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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30. 2019

개벽라키비움에서

-개벽통문-029

어제 오후, <개벽라키비움>에 폭풍 같은 만남이 쏟아졌습니다. 한국에 오실 때마다 모시는사람들을 찾아주시는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이 이찬수 교수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과 또 통역을 맡아 주신 송영은 박사(동경대 이슬람학 전공, 가톨릭대, 감신대강사) 교수님이 함께하였습니다. [*개벽라키비움은 '개벽'의 라이버러리, 아카이브, 뮤지엄입니다]


개벽라키비움을 찾아주신 분들 : 왼쪽부터 이찬수 교수님, 필자,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 


기타지마 선생님은 일년에 몇 차례, (학술) 발표를 하실 기회가 있을 때에 즈음하여 한국을 방문하곤 하십니다. 다른 연구도 있으나, 최근에는 "토착적 근대"와 관련된 연구를 주로 하고 계십니다. 특이하게도(?) 기타지마 교수님은 아프리카의 '우분투' 사상 등에서 서구적 근대와는 다른, 제3세계의 자생적, 전통적, 자주적 사상-문화 기반에서 서구 근대와는 다른 길로의 '근대'를 추구하던 기운과 움직임과 사상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밝혀 내고, 그것이 서구에 의해 식민지화하는 고통을 겪은 세계 각국(한국을 포함한)에 공통적으로 존재한다는 발상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가운데가 송영은 교수님


그 세계적 지평에서의 토착적 근대에 대한 시각과 발상은 최근의 '비서구적 근대' '한국적 근대' '개벽적 근대' '영성적 근대' 등등의 담론과 연계되거나 변주되면서 오랫동안 우리가 시달려온바, '근대 = (서구적) 개화'라는 도식을 절대적인 진리로 여기며, 제대로(?) (서구적인)개화를 달성하지 못한 결과로 식민지화될 수밖에 없었다는 패배적인 (그 결과로, 결과적으로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투항하고 마는) 인식에 빠져 있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식민지 근대화론(=일본에 의해 근대의 씨앗이 한반도에 이식되었다는 논리)'은 물론이고 '근대 맹아론(한반도가 식민지화되기 전에 조선에도 '근대(서구적=자본주의화)의 맹아가 존재했었다는 -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반론으로 제기되었던)'조차도 "근대 = 서구적 개화 = 자본주의화"라는 도식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는 반성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한국의 최근의 '개벽적 근대' 담론, 개벽파, 개벽학 이야기 형성에 이르는 작은 물줄기 중 하나인 토착적 근대화 담론의 주인공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은 내년에 '토착적 근대'에 관한 그동안 써 온 글(과 앞으로 추가할) 몇 편을 묶은 단행본을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에서 간행할 예정입니다. 오늘 방문에서 기타지마 교수님은 "토착적 근대화론에 관한 제 책은 요즘 한국에서 크게 붐을 일으키고 있는 '개벽파' 담론과 마찬가지로, 한국이나 제3세계 국가들이 서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내용으로 근대화를 이루어 가고 있었다는 점을 밝히는 내용이 될 것"이라며 만면에 웃음을 지어 보이셨습니다.


그러다 마침 제 책상 한켠에 놓여 있던 <개벽> 창간호 복각본 샘플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개벽 잡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더군요)




먼저 개벽잡지가 창간되기까지 천도교청년회, 그 이전의 3.1운동과의 관련성 등은 얘기할 계를도 없이, 창간호의 애초 표지(호랑이+지구본 그림)와 '개벽호외' 호 표지, 그리고 '개벽임시호' 표지에 이르기까지 개벽 창간호가 겪어야 했던 고난의 역사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개벽창간호 표지(왼쪽이 본래 표지) 그림을 삭제한 '호외'마저 검열로 삭제되고 '임시호'라는 붉은 손글씨를 달고 시중에 판매된 제1호 (오른쪽) 이 책은 '복각본'(샘플본)이다. 

[개벽은 애초에 천도교청년회 편집부 산하 <개벽사>에서 1920년 6월 25일자(7월호)로, 지구본 위에서 호랑이가 포효하는 그림을 표지화로 하는 창간호를 제작하였으나, 일제 당국의 불허로 전량 폐기되었고, 급히 '개벽호외'를 찍었으나 그것마저 일제의 검열로 얼룩지고, '임시호'라는 손글씨를 달고 간행하게 되었고, 이 창간호 이후 72호까지 발행하는 동안 36개 호(전체 간행 호수의 절반)이 삭제, 압수, 발행금지 등의 탄압을 받다가, 결국 1926년 8월 27일자로 폐간되고 말았다.

