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형 독감이 떠난 자리에 더 독한 놈이 왔다.
2016년 12월 24일, 안국역 헌법재판소를 다녀온 다음 주인 26일 월요일, 몸의 이상을 느꼈다.
하필이면 꽃개도 그날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평소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다녀온 뒤 밥 먹고 편히 자라고 8시에 주던 사료를 7시쯤 줬는데 고개를 돌리더니 그냥 자러 간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녀석은 맛이 없는 것보다 배고픈 걸 더 못 참는 성격인데. 그날 아침부터 토하기 시작하더니
음식은 물론 물까지 거부했다. 6차례 이상 토했는데 물만 마셔도 토했던 것이다. 병원에 갔더니 사람도 과음을 한 다음 날 속이 괴로운 것처럼, 개들도 주기적으로 뱃속에 든 걸 게워내고 싶어 할 때가 있다고. 처음엔 소화 중인 음식을 토했고, 속이 빈 뒤에는 투명한 거품 토를 했다. 문제는 물조차 토해버린다는 것. 탈수증이 오면 어떡하지? 몸의 이상을 감지한 녀석은 바로 숨어버렸다. 안방 욕실 샤워 부스 안의 어둠 속에 자기를 방치했다. 무리 동물의 습성, 자기의 죽음이 무리에 해를 끼쳐선 안 된다는 DNA의 명령.
12월 27일 화요일, 열과 통증을 잡으려고 아스피린을 먹고 잤더니 아침에 일어나 옷을 벗는데 땀이 호스에 틀어놓은 물처럼 후드득 쏟아졌다. 헐. 도서관에 책을 반납해야 하는 날이어서 샤워를 하고 움직였다. 오후에 옷을 단단히 껴입고 덜덜 떨면서 병원에 갔더니 38.5도. 의사가 이쑤시개 같이 생긴 봉으로 콧구멍 깊숙이 쑤셨다. 불편해 죽겠는데 괜찮으니까 힘 빼라고. 잠시 뒤 결과가 나왔다.
축하합니다, 당첨되셨어요.
약국에 가서 헬조선 당원증을 발부받았다.
백신 주사를 맞는 줄 알았는데 타미플루도 아니고 한미플루를 처방받았다. 캡슐이 10개 들었는데 12시간 간격으로 하루 2회 복용이었다.
개인적으로 한겨울 징크스가 있긴 했다. 얼굴에 피부 트러블이 생긴다든지 겨울이 가기 전 한 번쯤은 몸살이 나는 경향이 있는데 A형 독감은 정말 장난 아니었다.
체내에 바이러스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폐로 가면 폐렴이 되고, 머리나 심장으로 가면 심각해질 수도 있으니 약을 복용하는 초기에 잡히지 않으면 입원해야 한다고 겁줬다. 어른은 잘 안 걸리는데 희한하게 걸렸다며. 정말, 약을 먹어도 잘 낫지 않는 느낌이었다. 집에서 촛불 집회에 나갔던 옷차림 그대로 입고 지냈다.
더 걱정인 건 전염이었다. 황교안 총리의 무능한 은총에 힘입어 대한민국을 덮친 A형 독감의 기세로 봤을 때 가족한테 옮기는 건 시간문제 같았다. 나는 나를 안방에 유폐시키고 식사를 따로 했으며 수저와 컵을 따로 썼다. 수건은 물론 욕실 자체를 따로 써서 전염 가능성을 원천 봉쇄했다.
꽃개는 수요일쯤 회복해서 조금씩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주말 직전까지 갤갤거린 뒤 해가 바뀐 월요일 병원에 한 번 더 갔다. 바이러스는 잡힌 것 같은데 후유증, 기침이 문제였다. 목구멍을 간지럽히는 뭔가가 있다. 아마도 침이겠지. 코 안쪽에서 생산돼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이것들이 어느 정도 고이면 자지러지는 기침을 유발하는데 자다가 깨어날 정도다. 소리도 폭발하는 것처럼 크게 나와 옆에서 자는 아내는 물론 꽃개까지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맹세컨대 평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빌어먹을 기침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기침은 간간히 나온다. 이틀 전까지 발작적으로 내 몸을 지배했던 기침의 꼬리 같은 기침이.
