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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출근한다.

50대 취업의 문턱에서 다시 마주한 일의 의미

by 신수현

50대에 접어들면서 취업의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걸 느낀다.

당근 어플을 살펴보면, 단 2시간의 아르바이트 자리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2월부터 초등학교 방과 후 행정직을 맡게 되었지만, 이곳도 취소자가 발생하여 얻은 일자리이다.

주 15시간 미만의 단기 근로자를 채용하는 곳에도 지원자가 넘쳐난다.

이곳에 오기 전, 쿠팡 물류지원센터의 웰컴데이에 참석해 하루 체험을 해봤다.

무거운 생수통과 세제통을 옮기는 일이었는데, 반나절 만에 힘이 빠져버렸다.

그동안 힘들다고 떠났던 회사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쿠팡이 사람 만드는 곳이구나'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6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다.

학생 수가 많은 학교는 오전에도 방과 후 수업이 있지만,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면 월급은 고작 70만 원이다.


처음에는 이 일을 꺼렸지만, 그래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매일매일이 지루하고 그 지루함이 힘들었다.

생활비는 매달 300만 원 정도인데, 70만 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꾸준히 구직활동을 하며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연락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5월은 종합소득세 신고의 달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몇 년 전부터 알고 지낸 세무법인 실장에게서 아르바이트 제안이 왔다.

5월 초부터 휴일에도 출근하고, 학교업무가 없는 날에도 일을 했다.

학교는 5월 16일까지 근무하고 퇴사할 예정이다.

나의 오해일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 약간의 마찰이 있었다.

만약 이걸 오해라고 생각하지 않고 계속 다녔다면, 내 생활은 더 어려워졌을 것이다.

5월 8일은 휴무라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예전에 면접을 봤던 세무사님과 통화를 했다.

미채용 되었던 곳이라 나는 이미 그분의 연락처를 삭제했다.


작년 가을에 면접을 봤던 곳으로, 인상도 좋고 채용할 것처럼 사무실을 안내해 주셨지만, 결국 “실장은 여러 경험을 원했지만, 경험이 부족해 죄송합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사실 실장직은 실력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닌데, 그걸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실장이 거래처 사장과 다투고 그만두었다고 했다.

소득세 신고가 코앞인데, 실장 외에는 신고할 사람이 없었고, 개업한 지 2년 정도 된 곳이라 거래처도 많지 않았다. 신입 두 명은 세무사의 자녀였다.


직책이란 자기 직분애 대해 실력을 다해야 하는 곳이지만 면접이나 서류만으로 판단할수 없다. 구직자도 세무사도 사람을 구하는 일은 어렵다.


나와 같은 시기에 면접을 본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한 곳에서 30년 가까이 일한 경력이 있어 나보다 채용된 것 같았다.

하지만 소득세 신고 기간에 짐을 싸고 나간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가 나더라도 붙잡는 것이 예의고, 마음에 안 드는 세무사나 거래처라도 신고를 마치고 나가야 하는 법이다.


사람들은 근무한 시간으로 그 사람의 실력을 평가한다. 나도 실력이 많지는 않지만, 이력서에 기재된 경력도 검증할 수 없고, 면접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어필하는 것이 전부다.


예전 같았으면 나를 채용하지 않는 곳에서 연락이 오면 가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일자리가 필요했고, 세무사님도 일할 사람이 필요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19일부터 출근한다고 했지만, 2주 안에 소득세 신고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학교 퇴근 후 저녁에 사무실을 방문해 거래처와 신고 대리인 수, 일의 진행 상황 등을 검토하고 돌아왔다.


가족이 근무하는 곳은 누구나 꺼리기 마련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아들은 조용한 성격이지만, 딸은 그렇지 않다.

가르쳐주는 대로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사람들이 악의가 없다면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세무사님은 나를 채용하고 싶다고 권했지만, 5월까지 근무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면, 나는 항상 취업이 안 되었고, 취업이 될 때는 모두가 힘들어 나가 버린 상황에서 취업이 되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신고는 잘 마쳤다.

이번 회사도 그런 곳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나를 미채용한 것에 대한 반발감이 섞여 있다.


내일은 휴무인데, 소득세 신고가 걱정되어 출근한다고 했다.

그리고 토요일도 출근하고, 19일부터는 매일 출근해야 한다. 자유롭게 늦게 출근했던 학교를 떠나 이제 월급쟁이 근로자가 된다는 생각에 걱정과 피곤이 몰려온다.

하지만 월급 걱정 없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그곳에서는 불평과 불만을 말하지 않고, 오직 일에만 전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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