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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r 01. 2019

3.1혁명과 다시개벽의 꿈(4)

- 3.1운동은 종교운동이며, 독립선언서는 민족의 대헌장이다

[필자주 : 이 글은 "3.1운동백주년종교개혁연대"의 발표(2019.11.22)와 <신인간>(2019.2, 3, 4월호 3회 연재 예정)에 투고하는 원고를 수정보완하여, 증보한 것이다. [발표 및 신인간의 230여 매 원고가 450여 매로 증보되었다.] [3월 1일이 되는 날까지 이 글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발표 당시에 "3.1운동"이라고 한 것을"3.1혁명"으로 호명하였다. - 구체적인 논증은 別稿를 기약한다]


박 길 수 (천도교중앙도서관 관장)


Ⅰ. 기도와 상상력으로 3.1혁명 바라보기 

. 3.1혁명은 다시개벽 혁명이다    (이상 1회)

. 3.1혁명은 종교운동이다    (2회)

Ⅳ. 독립선언서 전말기    (3회)



Ⅴ. 종교적 ‘상상력’으로 독립선언서를 읽자


3.1혁명에서 종교의 위상은 시나브로 거세되어 왔다. “3.1운동은 세계 역사상, 종교문화의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민족자주독립을 위해 서로 다른 종교가 연합하여 비폭력 정신을 앞세워 전개한 운동”이라는 종교-친화적인 평가가 여전히 인구에 회자되고 있지만, 3.1혁명에서 종교의 역할을 한정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3.1운동은 종교인들이 시작하였지만, 종교운동이 아니라 민족운동이었다”)는 종교계 안팎을 막론하고 두루 힘을 얻어가고 있다.


게다가 오늘날 탈(脫)종교 문명이 시대의 대세가 되고, “종교가 세상과 사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아니라 세상과 사회(국가)가 종교를 걱정하며 원조(각종 비용)”하는 시대가 되면서, 종교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또한 무신론(無神論)에 입각한 근대(과학)문명이 전 세계를 풍미하는 이 시대에 ‘종교’의 역할을 강조하고, 일찍이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한 이래 ‘만들어진 신’[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김영사, 2007.]이라는 말이 득세(得勢)하고, 당대 최고의 과학자는 유언에서조차 “신은 없다”는 말을 강조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금, 종교의 미래는 있는가를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스티븐 호킹 유고집, <큰 문제에 대한 간략한 대답(Brief Answers to the Big Questions)>, 2018. - 내용에 대해서는 출간 당시의 신문기사를 참조함.]


종교가 존재할 가치나 이유가 없다면, 그것을 고집할 까닭은 없다. 그마저 놓아버리는 것이 “그분(한울님)이 보기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신과 인간이 지금만큼 가까워진 적이 없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호모데우스’[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호모데우스-미래의 역사>, 김영사, 2017.], 즉 ‘신이 되는․될 수 있는․된 인간’이라는 말이 ‘신은 죽었다’는 말보다 더 널리 회자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신 없는․사막의․황량한․절망의 세계․문명․우주’로 가는 길과 ‘신과 더불어․한 몸으로 사는 세계․문명․우주’로 가는 길의 갈림 길에 서 있다. 어느 세계․문명․우주가 우리의 실제 미래가 될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이야기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이야말로 살아 있는 우주로부터 출현한 살아 있는 지구의, 살아 있는 존재로서 인간이, 우리의 진정한 본성과 가능성에 따라 살 수 있는 전례가 없는 순간이다. 신성한 삶과 살아 있는 지구의 진정한 이야기가 떠오르고 있다. (중략) 이야기를 바꾸면 미래가 바뀐다.” [데이비드 코튼 지음, 김경식 옮김, <<이야기를 바꾸면 미래가 바뀐다>>, 지영사, 2018. 12쪽.]


이런 의미에서 미래 종교의 ‘신’은 결국 ‘살아 있음’을 신화(神化)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종교는 존속될 것임을 주장하는 말이 아니라, ‘종교’ 역시 ‘차원’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마음, 인간의 가능성, 인간의 살아 있음을 ‘신격화’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무신론자와 종교인이 갈라진다. 즉, 무신론자의 반대는 유신론자가 아니라 ‘종교인’이다. 


이러한 종교적 상상력의 계발(啓發)을 촉구하면서, 그 출발점으로 기미년의 독립선언서를 종교적 상상력과 종교적 낭만성을 기반으로 하여 새롭게 읽어 보자. 이러한 종교적 상상력의 부활이야말로, 미래의 종교를 재구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종교인의 상상력에 의한 독법이란 기미독립선언서가 종교인의 ‘기도문’이라는 관점을 도입한다는 것이요, 낭만적인 독법은 ‘지금 여기’에서 ‘그날 그곳(하느님 나라, 佛國土, 地上天國)’를 지향[cf.발은 땅에 머리는 하늘로]하는 종교인의 이상 지향의 정서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1. ‘선언’으로서 완성되는 글01 – 만지장서와 말씀의 선포


오늘 우리는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를 세계만방에 알려 인류가 평등한 큰 뜻[人類平等 大義]인류을 분명히 밝히고, 이를 자손만대에 알려 민족자존의 올바른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한다[民族自存 正權 永有].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힘입어 독립을 선언하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독립의 뜻을 널리 알리고[佈明],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독립을 주장하며, 전 인류가 한결같이 바라는 세계 개조의 큰 뜻을 따르고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독립을 주창[提起]하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며[天(明)命] 시대의 큰 흐름이며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가는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하는 활동이므로, 세상 그 무엇도 우리의 앞길을 막지 못할 것이다. [이하 <선언서> 번역은 필자]


독립선언서의 첫머리는 “①조선은 독립국이며 조선인은 자주민임, ②인류평등의 대의, ③자손만대에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함을 ④ 선언, 포명, 주장, 제기한다. 그리고 이것이 ⑤ 하늘의 명령[천명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 인류 공존동생권의 발동”임을 밝힌다. 