잠을 못 잘 정도로 기침이 심하다고 하소연해 약을 받아왔는데, 전혀 듣지 않았다. 주말부터 수요일까지 거의 닷새 밤을 고생한 뒤 겨우 진정됐다. 지금도 기침은 미약하게 내 목구멍 언저리에 남아서 언제든 활개를 칠 것처럼 대기 중이다. 아무튼 그렇게 겨우 A형 독감의 마수에서 벗어나나 했더니
더 센 놈이 나타났다.
전형적인 공안몰이. 서석구를 비롯한 김기춘, 황교안 따위가 생사람을 간첩으로 잡을 때 쓰는 수법. 이석기를 내란음모로 몰아간 혐의도 딱 한 번의 모임이었다. 그것도 대법원에서는 인정조차 안 한 RO. 국정원이 녹취록을 조작해 이석기가 거기서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생사람을 간첩으로 만드는 구조가 그렇다. 어떤 사람이 일상생활을 99.99퍼센트 바르게 애국적으로 살아도, 0.01퍼센트의 문제적 발언(그들 관점에서)을 하면 그 사람은 0.01퍼센트에 의해 99.99퍼센트를 부정당하는 간첩, 종북, 좌파, 빨갱이가 된다.
나는 일찍이 광장에 나온 사람들이 "한 가지의 정해진 주장"만 펴는 건 아니라고 했다. 박근혜는 당장 꺼지라는 큰 틀 안에서, 박근혜로 대변되는 기득권 세력, 위정자들에게 당한 사람들과 집단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에, 세월호 유가족은 당연히 세월호를 들고 나오고 노조는 노조의 깃발을 들고 나오며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이석기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안 억울해? 국가보조금까지 지급된, 대한민국이 인정해준 정당을 지지했을 뿐인데 이석기 한 사람의 부정행위(0.01퍼센트)를 근거로 정당(99.99퍼센트)을 통째로 없애버렸는데. 그건 헌법재판소의 폭거였고, 헌법재판소가 헌법 정신을 부정한 악행이었다.
김기춘은 0.01퍼센트도 안 되는 기득권 세력을 위해 공안몰이를 했고(불의에 저항하는 국민을 종북, 좌파, 빨갱이로 몰아 개돼지로 만들기)
그럴 목적으로 대법원장을 사찰했으며(대법원장도 사찰한 마당에 다른 새끼 판사들은?)
국정원 부정선거 재판에도 개입하는 등
헌법에 명시된 삼권분립 자체를 부정했다. 박근혜 잔당은 헌법이 정한 기구의 힘을 와해시키고, 통제하에 둬 자기들 마음대로 부려먹으려 했다. 이석기를 근거로 한 통진당 해산 사건도 그중 하나이니, 박근혜 탄핵 요구 시위에 이석기를 살려내라는 목소리가 포함된 건 논리적으로 당연한 이치다. 이런 글을 쓰면 또 바보 같은 사람들이 "너도 이석기 지지자냐?" 하고 내가 하는 "말"이 아닌, 내 "정체성"을 문제 삼겠지만 이런 거다.
무지는, 어느 정도 허용되는 자유라는 거.
1월 2일 JTBC에서 진행된 신년토론회를 생각해보자. 전원책 변호사는 이재명 성남 대통령이 제시한 법인세 실효세율에 대해 그런 엉터리 숫자를 가지고 선동하지 말라고 격하게 반발했다.
그런 태도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거다. 토론조차 안 되는데 그보다 훨씬 상위 개념인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하겠다는 건가? 이석기라는 한 개인의 생각, 사상, 주관적 사고,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틀릴" 수도 있다. 현실 정치 세계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공안몰이로 국민을 개돼지로 개조해온 자들의 주장대로 이석기는 주체사상에 사로잡힌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기독 사상에 사로잡힌 사람한테도 아무 말 안 한다. 내가 그것을 부정하거나 논박하려면 성경을 공부해야 할 텐데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석기도 마찬가지. 그 사람 개인이 가진 사상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박하려면 주체사상이란 걸 알아야 할 텐데 알고 싶지도 않고, 그럴 시간도 없다. 타인의 사상을 안다는 건 그런 것이다. 그렇게 피곤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다핵주의"를 지향한다. 하나의 핵만 옳다고 정해 모두를 그 핵 안에 가두면 그게 바로 독재,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북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석기의 옳지 않은 사상일지라도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고 그냥 그것대로 둘 때 우리는 북한 사회를 배척하는, 종북, 좌파, 빨갱이라는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광장에 나온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단체들, 수많은 깃발들을 그냥 보고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출발점인 것이다.
