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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로 May 11. 2020

읽었는데 왜 기억이 나질 않니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떤 책이 화제에 오른다. 어? 내가 읽은 책이다.


"나 그 책 읽었어!"


자신 있게 말하자 상대방은 어떤 책인지 묻는다. 저자 이름과 책 장르 정도를 설명하고 나면 말문이 턱 막힐 때가 있다. (종종 저자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말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아니고서야 몇 년이 지나면 인상이 희미해지고 내용은 같은 장르의 다른 책과 뒤섞이기 일쑤다.


인상적인 구절을 줄줄 외우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떤 책인지 정도는 두어 문장으로 추려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기억'의 역할은 컴퓨터와 노트에 떠넘긴 지 오래다)


물론 완성된 문장으로 책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책을 읽는 데 들인 시간과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 나를 고민하게 만든 질문들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건 아니다. 섭취한 음식물이 소화 과정을 통해 원래 형태를 잃고 내 몸에 흡수되는 것처럼, 책을 매개로 일어난 화학 반응은 생각의 방향타를 톡톡 두드려 내가 갈 길을 조금씩 틀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 그 책 읽었어!" 다음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면 어쩐지 허무할 것이다. 때문에 나는 독서노트를 쓰는 데 있어서 최소한의 목표를 아래와 같이 설정했다.


읽은 책의 내용을 50자 내외의 '내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



책장을 덮은 뒤에는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느낀 점 등을 갈무리하려고 한다. 노션(or 에버노트)만 쓸 때도 있었고 독서노트만 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둘 다 활용한다.


1) 노션(Notion)의 독서 목록 표에 책 제목과 저자, 완독일, 장르, 키워드, 별점을 기록한다.


2) 책마다 생성되는 노트에 책을 읽으며 밑줄 친 부분을 모두 정리한다.


노션은 각 행마다 새로운 페이지가 생성된다.


3) 독서노트에 간략한 책 소개와 느낀 점을 정리한다. 이때 '느낀 점'에 포함되는 항목은 책의 장르와 내용 등에 따라 달라진다. (아래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 중 '느낀 점' 참조)


4) 노션에 정리한 인용구 가운데 중요한 것만 추려 독서노트에 필사한다.


이 중 1, 2번 항목은 다음 연재글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고, 이번에는 독서노트에서 벌어지는 3, 4번 항목에 대해서만 간단히 설명하려고 한다.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


책 소개

어떤 책을 읽든 '책 소개'는 빠짐없이 쓰려 하고 있다. 말하자면 '어떤 책이야?'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 출판사 서평이나 서문에서의 책 소개를 그대로 베끼지 않는다. 문장이 지리멸렬하고 책의 핵심을 다소 비껴간다 하더라도 머릿속에서 책 내용을 재구성해서 '내 언어'로 쓰는 걸 원칙으로 한다.


인스타그램에 서평을 올릴 때는 대체로 이 '책 소개' 항목에서 조금 덜거나 덧붙이고 있다.


느낀 점

줄거리와 느낀 점, 이는 독후감의 기본 템플릿으로 자리잡았다. 문제는 이 '느낀 점'이다. '느낀 점'이라는 항목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호불호 혹은 책과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을 서술하는 정도에서 그칠 수 있다. (물론 서평에 왕도는 없지만)


'느낀 점' 아래에 구분자를 여러 개 찍고 활짝 펼쳐서 그 내용물을 흩뿌리면 아래와 같은 것들이 나올 수 있다.

  

책을 읽게 된 계기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생각할 거리 (책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한 내 견해)

○○ 관련 글을 쓰는 데 있어 참고할 내용

책에서 발견한 오류, 아쉬운 점, 보완이 필요한 부분

가장 공감 가는 등장인물 / 공감이 가지 않았던 등장인물

가장 인상적인 단편

더 읽어볼 만한 책 etc.


물론 매 책마다 위 항목 모두에 대한 답을 채우는 건 아니다. 논픽션 장르일 경우 등장인물이나 단편에 관한 항목은 빼면 된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백과사전식 책에 적합하다. 이처럼 책의 장르나 내용 등에 따라 항목을 가감하거나 새로운 항목을 만든다.


질문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수업 시간에 좀처럼 손을 들지 않았다. 질문도 잘 떠오르지 않았거니와 모처럼 궁금한 게 생겨도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혼자 해결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다 보니 잡지사에 들어가 '질의서'라는 걸 마주했을 때는 머리에 쥐가 나는 것만 같았다.


'궁금한 게 없는데 뭘 물어봐야 하지?'


하지만 어렵게 섭외한 인터뷰이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게 되면 '질문하는 행위'를 피해 갈 수 없다. 기자는 질문을 통해 취재를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 그 방향은 곧 독자들이 원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궁금한 게 생겼지만 모른 척 넘어간다?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골치 아파지는 건 바로 기자 본인이다. 질의서만 꼼꼼히 준비해도 기사 쓰기의 반은 끝난 셈이다.


질문을 준비하면서 '궁금한 게 없는데'라는 말이 얼마나 오만한지를 실감했다. 만들기로 작정하면 질문은 무한정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내용을 완전히 이해했을 때, 핵심을 정확히 찌르는 질문이 나온다. 바꿔 말하면 질문을 만드는 과정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 경우에는 저자를 인터뷰한다고 가정하고 적어도 한두 개의 질문은 만들어 보려고 노력한다. 당장 답을 구할 필요는 없지만,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을 언제든 들춰 볼 수 있는 곳에 적어두는 것만으로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인용

책을 읽다 책 내용과 '찰떡'인 인용구를 보고 저자의 넓은 독서 폭에 감탄하곤 한다. 나 또한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다 '이쯤에서 그 책의 한 구절을 넣으면 적절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퍼뜩 들 때가 있다. 문제는 '그 책'이 뭔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을 배경으로 한 현대 소설'이나 '소설가를 위한 작법서' 같이 두루뭉술하게 떠오르면 내가 가진 책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전자책은 양반이다. 검색 기능이 먹히니까. 종이책은 한 장씩 넘겨 가며 내가 밑줄 그은 대목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밑줄을 긋지 않았다면…… 다음 일은 상상하기도 싫다) 빌린 책은 답도 없다.


때문에 책을 읽고 나면 밑줄을 치거나 북마크로 표시한 구절만이라도 전부 갈무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떤 앱이든 검색 기능은 지원하니까 단어 한두 개만 떠오르면 금방 원하는 문장을 찾을 수 있다.


디지털 형태로 정리를 마치면 책의 핵심을 찌르는 문장만 골라 필사한다. 인용구는 검은색 펜으로, 자신의 생각은 다른 색 펜으로 적어 빠르게 넘기더라도 금방 알아볼 수 있도록 한다.




연재 리스트

- 메모 습관을 돌아보다

- 불렛저널 1년 사용기

- 2020년의 불렛저널

- 나도 일기 한번 써 볼까

- 읽었는데 왜 기억이 나질 않니

- 노션(Notion)으로 관리하는 독서 생활

- '생산성 도구 노마드'의 노션 정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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