‘선언’은 ‘말씀의 선포’이며 그 자체로 종교적이다. “개벽시(開闢時) 국초일(國初日)의 만지장서(滿紙長書) 나리시고, 십이제국(十二諸國) 다 버리고 아국운수(我國運數) 먼저”(<용담유사> '안심가')하는 글 그대로가 독립선언서이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던 첫날에 “하느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신 화법(話法)과 용법(用法) 그대로, 독립선언서의 첫머리는 말씀의 선포로서 기도문이다. 하느님에게 오늘의 일을 돌이키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게(誕生偈)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그 ‘선언’의 화법과 용법 그대로가 독립선언서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선언서는 그 자체로 ‘발화(發話)’와 동시에 완성되는 ‘수행적 발화’이다. 진인사(盡人事) 대천명(待天命)에서 ‘진(盡)-대(待)’가 동시에 완성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관점과 입장은 독립선언서에서 수미쌍관(首尾雙關)하고 전일(全一)하다. 


“오등은 자(玆)에 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중략) 착수가 곧 성공이라! 다만 전두(前頭: 앞쪽)의 광명으로 맥진(驀進; 힘차게 나아감)할 따름인뎌!” 


독립선언서의 지상(至上)의 위력은, 그것이 선언함으로서 완수된다는 데 있다. 


2. 민족의 주문(呪文)


독립선언서는 1919년 2월 27일 2만1천매가 인쇄되어 그날로 서울에서 전국 8도로 분포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독립선언서 중 상당수는 기독교 혹은 천도교 조직을 타고 전국적으로 배포됐다. (중략) 중앙에서 온 선언서를 전달받아 배포하는 역할에 그치는 단순 대리인들은 3․1 운동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선언서는 빠르게 전염되고 증식하고 변형됐다. 서울에서 작성한 선언서의 일부만 인쇄하거나 ‘민족대표’의 명의만 비는 등 변형의 사례는 무수했다. 위에서 든 원산에서는 2월 27일 서울 발 선언서를 수취했지만 그 사이 자신들이 작성한 선언서에 33인의 명의를 삽입해 식장에 살포했다. 평안남도 진남포에서는 독립선언서 전체를 쓰는 대신 서두와 대표 서명 부분만 발췌해 인쇄에 부쳤다.[권보드래, <선언과 등사(謄寫)-3․1 운동에 있어 문자와 테크놀로지>, 반교어문학회, <<泮橋語文硏究>> 제40집, 2015, 376-384쪽 발췌.]


이렇게 해서, 독립선언서는 ‘종교인의 기도문’에서 민족의 공동창작이자 집단지성의 소작(所作)으로 승화되어 갔다. 


그뿐인가. 만주는 물론 유럽과 미주에도 이 독립선언서의 기운은 퍼져나갔다. 무엇보다,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교회와 교당과 사찰, 그리고 얼마나 많은 학교와 관공서에서 이 민족독립선언서는 낭독되고 또 낭독되고, 되풀이해서 낭독되었는가(呪文의 핵심은 ‘되풀이’해서 외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마도 지난 100년 역사상 우리 민족이 가장 많이 읽은 글은 이 독립선언서가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독립선언서는 ‘민족의 헌장’이다(헌장에 대해서는 후술). 


또 이런 ‘집단성’과 ‘되먹임’에 주목하여, 천도교 용어로 말하자면, 독립선언서는 주문(呪文)이다. 주문(呪文)이므로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기미년)에도 있고, 그 이후에도 있다(cf-제2의 독립선언서).02 주문은 비는 글이며, 지극히 한울님(조국)을 위하는 글이다. 우리 민족의 주문이다. -03


3. 믿고 정성들이는 글


지난 시대의 잔재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오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자주권을 빼앗기는 고통을 겪은 지 어느덧 십 년이 지났다.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긴 것이 얼마나 많으며, 정신상 발전의 장애가 얼마나 크며, 민족적 권위와 명예가 훼손당한 것은 또 얼마나 심각하며, 우리의 지식과 재능, 독창적인 발상으로 인류 문화의 큰 발전에 이바지하고 도울 기회를 얼마나 많이 허비하였는가.
 오호라, 오랫동안 쌓인 억울함을 풀어내려면, 지금의 고통을 벗어던지려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면, 민족의 양심과 국가의 위신과 세상의 도의가 눌리고 쪼그라들고 힘없이 사그라진 것을 다시 살리고 키우려면, 저마다 자신의 인격을 올바르게 발달시키려면, 우리 아들딸들에게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우리의 후손들이 영원히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가장 긴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이루는 것이다. 이천만이 누구나 마음마다 날카로운 칼을 품고, 인류 공통의 가치와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가 되어 우리를 지원하고, 인륜과 도덕이 무기가 되어 우리를 지켜주는 오늘, 나아가 얻고자 하면 어떤 강적인들 물리치지 못할 것이며, 물러서서 계획을 세우면 어떤 뜻인들 펴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종교인의 본령은 믿고 정성들이는 것이다. 독립선언서는 정의(正義)와 인도(人道)라는 시대정신으로 현현(顯顯)한 하느님 감응과 천백세 조령(祖靈)의 음우(陰佑)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글이다. 믿음 앞에는 당적(當敵)할 자가 없는 법이다. “우리가 나아가 취하고자 함에 어떠한 강적을 꺾지 못하랴, 우리가 물러나 미래를 가늠함에 어떠한 뜻을 펼치지 못하랴” 한 것이 그것이다.