박근혜를 대리하는 변호인인 서석구는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한 것이다. 사람들의 다채로움, 다양한 사고, 다양한 관점을 모조리 배격한 것이다. 박근혜가 곧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핵을 근거로, 나머지 반대자들을 모조리 종북, 좌파, 빨갱이로 몰아버린 것이다. 그가 문제라고 본 행동을 한 사람은 전체 집회 참가자 중 몇 퍼센트에 해당될까? 천만 명 가운데 몇 명이나 그랬을까? 0.01퍼센트로 99.99퍼센트를 부정하고 단죄하는 전형적인 공안몰이 화법.
서석구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을 부정한 것이다, 민주주의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하지만 대한민국 검찰이 서석구를 긴급 체포해야 하는 근거는 따로 있다.
미국 국방부가 발표했다는 인공위성.
아내가 이 허무맹랑한 심리전 메시지를 접한 게 2016년 12월 3일이다.
나도 보고 깜짝 놀랐고(미 국방부, 인공위성, 3374명으로 똑 떨어지는 경이로운 숫자, 3375명이나 6명이라고 하면 허위사실 유포?) 청와대 비아그라들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헌법재판소에 출석해 박근혜를 변론하는 자가 이런 조잡한 심리전을 인용했다?
출처를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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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까지 갔지만 출처는 난망. 3번과 4번 검색 결과에 삽입된 출처를 클릭하면, 검색 결과 2번이 재등장.
사실 여부를 떠나 우리들 목 위에 달린 머리란 걸 써보자.
미국 국방부가 최순실 홍위병 박근혜가 염려돼 인공위성을 조종해, 찍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미국 혈세로 월급 받는 미국인 직원이 위성사진을 컴퓨터에 띄워놓고 일일이 촛불을 셌을 수도 있겠지. 똑같이 그렇게 했잖아? 한국 언론도! 경찰 추산 인원과 집회 측 추산 인원이 왜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느냐며 카메라에 찍힌 촛불 숫자도 세고,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자 수를 집계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미국 국방부 직원은 무조건 맞고 한국 언론사 직원은 무조건 틀린다는 근거가 대체 뭐임? 그리고 우주에서 궤도를 도는 카메라가 찍은 사진이랑, 건물 옥상에 올라가 찍은 사진이랑 어느 쪽이 더 정확한데? 그리고 나처럼 집회엔 나가도 촛불을 안 든 사람들은? 촛불 대신 깃발을 든 사람들은? 촛불 대신 푯말을 든 사람들은? 미국 국방부의 위대한 인공위성이 그 사람들을 어떻게 포착했다는 거지? 그리고 박근혜를 청와대에 꽂은 조선일보로 대변되는 기득권 대변 언론사가 조중동문은 물론 JTBC를 제외한 종편 3사, MBC, KBS까지 서슬 퍼렇게 살아있는데 이것들이 그 좋은 발표를 인용하지 않는다고?
왜? 한겨레나 경향신문은 그럴 수 있다 쳐도 단원고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까지 날린 MBC가 가만있을 이유는 없잖아? 서석구 어깨 위에 달린 머리는 이걸 대체 어떻게 해석하는 거지?
박사모가 버리고 간 태극기. 서석구 말대로 하면 박사모야말로 대한민국을 버린 반역자들이다.
또한 그는 어버이연합 법률고문이라고. 알고 봤더니 박근혜는 어버이연합 수준?
대한민국 검찰은 서석구를 긴급 체포해 "인공위성" 허위사실을 유포한 배후를 밝힐 것을 촉구한다.
나는 A형 독감을 잡고
꽃개는 사료를 잡고
검찰은 서석구를 잡고
대한민국은 희망을 찾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