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아침부터 물류센터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관리자 외 출입 금지인 의료기기 구역에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발견됐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리자들은 정신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어떤 약이 없어졌는지 확인하고 있었고, 직원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속닥거렸다. 문제는 의료기기 구역 앞 CCTV가 하필이면 고장 나 있어서 범인을 바로 색출해 내는 것이 불가능했고, 일반 제품을 훔쳐서 바로 기둥 뒤로가게 된 사람들은 있었지만, 의료기기 구역에서 절도사건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관리자들조차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는 듯 보였다. 집품팀은 진열팀에게 진열팀은 재고 조사팀에게 다시 재고 조사팀은 집품팀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잘잘못을 따지고 있었다.
“포장팀에 조필국이라니까?”
“아니야 반품팀에 한소은이야.”
몇몇 사람들은 무턱대고 그것도 실명을 저렇게 얘기하면서 남을 의심하는 것이 얼마나 나쁘고 무식한 행동인지 알지 못하는 듯 보였다.
수민과 환섭은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환섭은 워낙 젊잖은 어른인 탓에 함부로 남의 말을 하는 인물이 아닐 테고, 수민은 입이 무거운 편은 절대 아니었지만 (수민은 미경과의 일을 환섭에게 냅다 일러바쳤다)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어.”
얼마 전 미경과 실랑이했던 장소가 바로 의료기기 구역이었음을 수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앞에 있었다고 미경을 범인으로 지목하기엔 증거가 부족했다.
확실하지도 않잖아. 일단 입 꾹 다물고 있자. 관리자들이 찾아내겠지.
사람들이 조필국과 한소은을 의심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먼저 포장팀의 조필국은 직원이 열 명이 안 되는 작은 기업에 영업과장이었다고 했다.
직장인의 작고 소중한 월급으로 그를 만족시킬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의 인생 좌우명은 ‘인생 한 방’이 되었고 주식, 코인, 영끌 부동산, 로또, 경마 같은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생의 한방이 어딨던가. 물론 가끔 있다. 하지만 그게 나일 거란 생각은 하지 말자. 원래 맛집은 꼭 우리 집 주변에 없는 것이고, 로또는 매주 당첨자가 나와도 나는 그중 한 명이 되지 않는 것이고, 모든 행운은 나만 피해 다니는 법이니까. 조필국은 그 간단한 이치를 죽기 전까지 깨닫지 못했고 결국 공격적 투자를 했던 주식과 코인이 나락으로 가던 날 화병으로 죽었다.
물류센터에 와서도 그는 어떻게든 일을 안하려고 꼼수를 부렸고 포장을 대충 해서 물건이 다 깨지는 것은 기본에 송장도 제대로 확인을 안해서 사람들의 택배가 바뀌기도 했다. 혹시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날수가 없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면, 조필국이 송장을 잘못 붙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심해 보길. 다른 걸 다 떠나서 그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 받는 것은 어떤 물건을 지상으로 보낼 것인지를 쉬쉬하는 다른 직원들과 다르게, 자신은 약을 보낼 거라 말하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가 말했던 약은 배탈 나게 하는 약, 피부 발진을 일으키는 연고, 탈모가 생기는 약같이 인간의 목숨에 치명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모든 약들은 의료기기 구역에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가 약을 보내려는 대상들은 주로 위에 언급한 재테크 방법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잘 먹고 잘살 생각을 하니 배알이 꼴려서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인간의 탐욕은 죽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태훈을 포함한 재고조사팀 사람들이 의료기기 구역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정확히 어떤 약이없어진 건지 알아야 훔칠만한 사람을 찾기가 쉽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일반 사원 출입이 안 됐기에 재고조사를 단 한 번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관리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여기서 뭔가 잘못된 게 생기면 관리자들이 책임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요.” 태훈이 내부를 가볍게 훑어보며 말했다.
“다 똑같이 생겼는데 적혀 있는 의학용어만 다른 게 너무 많아요. 거기다 다 여... 영어.” 태훈은 죽을 당시 10살이었기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다. 해서 조금이라도 어려운 용어나 외국어 그중에서도 특히 영어가 쓰여 있는 제품을 계수할 땐 얼굴이 새파래지곤 했었다. 의료기기들을 보고 있는 그의 얼굴은 군데군데 퍼렇게 물든 과일 같았다.
“범인은 바로 저 여자예요.”
소란스러운 센터 안을 단번에 정숙 시킨 목소리가 있었다.
장미경이 손끝으로 누군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들은 장미경의 손끝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모든 이의 시선이 멈춘 곳의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수민이었다.
“며칠 전에 저 여자를 의료기기 구역 앞에서 봤어요. 그리고 자기 입으로 직접 말했어요. 뭘 찾는 중이었다고요.”
수민은 눈에 보이는 않는 어떤 강력한 힘이 자신을 밀고 있다고 느꼈다.
계속해서 몸이 뒤로 떠밀려 뒷걸음질 치는 것을 멈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마 그 강력한 힘이란 의심의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군중의 시선이었을 것이다.