3․1 운동 당시 언어는 이렇듯 수행적이었다. ‘선언’이라는 말 그대로 그것은 미래를 당겨쓰는 방법이었으며, 목표한 미래를 일궈내려는 자기 결의의 표현이기도 했다.[권보드래, 앞의 글, 385쪽]


믿는다는 것은 자기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책임지기 위하여 다짐하고 맹세하는 것이다. 자기의 맹세한 바를 돌이켜 보고, 그 맹세를 안고 나아갈 길을 내다보는 것이다. 


대저 이 도는 마음으로 믿는 것이 정성이 되느니라. 믿을 신자를 풀어 보면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니 사람의 말 가운데는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을, 그 중에서 옳은 말은 취하고 그른 말은 버리어 거듭 생각하여 마음을 정하라. 한번 작정한 뒤에는 다른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믿음이니 이와 같이 닦아야 마침내 그 정성을 이루느니라. 정성과 믿음이여, 그 법칙이 멀지 아니하니라. 사람의 말로 이루었으니 먼저 믿고 뒤에 정성하라. 내 지금 밝게 가르치니 어찌 미더운 말이 아니겠는가. 공경하고 정성들여 가르치는 말을 어기지 말지어다.[<<천도교경전>><동경대전>'논학문'] 


그 믿음은 이미 완성된 형태로 그날 그 자리에서 발휘된 것이 아니다. 믿음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도상(途上)에 독립선언서가 있었다. 독립선언서를 통해, 종교인 스스로 자기 믿음을 믿게 되었고, 자기 믿음을 완성하였다.04


3․1 운동은 한반도 역사상 문자 언어가 최대의 효과를 발휘했던 순간이다. (중략) 천도교․기독교 조직을 통해 일부 지역에 사전 배포되기도 했지만, 그 못지않게 국상 때문에 상경했던 이들이 품에 한두 장 숨겨 온 선언서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3․1 운동 전후에 제작․공개된 독립선언서 및 청원서는 총 57종에 이른다. 마치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이 ‘제록스 맑스’, 복사기의 대중화에 의해 가속화됐듯 1919년의 3․1 운동은 등사기의 보급을 타고 전국적 봉기로 확장됐다. (중략) 3․1 운동 당시의 언어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텍스트로서, “읽는 것, 다시 읽는 것, 쓰는 것, 다시 쓰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변혁하는 힘”임을 증명해 내고 있다.[권보드래, 앞의 글, 396-397쪽]


4. 성찰하고 용서하는 글


강화도조약 이래 양국 간의 약속을 가벼이 저버렸다고 해서 일본의 신의 없음을 비난하지 않는다. 일본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생활에서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이 터전을 식민지로 삼고, 우리 문화민족을 미개한 족속으로 취급하여 정복자의 즐거움을 누릴 뿐이고, 오래고 영원한 우리 본연의 사회 기틀과 뛰어난 민족의 마음가짐을 무시한다고 해서 일본의 옳지 못함을 책망[罪責]하지 않는다. 스스로 성찰하고 격려하기에 여념 없는 우리는 남을 원망[怨尤]할 여가가 없다. 현재를 돌보기에 바쁜 우리는 이미 지나간 잘못을 따질[懲辯] 겨를도 없다. 오늘 우리는 오로지 우리 자신을 다시 세우고자 하며, 결코 남을 헐뜯자는 것이 아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우리 민족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지 절대로 해묵은 원한과 일시적인 감정으로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다. 낡은 사상과 위력에 얽매여 공명을 이루고자 했던 일본인 정치인들이 만든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지금의 현실을 고치고 바로잡아 강자가 약자를 힘으로 지배하지 않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세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독립선언서의 주체, 즉 우리 민족은 일본[他]을 죄책(罪責)․원우(怨尤)․징변(懲辯)․파괴(破壞)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책려(策勵)․주무(綢繆)․건설(建設)하며, 자가(自家)의 신운명(新運命)을 개척할 뿐 타(他)를 질축배척(嫉逐排斥)하지 아니하며, 일본의 착오 상태를 개선 광정하여 바르고 큰 새 세상[正經大原]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선도(先導)하는 것이 목적이다. 05


종교인의 신앙행위의 출발점은 참회(懺悔)이다. 천도교에서 수도(修道)하는 것도 참회문을 낭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며, 기독교나 불교에서 참회나 세속으로부터의 거리두기도 바로 자기 성찰을 위한 장치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선언서는 용서하는 글이다. 용서는 참회와 표리(表裏)를 이룬다. 타인을 용서함으로써 스스로 용서 받(고자 하)는 글이며, 타인을 구원함으로써 스스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글이다. 


cf.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이름이 거룩하게 하시고 나라가 임하옵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그런 한에서 용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을 따라가는 일”이다. 공자님이 말씀하신바 죽을 때까지[終身]토록 행할 만한 것이다. 


