선생님께 드리고 싶었어요.”

아직도 아이의 수줍게 웃던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가 기억난다.


사람이 꽃이라면, 나는 들풀에 가까웠다.

짓밟히고, 무심히 지나쳐도 꿋꿋이 서 있는,

그 흔한 꽃 한 송이조차 피우지 못한 들풀...


나는 교사가 되고 매년 글쓰기 동아리를 운영했다.

한 번은 글쓰기 동아리에서 유독 눈에 밟히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내 교과 수업과 동아리를 모두 들었지만 늘 조용했고, 이름과 얼굴조차 매칭이 잘 안 됐다.


전환점은 한 번의 과제였다.

‘다른 사람의 욕망을 내가 욕망하는 순간’이라는 라캉의 철학을 주제로 글을 쓰게 했는데,

그 아이는 스스로를 ‘노예’라 부르며

억지로 외향형이 되려 했던 지난날을 담담히 고백했다.

문장이 놀랍도록 솔직하고 세련돼서, 그날의 최고의 글로 뽑았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칭찬했다.


“OO 이는 정말 글쓰기에 소질이 있어. 솔직하면서도 세련됐어. 대단해. OO이 글에 힘이 있어.”


자신의 이름이 불렸다는 것에 놀라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날 이후, 아이는 매일 아침 7시 반이면 텅 빈 도서관에 앉아 글을 썼다.

나는 아이에게 책을 추천하고, 학생을 더 모아서 작은 독서모임도 꾸렸다.

조용히 피어나는 그 시간을 지켜보는 게 좋았다.


그리고 동아리 마지막 수업 날,

아이는 과자 파티 도중 앞으로 나왔다.

“마지막 수업이라 이건 꼭 제가 선생님께 드리고 싶었어요.”

그 손에 들린 것이 바로 이 시였다.

제자가 선물해 준 소중한 시.

나는 원래 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중학생 때 무료 급식을 신청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두 해를 거의 굶다시피 했고,

집안 사정을 뻔히 알기에 유행하던 옷을 사달라는 말 한마디 못 꺼냈다.

대신 엄마가 어딘가에서 받아온 바람막이를 입었는데,

친구들이 “짭”이라 놀려서 그 후로 한겨울에도 바람막이 대신 추위를 택했다.

나답게 꾸미는 법조차 몰라 늘 두피가 드러나도록 짧게 머리를 밀었던,

그 시절의 나는 고개 숙인 들풀이었다.


아이에게 마음이 더 쓰였던 것도

늘 고개 숙이고 위축되고

우울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서

내 학창 시절이 보였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봐주길 바라면서도,

짓밟히는 일조차 반가운,

그래서 꽃을 피우지 못하고 푸르렀던 들풀.

그런데 아이는 나를 ‘꽃’이라고 불러주었다.


아이가 선물한 시를 자리에 붙여두며

언젠가 답시를 써줘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길가에 핀 들풀을 보고

그 아이가 생각나 답시를 쓰게 됐다.


산책 도중 발견한 들풀.

답장


꽃 한 송이를 받았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

나의 푸르름은 그 꽃잎 앞에

어쩐지 낯설다.


나는 그저

짓밟히다 짓밟히다

콘크리트 틈을 비집고

파랗게 물든 숨을 내쉬는

한 포기 들풀이다.


수많은 발걸음이 스쳐 지나도,

꽃을 피우지 않아도 괜찮다.


나의 초라한 몸부림이

누군가에게는

한 줄기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너의 꽃망울은 활짝 피어나

세상을 향해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고


나의 들풀은 이 자리에서

꿋꿋이 푸르름을 견뎌내며

조용히 네 아름다움을

응원하고 싶다.


그 해 가을이 왔을 때, 나는 아이에게 시집 한 권을 선물했다.

『핑크는 여기서 시작된다』라는 제목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자기 이름이 주로 부정적으로 쓰이는 것 같다며 투덜거렸던 걸 기억하고,

책 곳곳에 아이 이름으로 2행시를 썼다.

‘핑크가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OO이.’라는 쪽지도 함께.


그 후에도 아이는 열심히 글을 쓰고, 종종 시를 선물해 줬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볼 때마다 깨닫는다.

꽃이든 들풀이든, 살아 있는 모든 건 아름답다는 사실을.



keyword
이전 25화나는 살아 있다, 다정함이 그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