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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로 Jan 03. 2020

불렛저널 1년 사용기

'작은 성공'의 경험은 실패를 향해 기울어진 저울을 돌려놓는다

불렛저널을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콘 형태의 불렛(Bullet)을 이용한 일정 관리 시스템'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틀린 설명은 아니다. 오늘 할 일을 나열하고 하나씩 지워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실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불렛저널은 쓰는 사람이 얼마나 궁리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방향으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이 중 어떤 방향이 자신에게 맞는지 판단하는 것도 각자의 몫이다. 사실 '일정 관리 도구'라는 틀에 가두기에는 불렛저널으로 너무도 많은 걸 할 수 있다. 나 역시 일 년쯤 써 보니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불렛저널이란


관련 책도 몇 권 출간되었지만, 사실 공식 홈페이지만으로도 얼마든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올린 매뉴얼 영상도 참고할 만하다. 인스타그램에서 #bulletjournal 혹은 #bujo 등의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전 세계 유저들의 다양한 활용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나한테도 필요한 건데!' 그럼 적용하면 된다. 따라서 같은 불렛저널이라 해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구성이 천차만별이다. 데코레이션 역시 마스킹 테이프를 모으고 있다면 그걸 붙이면 되고, 보태니컬 라인 드로잉에 관심이 많다면 빈 곳에 식물을 그리면 된다. 꾸미기에 자신이 없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꾸미지 않은 그 불렛저널 자체가 당신만의 것이 될 테니. (데코레이션 0%의 내 불렛저널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어도 좋을 것이다)


책 <불렛저널>은 공식 홈페이지와 유튜브 영상을 전부 참고했는데도 여전히 궁금한 점이 남았거나 라이더 캐롤의 철학에 대해 알고 싶을 때 읽으면 된다.



불렛은 간단하게


불렛저널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불렛'이다. (동어 반복?) 점이나 네모, 체크, 아이콘 등의 불렛은 해당 행의 성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2020년 불렛저널의 키 소개 페이지. 2019년 것과 거의 다르지 않다.


네모를 그리는 것조차 귀찮아서 점을 베이스로 한다. 할 일, 완료한 일, 취소된 일, 이벤트, 미룰 일, 메모 정도만 체크한다. 불렛저널을 지출 기록 용도로도 쓴다면 음식이나 옷 등을 그려 지출처를 구분할 수 있다. 구름이나 해, 우산 등의 아이콘을 이용해 날씨 변화를 표시하는 방법도 있다.


일 년 동안 써 보니 지금의 불렛 자체에는 불편한 점이 없었다. 다만 독서노트에 '완독일'만 표시하고 있다 보니, 책을 읽기 시작한 날도 기록해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올해부터는 책 모양 아이콘만 새롭게 추가하기로 했다.



불렛저널의 구성


2019년 불렛저널은 미도리의 MD노트(M 사이즈/방안)다. 모눈 크기도 적당하고 연하게 인쇄되어 있어 필기할 때 거슬리지 않는다. 문고본보다 크고 A5 용지보다 작은 M 사이즈는 대량의 메모를 소화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일정 관리만 한다면 충분하다. 가로로 길지 않아 낭비되는 종이도 적다. 막 굴릴 생각으로 투명 비닐 커버를 씌웠는데, 운치는 없지만(...) 실용성이 높다.


불렛저널의 기본 구성은 아래와 같다.


목차

퓨처 로그(6개월 단위)

먼슬리 로그

트래커

데일리 로그

프로젝트 페이지


프로젝트 페이지는 매달 들어가는 건 아니고, 별도로 관리하고 싶은 프로젝트(이사 준비, 블로그 및 유튜브 아이디어 등)가 생겼을 때 추가하면 된다.



불렛저널의 베이스 캠프, 데일리 로그


일정 관리는 주로 데일리 로그에서 이뤄진다. 불렛저널은 날짜가 미리 기입되어 있지 않으므로 별 일 없는 날은 쓰지 않고 넘어가도 된다. 빈 칸을 보며 찜찜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


날짜 기입의 경우 하루에 한 번은 꼭 거쳐야 하는 일이다 보니 최대한 수고를 줄이기로 했다. 물론 마스킹 테이프나 색깔 펜을 이용해 예쁘게 꾸며도 좋다.


데일리 로그 작성하는 법.


아침에 일어나면 5분 정도 시간을 들여 오늘 할 일을 쭉 적어 내려간다. 이후에도 할 일은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다. 저녁 쯤이면 미처 완료하지 못한 일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굳이 할 필요 없는 일이라면 취소선을 긋고, 나머지는 '미룸' 표시를 하고 먼슬리 로그로 보낸다.


이벤트나 마감이 정해진 일이라면 날짜가 적힌 페이지에, 그렇지 않다면 빈 페이지에 옮겨 둔다. 이 페이지는 매일 데일리 로그를 적기 전 체크해 준다. 아예 몇 달 뒤로 미룰 거라면 퓨처 로그로 옮긴다. 매달 먼슬리 로그를 세팅할 때는 퓨처 로그를 참고해 과거에서 넘어온 일을 적는다.