자공이 묻기를, ‘한마디 말로 종신토록 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하니, 공자 말씀하시기를, ‘아마도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 [ <<論語>><衛靈公>]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신약성서>의 황금률이 이와 다르지 않다. 그 자체로 ‘종교적’이다.  


5. 서로 살리는 유무상자(有無相資)의 글 


처음부터 우리 겨레가 원하지 않았던 양국 병합의 결과로, 근본적인 대책 없는 억압과 차별에 따른 불평등과, 거짓된 통계숫자 때문에 이해가 엇갈린 두 민족 사이에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도랑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지금의 상황을 한번 살펴보라. 용감하고 과감하게 예전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이해와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함께 살아가는 새 시대를 여는 것이 서로 재앙을 멀리하고 행복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울분과 원한이 겹겹이 쌓인 이천만 조선인을 힘으로 억누르는 것은 결코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는 방법이 아니다. 이것은 동양의 안전과 위기를 좌우하는 사억 중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시기를 갈수록 깊게 하여 동양 전체가 함께 망하는 비극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오늘 우리가 조선 독립을 선포하는 까닭은 조선 사람은 정당한 번영을 이루게 하고, 일본은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의 안전을 지켜나가는 책임을 다하게 하며, 중국은 꿈속에서도 시달리던 불안과 공포에서 해방되게 하며, 세계평화의 전단계인 동양평화를 실현하여 전 인류의 복을 누리는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여는 일이다. 이것이 어찌 쩨쩨한 감정상의 문제이겠느냐.


세계를 구제하는 것은 모든 종교인의 사명이다. 독립선언서는 자주(自主)로서 자립(自立)하고 자생(自生)하여 일본과 중국, 동아시아, 세계를 두루 살리는,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고 서로를 살리는 길을 제시한다. 동학-천도교로 말하면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제인질병(濟人疾病)이요, 유무상자(有無相資-相生)이다. 유무상자(有無相資)는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서로(相)’의 생명(生命)됨을 완성한다”는 뜻이다. 유무상통, 환난상휼, ‘불우이웃-끼리돕기’의 뜻이다. 단순하지만, 가장 단순한 그 속에 무궁한 이치가 있다. 06 


기독교나 불교에서 구원(救援)과 구제(救濟)가 그것이다. 인(仁)과 사랑[愛], 자비(慈悲)의 근본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독립선언서에서 강조되는 것이 바로 서로 살림의 종교인 윤리이다. 우호적(友好的) 신국면(新局面)을 열어서,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부르는[遠禍召福] 길로 나아가는 것이며, 조선인(朝鮮人)의 생영(生榮), 일본과 중국[支那]의 공영(共榮), 동양평화(東洋平和)와 세계평화(世界平和), 나아가 생명평화(生命平和)의 신천지(新天地)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유무상자는 운동의 정신이며 원리이자, 방법론이기도 하다. 독립만세 전개 과정에서 의암 선생의 결단으로 기독교에 운동자금 5천원을 교부한 것도 바로 이 ‘유무상자’의 실천이다.


운동의 준비과정에서부터 대부분의 경비는 천도교에서 부담해 왔지만 거사 후 33인의 가족생활비도 주로 천도교에서 맡게 되었다. 기독교 측은 함태영 선생이 담당하기로 하였는데, 그 자신도 체포될 것을 각오하여 천도교중앙총부 직원이었던 필자에게 2개월분을 미리 맡기면서 “내가 투옥된 후에는 군이 맡아 지불하라.”고 하였다. 가족생활비는 2월 28일 밤 손병희 선생이 언명하신 대로 매인구(每人口)에 월 10원씩이었으며, 33인 이외의 17인의 가족(민족대표 48인은 33인 중 망명한 김병조와, 옥사하신 양한묵을 제외한 31인과 서명은 하지 않았으나 주요 역할을 하였다가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된 17인을 합쳐,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민족대표 48인이라고 한다.(동아일보, 1920년 7월 12일)에 대해서는 생활비 지불이 미치지 못했다. 다만 수감인에 대한 차입은 천도교에서 맡았는데, 천도교 간부가 모두 수감되고 청년직원 몇 명만이 남았던 까닭으로 그 사무를 부득이 필자가 전담하였고, 그 밖에 상해임시정부와 기타 독립운동에 관한 일부 경비도 맡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도 미구(未久)에 수감됨으로써 이러한 지불이 정지되었다가 공판 때부터 다시 전일 미불액까지 합쳐서 모두 지불한 일도 있다. [이병헌, 앞의 <내가 본 3.1운동의 일단면>, <<3.1운동 50주년 기념논집>>, 동아일보사, 1969.]


6. 꿈(希望․祈願)의 기록 


모든 종교의 성자(聖者)들은 꿈꾸는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새로운 사람과 만물을 꿈꾸는 이들이었다. 그 성자(聖者)들의 꿈을 좇는 사람들이 모여 종교를 이루었다. 종교를 한다는 것(신앙)은 그분들의 꿈을 믿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종교적인 행위는 꿈꾸는 것이다. 