“저... 전 아니예요. 전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어요.”
“수민 님 잠시 저희랑 가시죠.” 관리자 중에서도 유독 키가 큰 남자 두 명이 수민을 데려갔다. 환섭과 혜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봤지만, 이번 일은 그들이 돕기엔 권한 밖의 일이었다. 장미경은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 같은 표정을 지으며 턱을 한껏 높이 들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니까?”
잠시 후 수민을 데려간 남자 두 명이 돌아왔다.
“미경 님도 저희랑 같이 가시죠.”
미경은 칠색 팔색을 했다. “나는 왜요? 어머머 별꼴이야.”
“어쨌든 미경 님도 그날 의료기기 구역 앞에 계셨던 것 아닙니까.”
“나는 누구 좀 만나러 간 거예요. 의료기기 따위는 관심 없다고요.”
“일단 자세한 건 가셔서 얘기하시죠.”
“싫어요. 난 못 가요. 이거 놔요. 이거 안 놔? 야!!!” 미경은 두 남자의 팔에 들려 공중에 두 다리가 뜬 상태로 날아갔다.
소은은 기숙사로 넘어오는 다리를 건너며 한숨을 푹 쉬었다.
매일 참새 방앗간처럼 들리던 직원용 마트도 가고 싶지 않았다.
왜 이렇게 사건, 사고가 생기는 건지...
하긴 이곳에 와서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있었던가.
죽자마자 여기 와서 일 적응하느라 힘들었고, 맨날 그놈의 돈! 돈! 돈은 여기서도 날 괴롭게 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좋으면 일이 고돼도 즐거운 법인데 서로 의심하고 고발하지 못해서 안달이고. 이런 생각들을 아니 울화가 치밀어 오름과 동시에 서럽고 외로웠다. 갈 수 있는 곳이라곤 물류센터 아니면 기숙사이니 답답하고 어디 맘 편히 고민을 털어놓을 가족이 있든가 친구가 있던가. 겨우겨우 기숙사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수민.
소은이 두꺼운 책들을 잔뜩 보다 깜짝 놀랐는지 화를 벌컥 낸다.
“왜 노크도 안 하고 막 들어와?”
“야! 이 방이 네 거야? 내가 내 방 들어오는데 노크해야 해? 그럼에도 네가 하라고 해서 그동안 했어. 네가 새벽까지 책상에서 시끄럽게 해도 참았고 불 다 켜고 스탠드까지 켜서 잠 설쳐도 참았어. 그리고 너 어디 고딩 주제에 어른한테 반말이야. 내가 도대체 어디까지 참아야 해? 어?” 평소 같았으면 그냥 미안하고 말 수민이었지만 지침과 설움이 분노로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소은은 갑작스러운 폭격에 잠시 그 상태로 얼어있었지만, 재빨리 입부터 해동시켜 보복 사격을 시작했다.
“고딩이라니. 내가 어렸을 때 죽어서 그렇지 지금 나이는 너보다 많아. 어이구. 너는 늙어서 죽으셔서 얼굴에 그렇게 주름이 있으세요? 좋으시겠네요. 지금부터 어른 대접 해드릴까요? 꼬박꼬박 존댓말 써 드릴게요. 어른이신데 당연히 존댓말 받으셔야죠. 맞죠, 아줌마?”
“뭐...뭐? 아줌마? 아니 근데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그냥 선을 막 넘네? 아슬아슬하게도 아니야. 그냥 뭐 무서운 게 없지?”
“그래. 나 눈에 뵈는 거 없어. 이렇게 어린 나이에 살인자 새끼한테 죽임당해서 화가 나고 억울해 죽겠어서 다른건 안 보인다. 왜.”
“센터 사람들이 네가 살인자한테 복수할 독극물 훔쳤을 거라고 쑥덕댔어도 나는 너 아닐 거라고 했어. 넌 아니겠지만 난 그래도 룸메이트라고 정인지 뭔지 조금 생겼다. 근데 지금 보니까 내가 잘못 생각했네. 이렇게 안하무인에 복수밖에 안 보여서 아무것도 뵈는 게 없는 인간이라면 그 사람들이 맞을 수도 있겠다 싶네.”
“웃기지 마. 너야말로 오늘 끌려갔다며?”
수민은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다행히 CCTV의 그날 수민의 모습이 찍혀 반지를 떨어트려 아래층에 내려간 것은 입증이 되었지만, 아직 의혹에서 완전히 풀려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의료기기 구역 앞에서 본 증인이 있고, 반지를 일부러 떨어트려 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선반 사이에 숨어 의료기기 구역을 몰래 관찰하고 있었다는 점 때문에 관리자들은 수민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어? 보아하니 누구한테든 뒤집어씌우고 싶은 모양인데 사람 잘못 골랐어.”
수민의 눈에 소은이 읽던 책의 제목이 들어왔다.
<약물의 기본과 이해>, <약물 처방의 오남용>, <함께 쓰면 독이 되는 약물 100>
“너 이거 다 뭐야?”
