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신인철학 57
<신인철학> 연재 (야뢰 이돈화 지음)
제1편 우주관
제2편 인생관
제3편 사회관
제1장 사회진화사상
제2장 사람성 자연의 사회진화관
제3장 사회질병설
1. 범죄학상으로 본 사회질병
2. 추상적으로 본 사회질병 (이상 다시 읽는 신인철학 56까지)
수운은 70년 전 경신년(1860) 4월 5일에 직각(直覺)적 통견(洞見)과 명철한 관찰로 사회질병을 선언한 바 있다.
수운은 경신 4월 5일에 자기의 주의를 선언할 때 ‘나의 영부를 받아[受我靈符] 사람들을 질병에서 건지라[濟人疾病]’라는 교훈을 내렸다.
[역자 주 : 여기서 이돈화는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라'라고 말하는 주체를'수운은 ~ 자기의 주의를 선언할 때'라고 하여 '수운'으로 상정하고 있다. 이 점이 신인철학에서 '한울'을 탈각시키(려)는 일단의 시도라고 보여진다. 훗날 야뢰는 '수운심법강의'를 쓰면서, 신인철학의 논조를 반성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이러한 '한울 배제'의 논리를 철회하였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그리하여 ‘아동방(我東方) 연년괴질(年年怪疾) 인물상해(人物傷害) 아닐런가’라고 한 것은 당시 조선사회의 무의식적인 혼돈상태의 참담한 사회현상을 가리킨 말이요, ‘일천하(一天下) 괴질운수(怪疾運數) 다시 개벽 아닐런가’라고 한 것은 세계현상의 결함을 지적한 말이다. 말하자면 수운은 개인의 정신적 결함과 조선의 당시 참상과 세계의 사상혼돈을 아울러 총괄하여 이에 괴질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괴질이란 무엇이냐?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부적 결함과 외부적 결함의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내부적 결함이란 것은 정신적 상태의 결함을 말하는 것이요, 외부의 결함이란 것은 물질적 상태의 결함을 말하는 것이다.
수운은 정신 상태의 결함을 ‘각자위심(各自爲心)’이라는 표어로 대표하였으니 ‘각자위심’은 곧 수운주의의 정신적 화악(禍惡)이라 볼 수 있다.
원래 우리 마음은 우리의 형체가 다른 것과 같이 마음도 또한 각각 다른 것이며 환경의 지배가 천차만별임과 같이 마음의 작용도 또한 천차만별이 될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인만심(萬人萬心)을 동일선상에서 획일코자 하는 것은 이에 위반[相違]되는 것이며 또한 가능한 사실도 아니다. 수운도 역시 이 점을 잘 통찰하였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수운이 깊이 우려한[深憂] ‘각자위심’이란 무엇을 말할까? 그것은 자아중에 복재(伏在)해 있는 ‘한울아(我)’를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에게 물질적 환경에서 생기는 마음은 만인만심이 될는지 몰라도 각 개아(個我) 중에 있는 우주대생명의 혼, 즉 ‘한울 아’의 본체는 전혀 동일할 것이다.
무한한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각각의 물결과 물결의 현상은 그 양태, 그 장문(狀紋)이 다르다 할지라도 물결과 물결의 본원되는 대해(大海) 그것은 하나일 것이며, 유일대목(唯一大木)의 생명에서 분파된 천지만엽(千枝萬葉)은 그 양태가 각각이라 할지라도 그 천지만엽의 본원되는 대목(大木)의 생명체는 하나일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개체는 천태(千態)의 형상 만상의 심법을 가졌다 할지라도 전 인간의 본원이요 인간격의 중심인 ‘한울아’는 전연 동일할 것이니 사람의 현상적 개아(個我)는 시시각각으로 환경 여하에 따라 마음이 변한다 할지라도 그 본원되는 ‘한울아’는 결코 피아(彼我)가 없을 것이며 갑을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전적이며 유일이며 자존이며 자율이니 사람은 당연히 이 ‘한울아’의 체(體)에 합일되어 인간격의 대생명을 체득함으로써 인간이 인간되는 지위에 올라 갈 것을 말함이다.
그런데 현대의 인간은 그 형체상에서는 인간의 형체를 가졌으나 인간격으로 당연히 발견할 만한, 다만 인간격이라야 소유할 만한 ‘전적아(全的我=한울아)’를 전연 망각한 상태로 사는 것이니 이것이 인간으로 생명을 잃은 자이며 영혼 의식을 잃은 자라 볼 수 있다. 이 점을 수운은 심히 개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한울님만 믿어서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捨近取遠: 가까이 있는 것을 버리고 멀리에 있는 것을 취하려고 함)하단 말가.’