독립선언서는 꿈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3.1운동은 꿈꾸는 자들의 향연이었다. 그런 한에서, 3.1운동은 ‘지금(식민치하) 여기(조선)'에 충실한 운동이었으나, 그것은 또 '그날(자주독립) 그곳(평화세계)를 지향한 운동이었다. 그리고 꿈꾸는 자들에 의해서 이 세상은 이루어져 왔다.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그 꿈 덕분․덕택․은혜이고, 이 세상이 이토록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의 꿈이 오염된 탓이다. 꿈을 선언하는 한에 있어, 독립선언서는 승리의 헌장이다. 왜냐하면, 패자가 과거를 자랑하는 동안,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승자이기 때문이다. 패자의 자리에서도 승자의 품위를 잃지 않은 조선민족의 기개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승자의 모습을 훗날 김구 선생은 여실히 보여준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김구, <나의 소원>) 07


이것이 꿈이 아니면 무엇이냐? 이것이 국조단군의 꿈(이상)이기만 하겠는가. 인의(공자님), 자비(부처님), 사랑(예수님)의 꿈도 이것이다. 꿈을 얘기하는데, “꿈같은 소리 하고 있네!”08라고 말하면, 그건 상찬이다. 상찬을 하면서, 상찬인 줄 모르고, 비아냥대는 표정을 짓지 말 일이다.  

독립선언서는 꿈꾸는 자들의 함성이었다.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진다. 힘의 시대는 가고 도덕의 시대가 온다. 지나간 세기 내내 다듬어 온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새로운 문명의 찬란한 빛을 인류 역사에 던지기 시작한다.  


독립선언서는 꿈을 믿은 자들의 몸짓이었다. 꿈을 좇는 자들의 질주[cf-驀進]였다. 그 꿈은 새로운 나라가 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출발점이 되었다. 독립선언서는 그 꿈의 출발점이고, 그 꿈의 귀결이었다.09     


새봄이 온 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한다. 찬바람과 꽁꽁 언 얼음 속에서 숨도 쉬지 못한 것이 지난 시대의 상황이었다면, 온화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으로 서로 통하는 것이 다가올 시대의 상서로운 기운이니, 하늘과 땅에 새 생명이 되살아나는 이때에 세계 변화의 도도한 물결에 올라 탄 우리에게는 그 어떤 것도 주저하거나 거리낄 바가 없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독립선언서를 살펴보는 일은 그 꿈을 해석하는 일이다. 아니, 그보다 독립선언서를 베고 누워서, 다시 꿈꾸는 일이다. 꿈같은 일이며, 꿈같은 글이 되기를 바라며 쓰는 글이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만물을 꿈꾸는 것이야말로, 독립선언서를 다시 읽고, 스스로 선언서가 되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 가는 목적이며, 방법이며, 유일한 가치이다. 


우리는 우리가 본디 타고난 자유권을 지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푸엉하게 누릴 것이며, 우리가 지닌 독창적 능력을 넉넉하게 발휘하여 봄기운이 가득한 온 누리에 조선 민족의 우수함을 꽃피우리라. 그래서 우리는 분연히 일어섰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하고,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나아가니, 남녀노소 구별 없이 컴컴한 옛집에서 뛰쳐나와 세상 만물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룩할 것이다.  


이미 우리에게 알려져 있고 주어져 있으나,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하였던 것,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보아 내고, 새롭게 알아가는 데 역점을 두어 나가고자 한다. 꿈꾸는 자는 달을 본다. 꿈꾸는 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역사적 사실․논거․사료)을 보지만, 금세 눈을 돌려, 그것이 가리키는 달을 본다. 


꿈꾸는 자는 달을 보며 님을 그리워한다. 꿈꾸는 자는 달을 보며 빈다. 빌고 빈다. 빌고 빌다가, 달이 되어 버린다. 한울님, 하나님, 부처님, 예수님, 대신사님 모두 달님이고 하늘님(해님)이다. 꿈꾸는 자는 위험하다. 세상에 대하여 위험하고 불온하며, 스스로에게도 위험하다. 위험하기 이를 데 없다. 10     


우리가 이렇게 꿈꿀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억눌린 자’였기 때문이다. “하느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를 외쳐 본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평화에의 의지와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은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11


안으로는 유사 이래 모든 조상들의 넋이 우리를 지키고, 밖으로는 전 세계의 새로운 시대 흐름이 우리를 지지하니,12 이 일을 시작하는 것이 곧 성공한 것이다. 

오로지 앞을 비추는 저 빛을 따라 힘차게 전진할 따름이다.


공약삼장
-하나, 우리는 자유정신에서 정의·인도·생존·번영을 요구하는 것이니, 오직 평화롭게 전진하라.
-하나, 최후의 한 사람, 최후의 한 순간까지 모두 하나 되어 민족의 의사를 당당하게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되, 우리의 주장과 비전을 끝끝내 공명정대하게 선포하라.
조선 나라를 세운 지 사천이백오십이 년 되는 해 삼월 초하루


조선민족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   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7. 순교의 서(書)이며, 부활의 약속(約束) 


의암 손병희 선생은 1919년 2월 28일자로 천도교의 대도주(大道主)인 춘암 박인호(朴寅浩, 天道敎 4世 大道主)13에게 <유시문(諭示文)>이라는 글을 남겼다. 한마디로 “나는 세계적인 기운에 편승하여 정치적인 운동(만세운동)에 참여하게 되니, 이미 10년 전에 도통(道統)을 물려준 대로, 종단의 명맥(命脈)을 계속 보존(保存)하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당부이다. 

