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지금 나는 끝도 보이지 않는 긴 줄에 서 있다.
다른건 몰라도 이건 꼭 타야한다는 절친 윤서에게 이끌려 온것이었다.
수다쟁이 혜림이와 과묵한 유진이도 거들었다.
음식,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 옷 입는 스타일 등 모두 다른 우리였지만 놀이기구 앞에선 나를 제외한 세사람이 대동단결이다.
그때 내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한 친구들은 핑크빛 추측과 확신을 가득 담은 속눈썹을 느끼하게 깜박거렸다. 나는 별 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어보이려 했지만 실실 삐져나오는 입꼬리를 집어 넣기가 힘들었다. 민망함에 친구들을 등지고 조심스레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주수민. 어디냐?”
“나? 왜?”
“어디냐고.”
“그니까 왜?”
“아무튼 빨리 말해봐.”
“후...룸...”
“후룸라이드?”
“응.”
“알겠어.기다려.”
전화를 끊자 친구들은 대본이라도 외운 듯 같은 대사를 외친다.
“뭐래? 강민혁이?”
“어디냐고.” 최대한 담담한척 이야기 하려고 했지만 벌써 심장이 격렬한 운동을 시작한 것 같았다.
“그래서? 온대?” 혜림이가 요란을 떨며 깔깔거렸고 남은 두 친구는 “응?” “응?”하며 대답을 재촉했다.
나는 보일듯말 듯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은 몸을 베베꼬며 꺅꺅 거렸다.
그 아이 그러니까 강민혁하고 나 사이의 이상한 공기가 흐른 것은 한달전에 있었던 짝궁 바꾸기 때문이었다. 담인은 뽑기 24개가 들어있는 투명한 유리병을 흔들었다. 남자보다 여자의 성비가 훨씬 적었던 우리 학교는 남학생 열 명만 여자 짝궁과 앉을 수 있었고, 나머지 열 네명은 왠지모르게 조금 슬픈 남남 짝궁을 받아들여야 했다. 여학생들이 모두 번호표를 뽑자 담임은 한명씩 번호를 불러 자기 짝궁을 찾아오라고 했다.
“다음은 수민이, 몇 번인지 크게 불러봐.”
지금 같은 시대에는 남녀불평등으로 크게 이슈가 될 법한 방식이었지만, 그때는 짝궁을 행사장에서 경품행사처럼 하는 일이 많았다. 당시에 나는 어렸기에 이런 사회적인 지식이 갖춰지기 전이라 단순히 열다섯 소녀의 부끄러움으로만 가득찼었다. 나는 일렬로 서 있는 남자아이들을 훑어봤다. 아직 2차 성장 전이라 여자애들이 거의 키가 비슷한 남자애들 사이로 180cm이 훌쩍 넘는 두 사람 정훈과 민혁이 보였다. 정훈은 두손을 꽉 모아 쥔채 앞뒤로 흔들고 있었고, 민혁은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있었다.
나는 수줍은 목소리로 외쳤다. “9...9번 누구야?”
민혁이 씩 웃으며 나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