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인생에는 저마다의 각도가 있다
30대는 인생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시기이다.
나 때는 라떼는 말이야 일단 같은 학교 울타리 안에 있으면 동질감이 느껴지던 때였다. 아마 그 때도 잘 사는 집 애들과 못 사는 집 애들의 차이는 있었겠으나 일단 학교에서는 같은 머리에 같은 교복을 입었고 서로 어울리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대학교에 가서는 있는 집인지 없는 집인지 학자금 대출을 받는지 안 받는지에 따라 어떤 아이가 있는 집 자식인지 없는 집 자식인지 골라낼 수는 있었지만, 굳이 그걸 들추려는 사람도 없었고 학교 잠바 입고 같이 대동제를 즐길 때면 지역이고 집안이고 상관 없이 위 아 더 월드였다.
우리는 그때 신촌에서 술을 거나하게 걸치고 무려 서강대교를 걸어서 여의도까지 넘어온 밤이었다. 한강물에 반짝이는 아파트 불빛을 보면서 A는 내가 나이 서른이면 저기 보이는 집 내가 다 살거야, 강가를 따라 줄지어 있는 아파트촌을 가리킨 손가락을 크기 한 바퀴 둘러 원을 만들면서 호기롭게 말했었고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A가 가리키지 않은 빈 곳을 향해 역시 저마다의 울타리를 그리며 10년 후면 그만큼의 부를 일굴 수 있을 것이라고 외쳐댔고 그 땐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혈기와 희망이 있었다.
우리가 취업하고 나서는 맥주 한 캔씩을 들고 한강고수부지를 강물 따라 걸으며 그 때를 추억한 적도 있었다. 우리 대학 다닐땐, 저기 있는 집들 중 하나는 우리 집일 줄 알았는데. 라고 말하면서 강 건너 반짝이는 불빛을 하염없이 쳐다봤었던 때 - 아마 그 때 눈 꼭 감고 아무 데나 손가락으로 가리켜 거기 있는 집을 한 채 장만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이제 그 강가와, 맞은 편 아파트촌이 한 눈에 보이는 여의도 호텔 꼭대기층 바에 앉아서 만오천원 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그 아랠 내려다본다. 나에게 커피를 사준 친구는 이제 곧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건넸고 덕분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2014년, 부동산 폭등이 있기 진작도 전에 영등포의 미분양 아파트를 사 놓은 그 친구는 덕분에 결혼할 수 있었다고, 지금 그 집은 이미 두 배는 넘게 올랐다고 했다. 부동산에 대해 알은 척을 하며 맞장구를 치니 얼마전에는 예비 장모가 찍어준 동네에 건물을 하나 매입해놓기까지 했단다. 역시 전문직이라 재리에 밝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미리 준비해온 선물을 여태 건네지 못한 게 떠오른다. 단돈 오천원이라도 아낀다고 인터넷에서 주문한 록시땅 핸드소프를 자, 개업 선물이야 라고 건네며 개업하고는 좀 어때? 라고 물으니, 너 한테만 얘기해주는건데, 라며 귀를 가까이하라는 시늉을 한다. 개업한 지 석 달 째인데 벌써 수천은 손에 쥐었다 한다. 주로 부자들의 회계/세무 상담을 해 준다는데 큰 건은 한번에 두 장이나 받는다고. 와, 내가 일년은 족히 일해야 벌 돈을 뚝딱 버는 걸 들으니 부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화제를 바꿔 아참, OOO이랑은 연락하고 지내?라는 말로 시작한 친구들 근황 이야기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그때 함께 부른 배를 두드리며 젊음의 노래를 불렀던 예닐곱 남짓의 대학 동창 중에는 더 높은 연봉을 향해 세 번이나 이직한 투자은행 직원, 대기업을 다니다 안정적인 삶을 찾아 정착한 교직원, 게임회사 시나리오 작가, IT회사 직원 등 이제 저마다의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친구들도 있는 반면 고시 낭인이 되어 연락이 전혀 닿지 않는 친구 A와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소식을 끝으로 몇 년 째 소문으로만 입에 오르내리는 친구 B도 있다. 이처럼 우리 중 어떤 이는 용이 되려다 승천하지 못해 이무기가 되었고 나머지 다수는 우리 사회라는 거대한 개천의 생태계를 떠받드는 가재, 붕어, 게가 되어 있었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마 인생에는 각도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모두 같은 출발점이었다가도, 인생의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향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다른 각도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 각도가 얼마였든 간에 처음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각이 1, 2도에 불과하더라도 그 직선을 쭉 길게 이어붙이다 보면 어느새 그 둘은 절대로 만나기 힘든 지점까지 떨어져 버리고 만다.
우리는 그 직선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