 

<유시문(諭示文)> 

불녕(不侫)이 오교(吾敎)의 교무(敎務)를 좌하(座下)에게 전위(傳委)함은 기위(己爲) 10년(1908.1.18.-인용자주)이라 갱설(更說)할 필요(必要)가 없거니와 금일(今日) 세계(世界) 종족(種族) 평등(平等)의 대기운하(大機運下)에서 아 동양종족(東洋種族)의 공동행복(共同幸福)과 평화(平和)를 위하여 종시일언(終始一言)을 묵(黙)키 불능(不能)하므로 자(玆)에 정치방면(政治方面)에 일시(一時) 진참(進參)케 되었기 여시일언(如是一言)을 신탁(信託)하노니 유(惟) 좌하(座下)는 간부(幹部) 제인(諸人)과 공(共)히 교무(敎務)에 대하여 익익면정(益益勉精)하여 소물망동(小勿妄動)하고 아(我) 오만년(五萬年) 대종교(大宗敎)의 중책(重責)을 선호진행(善護進行)할지어다. 

1919년(大正八年) 기미(己未) 이월 이십팔일(二月二十八日) 

대도주(大道主) 좌하(座下) [앞의 <<의암손병희선생전기>>, 356쪽]


즉, 당신은 죽음을 각오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되니, 오만년 이어갈 천도교의 일은 춘암(박인호)가 책임을 지고 맡아 나아가라는 당부이다. 이 글은 실질적인 유서(遺書)였다.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 대표의 한분인 이갑성 목사는 기독교 측 민족대표를 정할 때에 70여 명이나 되는 당시의 직간접 실무자들이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하면 ‘필경 저 일본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떤 극한 일을 할’ 것인지를 알면서도 서로 “죽는 자리에 먼저 들어가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결국 1회, 2회, 3회로 나누어 차례로 사형대로 나아가기로 하였는데, 이갑성 선생은 다른 일 때문에 다음 기회에 참여키로 하였으나 기다릴 수 없어서 첫 번째 기회에 서명키로 결심하였다고 증언한다.14


그런 까닭에 독립선언서는 좋은 글이다. 독립선언서가 좋은 글인 까닭은 그것이 꿈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순교의 서이며, 부활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폭력’과 ‘폭동’과 ‘살육’을 원치 않았으나, 누구도 그것이 일어날 것을 예감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성경이 좋은 글인 까닭도, 불경이 좋은 글인 까닭도, 동학의 경전이 좋은 글인 까닭도, 그것이 꿈의 기록이며, 순교의 서이며, 부활(장생, 영행, 해탈)의 기록이기 때문 아닌가. 


1919년의 한반도뿐이라, 중국대륙에서, 만주벌판에서 독립만세 이전과 이후, 해방의 그날까지 순교한 모든 분들은 모두 독립선언서 안에서 부활한다․할 것이다․해야 한다. 그러므로 독립선언서는 좋은 글이며․좋은 글일 것이며․좋은 글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일․하고 싶은 일․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바로 그것이다.15


8. 선지자가 광야에서 외치는 생명의 서(書) 


국내에서 독립선언을 미국에까지 전파하는 것은 이미 독립선언을 준비하던 단계에서부터 기획된 일이었다. 그러는 동안 미국 내의 한인들도 국내의 만세 운동 소식을 구미 각국의 정계와 시민사회에 소개하기 위하여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중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의 기관지 <신한민보(新韓民報)> 1919년 4월 24일자와 26일자에는 그해 4월 6일자 <LA타임즈> 사설로 게재된 독립선언서의 내용 소개를 2회에 걸쳐 전재(轉載)하였다. 


이 사설의 제목은 ‘생명(生命)의 존귀(尊貴).’ 


사설은 “‘현금(現今) 손병희 씨와 다른 한인들이 선고(宣告)한 한국독립선언서’의 글 가운데서 ‘생명의 존귀’라는 말을 찾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우리가 관찰하기에는 이 독립선언서(한국독립선언서)가 우리 아메리카 독립선언서보다도, 또 캘리포니아(비어플릭) 전쟁시대에 윌리암 아디가 저술한 캘리포니아 독립선언서보다 더 한층 높고 거룩하다”고 하면서 “만일 시 세계의 모든 문명을 깨뜨려 버리고 오직 이 세 독립선언서만 남겨 둔다 칠 것 같으면, 이 세계 인류가 오히려 그 인류를 지도할 만한 계명 (모세 씨의 십계명과 같은)이 될 만하”다고 평가한다. 이어 한인(韓人)의 독립선언서 그 셋 가운데서도 “최고등의 고상하고 탁월한 인류의 정신이 인류의 사상과 희망에 적합한 것이 언사에 나타난 것”이라고 하면서 당신들(LA타임즈 독자들)이 이것을 연구하여 보면, “이것이 창이나 총으로 된 것이 아니요 사람의 이상(理想)을 발표하는 데서 된 것이며 흑암(黑暗) 무지(無知)한 산곡(山谷)에 앉은 시대를 지나 광명한 높은 산상에 올라선 사람”이라고 하였다. 또한 “우리는 과거에 흑암하고 희망이 없던 혼돈 시대에 살았”던바, ‘생명의 존귀란 말’을 잃어버렸었으나, “현금 유럽과 아시아가 그네들의 생명을 티끌 속에 파묻는 현상이 있었다”고 하였다. 또한 “생명! 이 말 한마디 가운데 이 세상 만물이 다 포함”되어 있으되, “생명만 있고 존귀가 없으면” “사람의 존귀가 없는 생명을 중히 여기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수천년 이전 사람들로부터 ‘생명의 존귀’를 위하여 경쟁하여 왔다”고 하면서 “이것을 위하여 한국의 손병희 씨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악한 세상에 (스스로 악을 제거할-인용자) 능력을 주시사 그 말을 듣게 하실는지”라고 이야기한다. 