복잡해 보이지만, 습관으로 자리잡으면 당장 해야 할 일은 물론 앞으로 할 일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불렛저널의 꽃, 트래커


가장 자주 들춰 보는 페이지는 데일리 로그지만, 불렛저널의 꽃은 '트래커'가 아닐까 생각한다. 트래커는 하나의 행동을 얼마나 꾸준히 이어 나가는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페이지다. 꾸준한 행동은 습관으로 자리잡는다.


최근에는 체크만 하면 되게끔 30개의 칸이 그려진 메모지도 팔고 있으니, 트래커를 그리는 게 귀찮다면 이런 메모지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트래커 페이지.


트래커로 관리할 수 있는 항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습관으로 만들고 싶은 행동

빈도를 체크하고 싶은 행동


전자에는 운동, 블로그 글 올리기, 영양제 챙겨 먹기 등이 있다. 매일 15분씩 책 읽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면 '15분 독서'라는 항목을 만들고 실행 여부를 체크할 수 있다.


후자는 매일 실행할 필요는 없지만 한 달,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몇 번이나 이뤄지는지 체크해야 하는 행동이다. 한 달 착용 렌즈를 사용하다 최근 원데이 렌즈로 바꿨다. 사실 원데이 렌즈를 사기 전에 꽤 오래 고민했다.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렌즈를 사용하는 주기가 들쑥날쑥하기 때문이다. 이때 트래커를 이용해 렌즈 사용일을 체크하면 일주일에 몇 번 렌즈를 착용하는지 알 수 있다. 한 달 착용 렌즈와 원데이 렌즈 중 어느 쪽이 더 경제적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건너뛰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불렛저널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궁금한 점이 생겼다.


한 달의 중간에 생성된 프로젝트 페이지는 어디에 넣어야 하지?


오늘이 15일이라고 가정하자. 이번 달 데일리 로그가 다 끝나고 그 뒤에 이어 붙이려면 데일리 로그가 몇 페이지로 끝날지 예상해야 한다. 이는 '정해진 틀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불렛저널의 장점에 어긋난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간단하다.


바로 다음 장에 그리면 된다.


그리고 인덱스에 프로젝트 이름과 쪽수를 적는다. 이 경우에는 데일리 로그의 쪽수가 '10-13, 15-'와 같이 끊길 것이다. 자주 들춰 봐야 하는 성격의 프로젝트 페이지라면 플래그 페이지 마커 등을 붙여 표시할 수 있다.



불렛저널을 쓰면서 달라진 점


일본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2016년 방영된 '퀴즈 아저씨(クイズのおっさん)'이다. 일도 연애도 어느 것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주인공은 퀴즈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퀴즈 1년치'를 부상으로 받는다. 그리고 퀴즈 출제자인 '퀴즈 아저씨'와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혼자서도 잘 드시는 그 분 맞다. (출처: QUIZ JAPAN)


처음에는 시도 때도 없이 퀴즈를 내는 그가 귀찮았지만, 나중에는 퀴즈를 맞추는 행위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퀴즈를 맞춘다'는 행위는 큰 수고가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그 결과를 즉각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작은 성취'는 자신감을 북돋운다. 가벼운 마음으로 곧장 착수할 수 있기 때문에 마감이 닥쳐서야 발을 동동 구르는 일도 줄어든다.


월간지에 실릴 기사 한 꼭지를 쓴다고 가정해 보자. '기사 쓰기'는 두루뭉술할 뿐만 아니라 너무 큰 단위다. 책상 앞에 앉는다고 해서 기사가 술술 써지는 건 아니다. 자료 조사를 하고 취재원 섭외를 하는 등 여러 업무를 거쳐야 '기사 쓸 준비'가 끝난다. '기사 쓰기'는 어쩐지 월말까지 미루고 싶어지는 일이지만 '해당 주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취재원 ○○ 씨에게 전화 걸기'는 훨씬 직관적이다.


실제로 불렛저널을 쓰기 시작하면서 커다란 일을 '즉각 수행 가능한 단위'로 쪼개는 일에 익숙해졌다. 자연히 일을 미루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또한 '작은 성공'의 경험은 실패를 향해 기울어진 저울을 돌려놓는 데 도움이 되었다.


2019년은 불렛저널을 처음 쓰는 만큼 데일리 로그를 채우고 그 일들을 수행하는 데 치중했다면, 올해는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목표를 살펴봄으로써 '작은 성공'을 '큰 성공'으로 만드는 한 해를 보내려고 한다.




연재 리스트

- 메모 습관을 돌아보다

- 불렛저널 1년 사용기

- 2020년의 불렛저널

- 나도 일기 한번 써 볼까

- 읽었는데 왜 기억이 나질 않니

- 노션(Notion)으로 관리하는 독서 생활

- '생산성 도구 노마드'의 노션 정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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