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웃음으로 바꾸는 한마디

긍정적인 아이?

by 윤슬기

방에서 나와 보니 다섯 살 아이가 손에 펜을 쥐고 있다.


'또 어디서 꺼내 왔지? 근데 펜이 좀 두꺼워 보이네?'


망했다. 안 보고 싶은 네 글자가 눈에 딱 들어온다.


유.성.매.직.


불안하다. 가까이 가보기도 두렵다. 아니나 다를까 매직이 옷 여기저기에 다 묻어 있고, 몇 번을 떨어뜨렸는지 바닥도 엉망이다.


“빛이야, 옷이랑 바닥이랑 이게 뭐야!”


수습할 생각에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지만, 이어지는 빛이의 대답에 화낼 타이밍을 놓치고 뿜어버렸다.


“다행히 손에는 하나도 안 묻었어.”


분명 저 깊은 곳에서 '화'가 끓어올랐었는데, 결국 터진 건 '화'가 아닌 '웃음'이다. 이토록 해맑고 긍정적인 아이에게 무슨 말을 더 하랴.


빛이 말대로 다행이다. 옷이나 바닥보다 자기 몸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서.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옷이나 배경에만 집착하는 것보다 백번 낫다. 지금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알면, 그걸로 됐다.



근데 언제쯤이면 아빠의 마음도 소중하다는 걸 알아줄래. 바닥에 새긴 유성매직을 보니 다시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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