이어서 이 글은 서구 유럽의 경우 켈트(Celts)족이 생명의 존귀함을 위하여 노력하여 온 결과 근대 서구 문명을 일구었는데, 동양에서는 “한인이 지금 부르는 말이 켈트의 것보다도 오랜 역사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무한한 고초를 견디어 가며 몸을 바르게 하고 두 발을 땅에 튼튼히 딛고 태양의 영광스러운 빛을 바라보”는 쾌거라고 하면서, 이는 “모든 사람의 고초와 요구를 위하여 부르짖는 소리에 대답한 것”이며, “우리(서구인-인용자 주)보다 제일 먼저 와서 생명의 존귀를 위하여 경정(更定-인용자)한 결과가 우리에게까지 미친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유연한 덕성’으로서 “이것이 지금 소멸되면 우리는 다시 흑암하고 황혼한 시대에 빠”질 것이므로, 우리 솜씨와 지력(腦髓), 좋은 문화(衣服)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우리는 백세기 뒤로 후퇴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이 세계를 옳고 정의롭게 만들기가 지극히 어려운 일이나, 이는 마땅히 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성공을 얻기 위하여 한국이 그 생명의 존귀를 위하여 큰 목소리를 우리를 부르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저마다 생명의 존귀는 누가 공격치 모하는 것으로 인증(認證)할 것 같으면 다만 이 세상을 구원하는 데 십자가로만 할 것이 아니요, 온 세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함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손병희 씨가 부르는 소리를 들읍시다! 이는 선지자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외다!”라고 하였다.16


[발표 당시 토론시간에 기미독립선언서에 대한 '총론격'의 재정의 다음으로는 '동학-천도교'의 관점에서 이를 독해하는 글이 필요하다는 지적 / 제안을 받았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보강하려고 한다.]  


01    “선언으로써 완성되는 글(말)”은 언어학적으로 ‘수행적 발화(遂行的 發話, performative utterance)’라고 한다. (중략) 수행적 발화는 ‘말하는 행위’를 수행한다. 그런데 오스틴은 (중략) 참, 거짓과 관련 없는 문장들 또한 문장을 발화하는 것 자체가 어떤 행위를 수반하는 것이라 보고 이를 모두 수행문으로 분류하고 있다. 즉, 계약적 발화이거나 선언적 발화를 모두 수행적 발화의 한 형태로 보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행적 발화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1.30., 국학자료원)

02      기미년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 사장이던 이종일은 만세운동으로 수감되었다가 출옥한 후, 기미만세운동 3주년이 되는 1922년 3월 1일, 보성사 직원들과 함께 제2의 3.1운동 기념식을 거행하기로 하고 그때 낭독할 <자주독립선언문> 초고를 2월 20일에 직접 작성, 김홍규 선생에게 인쇄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사전에 탄로나 실패하고 말았다. 1910~1945년 사이 국내외에서 발표된 독립선언서는 밝혀진 것만 103종에 이른다. 

03    <<천도교경전>><동경대전>'논학문', “묻기를 「주문의 뜻은 무엇입니까.」 대답하기를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이므로 주문이라 이르는 것이니, 지금 글에도 있고 옛 글에도 있느니라.」”  

04    권보드래, 앞의 글, 385쪽. “‘민족대표 33인’이 발단이 된 운동이 조직적으로 허약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천도교가 일종의 대안적 소국을 구축하고 있을 무렵이니 훨씬 일사불란한 봉기도 가능했으련만36) 손병희를 비롯해 ‘민족대표’ 사이에선 선언만으로 만족하자는 신중론이 우세했다. 총독부 앞에서 독립을 애원하는 ‘청원’의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독교 일부 인사는 ‘선언’에도 동의치 못해 선언서에의 서명을 거부했던 바다.”

 05    <<천도교경전>><동경대전>'탄도유심금(嘆道儒心急)', “남의 작은 허물을 내 마음에 논란하지 말고 내 마음의 작은 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他人細過 勿論我心 我心小慧 以施於人).”

07

06     <유무상자>에 관해서는 필자의 다음 글을 참조. ①  <유무상자 경제학과 모심의 혁명(1)>『개벽신문』 76호(2018년 7월) 2-3쪽.  <유무상자 경제학과 모심의 혁명(2)-모심의 혁명에서 동귀일체 혁명까지>,『개벽신문』 77호(2018년 8월) 2쪽. <유무상자의 경제학과 우주 궁극의 이론-‘세상에 공짜는 없다’와 ‘덜 문명’의 상관관계>『개벽신문』 78호(2018년 9.10월합병) 2-3쪽. 

07     최근 백범의 이 유명한 <나의 소원>에 이광수의 흔적이 보인다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이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08     세상 사람들이 민족대표 33인이나 기미독립선언서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말을 필자가 이렇게 표현하여 보았다. 