내 몸에 모신 한울, 즉 ‘한울아’는 아의 ‘전일(全一)의 아’이며, 소아(小我)에 대한 대아(大我)이며, 개체아(個體我)에 대한 보편아(普遍我)이다. 사람은 이 전일아, 대아, 보편아를 믿어서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경애에 달할 수 있으니 사람마다 한가지로 이 전일아 경애에 들어 설 때에 상태를 수운은 ‘내 마음이 곧 네 마음(吾心卽汝心也)’이라 하였다.
사람의 현상은 천차만별이라 할지라도 전일아(한울아)는 유일이므로 누구나 이 전일아의 생명에 접촉되는 날 ‘오심즉여심’의 경애에 달하게 된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 사람은 이 전일아를 망각하고 물질현상에 집착되어 각각의 사람을 믿으며 각각의 물을 믿으며 각각의 언어를 믿으며 각각의 문자를 믿어서 각자위심이 되는 것이니 고로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한울님만 믿어서라 네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하지 말라’한 것이다.
원래 인간은 먼 옛적부터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간을 동물적인 비열한 동기로부터 구출하기를 힘썼던 것이다. 그들은 종교로, 철학으로, 과학적 의식 또는 기타의 사상으로 여러 가지 방면에서 자기네의 몽매 즉 동물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상태에 나가고자 힘썼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날 이마마한 현상을 조출(造出)하였고 금일에도 오히려 한 단계 높은 지위로 올려 뛰고자 노력하는 중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의 가장 심려되는 조건은 인간정신이 중심을 잃은 그것이다. 그들이 과거 자기네의 정신적 중심이던 모든 중심을 시대 변천으로 인하여 스스로 해체하지 아니치 못할 비운(悲運)에 빠지고 본즉 그들은 다시 구식의 중심에 의거할 길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상태는 마치 끈이 끊어진 구슬과 같이 알알이 뒹굴게 되었다. 이것이 곧 각자위심된 동기다. 그래서 그들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새 중심을 얻기 위하여 새로운 요구를 제출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요구의 답안으로 나온 것이 곧 수운주의다.
지구는 일찍이 산산히 헤어져 있는 성운(星雲)의 파편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그 시대에 있어 지구의 상태는 산산히 흩어져 있는 환구(環球)와 환구의 열적(熱的), 혼돈적 투쟁에 지나지 않는 살풍경(殺風景)한 수라장이었다. 그러나 지구는 끊임없이 그 흩어져 있는 분쟁상을 규합하여 일대 중심의 집합력을 짓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래서 지구는 마침내 중심력을 얻고 모든 각자위심의 물질상태를 집합하여 미려(美麗)한 금강석(金剛石)의 보주(寶珠)와 같은 원구를 태양계 위에 실어 놓은 것이다.
인간사회의 생활상태도 역시 이 경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이 산산히 흩어져 있는 이 파편의 사상 상태를 어떤 고상한 중심력에 의하여 한 단계 높은 당반에 올리고자 노력하는 주의가 곧 수운주의며 또 수운주의의 인간격 지상생활이다. 인간격 지상에서 우러나오는 한울아의 파지, 전적아의 표현생활이니 수운주의는 이로써 현대인의 정신 결함을 구출코자 하는 것이다.
수운은 <권학가>라는 노래 속에서 ‘일세상(一世上) 저 인물 도탄중(塗炭中) 아닐런가’라고 하여 현대인의 고뇌를 말하고, 나아가 이 세상은 요순의 다스림으로도 부족시(不足施: 베풂이 부족함)이요, 공맹의 덕으로도 부족언(不足言)이라 하였다. 동양의 이상적 정치와 이상적 도덕도 이 세상을 건지기엔 오히려 부족하다 함은 바로 선후천(先後天)의 경계를 분명히 갈라놓은 것이니 소위 ‘사시지서(四時之序)에 성공자거(成功者去)라’는 말과 같이 그들의 선천의 묵은 교화는 이미 성공의 막을 닫고 세계라는 보좌를 보다 이상(以上)의 이상(理想)과 보다 이상의 도덕(道德)에 양보하였다는 말이니 수운은 스스로 그 자리에 의심없이 나아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