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슴푸레하다. 푸르스름한 빛이 발코니에 면한 창으로 희미하게 쏟아진다. 찬물로 얼굴을 헹구고 시간을 보면 대강 다섯 시 사십 분쯤. 새벽도 아침도 아닌 모호한 시각에 일어나 몽롱한 정신으로 냉수를 들어킨다. 머리를 감는다. 헤어드라이기로 말린다. 노트북을 챙긴다. 셔츠에 살찐 팔을 욱여넣고 걷는 듯 뛰는 듯 달리다 보면 어느새 버스정류장. 속이 허하지만 아침밥을 먹을 시간이 없다.
국회의사당 본청 1층. 새정치민주연합 공보실에는 김밥이 있다. 김밥뿐만 아니라 커피와 핫초코와 과자와 컵라면도 있다. 그러나 아침의 주인공은 단연 김밥. 오전 일곱 시 사십 분쯤, MBC시선집중과 CBS 뉴스쇼 등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야당 관계자 누가 나왔는지 보고한 뒤 김밥을 먹는다.
참기름을 바른 동글동글한 김밥 위엔 깨가 점점이 뿌려져 있다. 김밥 옆에는 막 배달된 아홉 가지 조간신문과 네 가지 경제지가 놓여있다. 나이를 잔뜩 먹은 근엄한 가장처럼 테이블 위에 신문을 쫙 펴 술술 훑어본다. 각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김밥을 먹으며 신문을 본다. 새정치연합 부대변인 몇몇은 "이런 말 도 안 되는 일이 있느냐"며 여당을 성토하기도 하고 "우리당을 이렇게 쓰다니"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저런 말에 맞장구치며 김밥을 먹는다.
새정치연합에서 주는 김밥은 간이 딱 맞다. 공보실장과 부대변인은 약간 짜서 항의했더니 간이 적절해졌다고 했다. 나는 당근이 풍부한 새정치연합의 김밥을 잘근잘근 씹어먹는다. 모 통신사 기자는 당근이 싫다며 당 김밥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러는 사이 신문을 읽던 모 방송사 선배는 '초등학교 일찍 보내서 청년실업 해결하자'는 새누리당의 창조정책에 탄복해 깔깔 웃는다. 당직자 중 한 명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 논거를 늘어놓은 신문기사를 보고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며 조곤조곤 투덜댄다. 또 다른 당직자는 아침부터 땡땡일보를 보면 기분이 상한다며 슬며시 옆으로 미뤄둔다. 어제 과음한 모 언론사 선배는 푸석푸석한 얼굴로 배를 쓰다듬으며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막내인 나는 선배 기자들이 들어오는 족족 인사를 한다.
새정치연합에 들어오는 김밥 중에서 공보실 김밥이 가장 맛있다는 게 중론이다. 공보실 김밥은 밥이 질지 않고 시금치와 당근 등 재료의 본 맛이 담백하게 느껴진다. 반면 당대표실 김밥은 느끼하고 식감이 좋지 않다는 평이 있다. 마른 밥알이 입 안에서 돌아다니는데다가 미원으로 간을 더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밥도 꽤 맛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접해볼 기회가 없었다.
김밥도 김밥이지만 공보실 아메리카노 또한 매우 맛있다. 시큼하지 않고 적당히 씁쓸한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듬뿍 담아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공보실장이 전격 공개한 필살 레시피를 애용한다. 커피머신 '에스프레소' 버튼 한 번에 '연한 아메리카노' 버튼 한 번. 이렇게 투샷을 뽑은 뒤 엄지손가락만 한 각 얼음 다섯 개만 넣으면 완성이다. 아침부터 투샷이 부담스러울 땐 에스프레소만 뽑은 뒤 냉수를 붓는다.
후루룩 커피를 마시고 나면 오전 여덟 시 이십 분쯤. 이 시간이면 아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인터뷰 스크립트가 홈페이지에 하나 둘 씩 올라온다. 부스로 가서 제멋대로 사는 새정치연합 정치인들이 아침부터 무슨 말을 했는지 정리할 때다. 이 당 정치인들은 이미 합의한 사항이나 당론 따위는 안중에 없이 라디오에서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불쑥불쑥 뱉어내기 때문에 예의 주시해야 한다. 중2 소녀처럼 트위터에 깨알같이 의미심장한 디스를 올리기 때문에 SNS 체크도 필수다.
나도 레시피 공개. 공보실에서 '카페모카' 만들기
1. 커피머신 뒤에 우두커니 놓인 '핫초코 미떼'를 작은 종이컵에 절반 넘게 넣고 뜨거운 물 조금 붓는다.
2. 큰 컵에 에스프레소 한 샷을 받는다.
3. 미떼와 에스프레소를 섞고 쉐킷퀘킷
4. 차갑게 먹고싶으면 얼음에 냉수 넣으면 된다. 뜨겁게 먹으려면 온수 고고.
5. 공보실장님한테 잘먹었다고 인사한다.
6. 일 한다.
7. 혼난다.
10월 4주차 정치기사.
우리 팀 열심히 쓰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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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장아장 정치부>
2. 아장아장 정치부 '둘'
3. 아장아장 정치부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