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했던 전 직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대표님이 새로 부임하셨다. 그곳에는 최소 10년에서 최장 40년 가까이 근무한 직원들이 있었다. 오래 된 직원들을 물갈이하겠다는 결심으로 칼을 빼든 대표님은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들을 하나하나 내보내기 시작했다. 내가 들어간 때는 그 물갈이가 한창 진행되던 시점이었다. 40년 가까이 그곳에서 일했던 대표님의 비서분이 은퇴 시점을 1년 앞두고 강요에 의해 일을 그만 두기 직전이었다. 20여년 넘게 대표님의 차량을 운전했던 기사님도 퇴직을 강요받고 있었다.
내가 그곳에서 일했던 이년 삼개월 남짓, 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직원들이 그 곳을 떠났고, 꽃 같이 젊고 활기찬 이삽십대의 직원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내가 들어갔을 무렵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직원들이 두세 명 있었으나 마흔 두어 살 즈음 내가 그곳을 떠날 무렵에는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고 대부분이 나보다 최소 열 살 이상이 어렸다.
그곳에서 근무한지 이년쯤 되었을 때의 일일 것이다. 일 년 반쯤 전에 일을 그만 두고 떠난 대표님의 전직 기사님께서 잠시 사무실에 오신 적이 있었다. 그 분은 밝은 안색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얘기하며 자신을 떠나도록 강요한 대표님이 인생 최고의 은인이라고 하셨다.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 둔 후 아는 사람을 통해 제주도에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으셨고 그 일이 너무도 만족스러워서 돌아볼수록 자기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은 그때 기사 일을 그만 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불면증과 건강 상태의 악화를 이유로 그곳을 떠난 동료도 마찬가지이다. 직장을 그만 둔 후 그 분은 책을 쓰고 개인 사업을 시작하였다. 40대에는 사업을 통해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50대에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미래를 키우고, 60대에는 꽃과 나무를 키운다는 꿈이 있었던 그녀는 자신의 꿈대로 문화 사업을 하는 40대를 거치고, 젊은 세대를 키우는 멘토 역할을 하는 50대를 바라보고 있다. 세권의 책을 내고 간간히 이런 저런 매체에 소개되는 그녀의 삶을 보면 자신이 꿈꾸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젠가 워킹맘 선배님 한 분에게서 아래와 같은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첫째를 임신하고 회사를 다니던 어느 겨울날 퇴근길이었다. 좋은 근무 조건과 급여로 인해 독재자 같은 사장의 부당함을 어쩔 수 없이 감내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전철역에서 나와 칼바람이 몰아치는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5분마다 한 대씩 와야 하는 버스가 10여분이 넘도록 오지 않고 있었다.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는데 이미 앞 정류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오던 버스는 만원이 되어 있었다.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은 그 차를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판단했는지 이미 사람들이 꽉 찬 버스 안으로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고 있었다.
선배님은 부른 배를 하고 그 차에 탈 엄두가 나지 않아 차를 그냥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그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다음 버스가 도착했다. 그 차는 앞 차에 모든 사람이 타버려서인지 텅텅 비어 있었고 앉을 자리도 몇 개 남아 있었다. 이윽고 그 차는 다음 정류장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있던 앞 차를 추월해 지나갔다. 그리고 선배님은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선배님은 자신이 앉아있던 텅 빈 마을버스가 사람이 가득 찬 앞 버스를 추월하는 순간, 회사를 그만 둘 결심을 하였다고 한다. 그 때, 보다 나은 다음 기회는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섬광 같은 깨달음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과감한 선택을 내릴 수가 있었다고 했다. 그 후 아이를 낳고 한 참 쉬다가 이런 저런 업무를 거쳐 그 선배님은 어느 비영리 조직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결단을 스스로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진학, 결혼, 취업, 이직, 임신, 퇴직, 복직, 이사, 이혼, 재혼 등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닥치면 아무리 많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해보아도 결국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그런 순간들에 대한 선택권은 결국 자신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절대적인 외부적 확신을 구하며 누군가에게 선택권을 맡겨버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주저하며 변화를 선택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두들겨 맞아가며 변화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돌아보면 이직과 관련하여 갈림길에서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하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후회가 될 어리석은 선택을 하면 어쩌지 하는 우려에 주위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구하기도 했었고, 사람들의 의견보다는 내 가슴속 소리에 집중하여 온전한 스스로의 판단으로 단호하게 거절을 하기도 했다. 그러한 선택이 필요했던 순간에는 휘트니 휴스톤의 노래 The Greatest Love of All을 흥얼거리곤 했다. 결국 선택을 내려서 그 결과를 온전히 껴안아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므로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중만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가장 옳은 선택이란 과연 무엇일까 스스로 물어본다. 나를 갇히거나 시들지 않게 하고, 내가 가장 생생하게 살아날 방향으로 마음이 향하는 것, 그래서 그 길을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 아닐까? 스스로 한 선택에 대해 바보 같았어. 할 수는 있지만 바보 같은 선택에서도 배울 점은 있는 법이다. 지난 시절 내린 결정을 보면 그랬다. 그래서 내가 내린 선택은 결국 내게 가장 적절했던 선택으로 결론내릴 수 있었다. 한때 '스스로 선택한 시련은 시련이 아니다'라는 말을 만트라처럼 외우고 다녔다.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자각이 인간을 얼마나 당당하고 가치 있게 할 수 있는지를 이직을 통해 여러 번 배울 수 있었다.
어떤 버스를 선택하든 결국 그런 자신을 사랑스럽게 껴안을 수만 있다면 다 괜찮다. 그 선배님의 섬광 같은 깨달음이란 결국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 거기에서 선배님은 스스로 원하는 바를 선택할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돌아보면 점으로 내린 결정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흐름을 보였다는 스티븐 잡스의 말도 결국 이런 선택을 얘기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고 존중하는 선택이 가장 좋은 선택이며 그런 선택은 자신이 원하는 길로 향하게 하는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스스로를 생생하게 만들어가는 결정이면 결국 천복을 향한 결정일 것으로 믿어본다.
회전
손을 놓으면 바람결 따라 뱅그르르.
때가 된 거야
잡을 곳도 닿을 곳도 없이
지금은 회전을 즐겨야 할 때
바램을 접고 내 뜻을 놓고
떨어지는 그 곳에 내 맘 틔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