수민이 책 한 권을 집어 들자, 소은이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손대지 마! 가만 안 둘 거야!!!”
소은 말대로 수민은 죄를 뒤집어씌울 사람을 찾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무섭게 몰아부쳤다. 약물이란 단어에 소은의 대한 의구심이 폭발하며 그만 이성과 자제력을 동시에 잃은 것이었다. 평소에 사람 좋다 소리 듣는 사람들도 극한에 상황에선 짐승이 되는 법이다.
수민은 소은의 책상과 침대 주변을 철저히 감싸고 있는 검은 천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 역시 평소 소은이 숨기려 했던 것들이었다.
“주수민 너 진짜 미쳤어? 하지 마! 죽여버릴 거야!”
소은이 수민의 목덜미를 뒤에서 잡고 말렸지만, 아직 17살 몸을 가지고 사는 소은은 키가 훨씬 크고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단련된 26살의 수민의 질주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천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간이 물류센터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샀다고 보기엔 여기서 평생 일해도 벌 수 없는 비싼 물건들이 가득했고, 지상에 내려보내기 위한 택배 상자와 송장도 한가득이었다. 매일 새벽까지 깨어있던 소은. 수민은 이제야 그녀가 뭘 해왔는지 알 것 같았다.
뒤를 돌아 소은을 보는 수민. 소은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수민의 눈두덩이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소은이 우는 이유는 단순히 자기를 향한 분노 때문이 아님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자신처럼 외롭고 서러움이 가득한 눈물이었다. 방바닥에 눈물 닦고 코 닦은 휴지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그리고 눈과 코가 빨개진 수민과 소은이 주저앉아있다.
“그러니까 반품팀에서 너랑 같이 일하던 분 중에 그 네 명이?”
소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은 그동안 감춰왔던 것들을 수민에게 모두 사실대로 털어 놓는 중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살인자가 처음으로 죽인 사람이 수민이고 그 후에 네 명이나 죽어 센터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다달이 돈을 모아 살인자를 죽일 약물을 사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선 천문학적인 액수의 금액을 지불하고 세 가지 약물을 사서 동시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의식을 잃게 하는 약, 근육의 움직임을 마비시키는 약, 최종적으로 심장의 발작을 일으켜 심정지를 유발하는 약이 그것이었다. 이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약효가 제대로 발휘되질 않아 실패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럼, 저 물건은 다 뭔데?”
“그 살인자에게 아들이 한 명 있어. 부인은 벌써 죽었다나 봐.”
“아들?”
“그 사람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어쨌든 살인자의 아들이잖아. 잘먹고 잘사는 꼴은 볼 수 없지. 나도 살아있었으면 좋은 대학도 가고, 원하던 직업을 찾게 되고, 결혼도 할 수 있었는데. 살인자 그놈에게 알려주고 싶었어. 죄의 대가는 혼자 치르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이야.”
“그래서 온갖 안 좋은 물건 보내서 괴롭히고 있다는 거야? 근데 저거 다 어디서 났어. 샀다고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 마. 나도 이제 웬만큼 가격 다 아니까.”
소은이 머뭇거리자, 수민이 방바닥을 손으로 툭툭 치며 재촉했다.
“다섯이 돈 합쳐서 산 것도 있고...”
“그리고?”
“반품 들어온 거 중에... 가져온 것도 있고...”
“뭐? 훔쳤단 말야?”
“아니 훔쳤다기보다는 뭐... 그러니까 어차피 반품 들어온 거고 그중에서 깨지고 그런 건 다 폐기할 건데 아까우니까 필요한 사람이 가져다 쓰면 어떨까 싶어서...”
“미쳤구나! 미쳤어. 너 그럼 설마?” 수민이 소은을 매서운 눈으로 쳐다봤다.
“아니야. 의료기기 그건 정말 나 아니야.”
“사람 죽일 약물 공부를 맨날 하고 물건도 막 훔쳐 오는 애가 그건 아니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진짜 아니라니까? 훔칠 거였으면 진작 훔쳤지. 왜 그렇게 힘들게 야근에 철야까지 자청했겠어. 나랑 반품팀 사람들 관리자들이 쉬어야 한다고 말려도 일한 거 너도 알잖아.”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지난 5개월가량 본 소은은 누구보다도 돈 모으는 것에 진심이었다. 직원용 마트도 안 가고 생활용품도 폐기 된 것을 주워다 쓸 정도였다.
“그러는 너야말로 진짜 아니야?” 이번엔 소은이 수민을 노려봤다.
“난 진짜 반지 찾으러 간 거라니까? 그리고 너도 알잖아. 난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라. 근데 뭐하러 그런걸 훔치겠어.”
“그건 그러네. 그런데 너 진짜 생각 안 나? 네가 왜 죽었는지?”
“응.”
“나는 조금 알 것도 같은데.”
“뭐?” 수민이 눈을 크게 뜨자 이마의 주름이 생겼다.
“샤워할 때 목덜미도 좀 꼼꼼하게 씻어.”
“목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