09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최남선이 그 글을 썼다고 하나, 최남선으로 하여금 그 글을 쓰게 한 것은 그분들이었다. 그분들은 시대정신으로 스스로 하생하여 그 시대 백성들의 꿈속에 현몽하였고, 그 백성의 꿈에 접신하여, 신내림한 것이 최남선일 뿐이다. 최남선은 신대일 뿐, 그 신대에 내림한 것은 그분들이었고, 그 신대의 떨림을 만들어낸 것은 그 시대 백성들이 꾸었던 꿈의 염력[念力/夢力]이었다.

10     cf. 노회찬은 왜 자살했는가. 그가 꿈꾸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아름다운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 꿈을 결코 배반하며, 배신하며, 배도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11     황상희(종교개혁연대-3.1운동100주년 발표문 2018.10.25.), 14쪽. “일본대학교 교수인 김봉진은 ‘나는 내 나라가 남을 때린 나라가 아니라 맞은 나라여서 자랑스럽다.’라고 했다. 만일 이 두 가지 입장 중 하나만을 택해야 한다면 필자 또한 누군가를 때리지 않고 맞아서 그것을 견뎌서 자랑스럽다.” 참조. 

12     <<천도교경전>><동경대전>'논학문', “「시」라는 것은 안에 신령이 있고 밖에 기화가 있어 온 세상 사람이 각각 알아서 옮기지 않는 것이요~(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13     박인호는 수운 최제우 – 해월 최시형 – 의암 손병희로 이어지는 동학 천도교 도통(道統)을 네 번째로 승계(1908.1.18.)한 분이다. 그러나 1922년까지는 교주(敎主)이신 손병희 선생이 살아 계셨기 때문에 한편으로 스승님인 손병희 선생을 보필하고, 다른 한편으로 교단 사무를 통리(統理)하고 계셨다. 박인호는 “민족대표 48인”으로 체포되어 역시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0년 12월 10일 석방되었다(무죄, 미결수감).  

14     이갑성, <3.1운동 54주년기념회고담>, 창천교회 1973년 3.1절 기념예배(3.1운동100주년기념총람 재수록분), “시작을 한 후에 우리의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선언문을 마련할 것을 의논할 때, 일선에서 운동하던 사람으로는 학생, 청년 모두 합하면 70여 명이었는데, 70여 명은 모두가 한꺼번에 선언서에 날인하고 세계에 선포하려고 했었는데, 함태영 목사는 옛날에 고등법원 판사였기 때문에 법을 잘고 있었으며, 함태영 목사 말은 “우리가 이 선언서를 한번 써서 뿌린다고 해서 금방 독립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필경 저 일본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떤 극한의 일을 할 텐데, 일본법에는 우리 70여 인이 한꺼번에 다 죽어 버리면 다음에 계속할 사람이 없지 않느냐?”고 제안을 하여서 함태영 목사 말에 의해 제1회, 2회, 3회로 나누기로 하고, 제1회에 들어가서 사형으로 죽고, 2회에 또 죽고, 3회에 또 죽고 독립할 때까지 우리는 희생하더라도 하자고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25명이 먼저 (하기로) 결정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모두 먼저 죽겠다고 합니다. 나도 먼저 죽는다, 나도 1회에 죽는다고 해서 26명, 27명, 28명, 30명, 33명까지 왔습니다. 그때 이갑성이는 젊은 나이여서 학생들에게 연락할 것과 외국 사람에게 연락하는 것 (중략) 나는 3회로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3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서 32인이 되었을 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른들 모두는 말렸지만 나는 일찍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3월 1일 며칠 전 어느 날 정오에 기독교 측 대표들은 한강 건너편 송림 속으로 가서 선언서에 서명할 인원을 정하는 판이다. 서명은 물론 자원이니 바꾸어 말하면 단두대를 자원하여 먼저 뛰어 올라가는 순간이다. 그때 장면은 실로 비장하였다. 고 이상재, 심세관 양 선생은 일본에 파견하여 동경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 임규 선생과 연락하여 일본 정부와 조야 정객들에게 조선독립을 통고하고 선전하는 임무를 일임한고로 동경행을 무사히 하기 위하여 선선서에는 서명치 않기로 결정되었다. 함태영 선생 말로는 천도교 측 다수는 후사를 위하여 서명을 아니하도록 되었으나[인용자 주-33인 중 15명과 48인 등에 속한 사람 이에 지방의 여러 두목 들을 말함] 불행히 제1회 선언 후 지도자로 인정된 당시 동지들[인용자 주-민족대표48인]은 거의 전부가 잡히고 말았다.” 

15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2.8독립선언서’와 ‘무오독립선언서’도 ‘기미독립선언서’와의 ‘차별성’보다 ‘동질성’에 주목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기미독립선언서의 종교적 특장(特長)이 더 잘 드러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았다. 특히 무오독립선언서는 그 문안의 기초자인 조소앙 선생의 심오한 ‘종교적 혜안’이 반영된 글이라는 평가가 있다. 이 비교작업은 후일을 기약한다. cf. 정태욱, <조소앙의 '대한독립선언서'의 법사상>, 한국법철학회, <<법철학연구>> 제14권 제3호, 2011. 13쪽. “민족의 각인들에게 독립운동의 실존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독립운동에의 헌신이란 단지 민족과 나라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이나 희생이 아니라, 각인의 인간존엄, 즉 인간의 참된 본질인 대아(大我)의 구현이라는 것이다. 각자의 내면을 향한 종교적이며영성적인 고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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