개벽 창간호 수난의 흔적, '금싸락'이라는 시가 전부 지워졌다.


불행중 다행으로 개벽 창간호(호외-임시호)는 '완판'이 되어 급히 추가 인쇄를 하면서 '개벽임시호'라는 글씨가 인쇄된 인쇄본도 현재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개벽이라는 말과 개화 또는 개조, 그리고 동학과 천도교의 개벽적 지향에 관한 것으로 넘어가면서 개벽이 창간되넌 1920년대 당시 일본의 상황, 특히 청년들의 신문화운동 사조 등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개벽 창간을 주도했던 천도교청년 그룹, 그리고 개벽지의 주요 필진들 중에 일본 유학생이 많은 것, 그(일본 유학)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나는 당연히 그럴 개연성이 충분히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러나 예를 들어 1907년도에 오상준(천도교 청년지식인으로서, 일본 유학생 출신 - 의암 손병희 선생 장학생) 선생이 쓴 <<초등교서>>(근간,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을 보면, 서구적인 철학, 사상, 정치, 문화 신어(新語)를 소개하면서도, 그것을 '동학-천도교'적으로 해석적 이해를 하고 있는 사례, 그리고 1910년에 창간된 <<천도교회월보>>에 등장한 '동학적 신어[新(造)語]'들이 동학-천도교가 그리는 '개벽 세상'의 비전을 담아내고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잡지 <<개벽>>의 창간으로 세대개벽(개벽청년들이 전면에 등장함)을 이루고, 시대개벽(3.1운동의 독립선언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또한 '改造'라고 하는 당시 전 세계적인 사상 기조를 동학적, 개벽적으로, 철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사상적으로 감지하면서 새하늘 새땅(독립선언서), 생명평화의 세계(독립선언서)을 지향하는 비전 전개해 나감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감)을 실천하는 '개벽하는 사람들'(개벽청년)들로 구체화되어 나갔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겪은 일 중에 가장 심각하며,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단이라든가, 친일잔재(주로 인적)를 청산하지 못한 결과로 정치-경제-사회 부문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 것 등을 들 수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는 우리의 '근대 용어'들이 '일본을 통해' 수입된 일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위에서 얘기했듯이 근대 시기(1900년 전후) 우리 사회 -- 특히 동학, 천도교 진영 = 개벽파 -- 에서는 (서구) 근대의 용어들을 '개벽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조선의 근대 사회를 개벽 공동로 만들어가려는 철학적, 사상적, 계몽적 기반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개벽>>이 겪어야 했던 수난의 근본적인 의미는 그러한 '개벽적 근대어'를 충분히 발명/보급할 기회를 상실한 데 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내년부터는 '개벽학 용어사전'을 재조명하고, 재발견하여, 재정립하고, 재확산함으로써, 우리 세상이 본격적으로 개벽 공동, 개벽세상으로 나아가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늘학회'를 중심으로 진행할 '개벽학 커리큘럼' 구성작업과 더불어 우리가 사는 세상(나라-세계)으로 만들어가는 두 바퀴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함께 하실 분은 참여를 신청해 주세요!] 


그리고 마침 책상 옆에 있던, 지난 23일 '길 위의 개벽학' 행사때 썼던 자료의 표지에 실린 '개벽지 폐간 기념(?) 사진'을 보면서, 다시 '개벽 폐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사진 안에 있는 '방정환'이 개벽청년(천도교청년)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은 '방정환'과, 그가 어린이운동을 전개한 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개벽 폐간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 가운데 동그라미의 5시방향에 머리 걸친 이가 방정환, 원내는 차상찬. 


그런데 정작 '어린이'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어린이'라는 말은 '늙은이' '젊은이'와 같은 계열의 언어로, 그 전까지 '아이놈' '아해' '자식' 등으로 천대받던 아이들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대'하는 의미로 방정환이 채택한 '계층 지칭어'라는 점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어린이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대하는 것은 천도교의 '인내천' 정신, 즉 사람은 누구나 한울을 모신 고귀한 존재이며, 그것은 어린이라도 마찬가지라는 사상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동학-천도교의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 선생이 '어린아이도 한울님 / 스승님'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라고 하신 '어린이 존중' 사상으로부터 연원한다는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은 당신의 따님이 교육학 전공자이고, 본인이 얼마 전부터 '방정환' 연구에 시간과 정성을 쏟아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는 방정환 선생이 일본에 체류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일본 체류 중에 일본 유학중이던 조선의 청년 지식인들을 규합하여 색동회라는 던체를 만들어서, 천도교 소년회와 함께 조선의 어린이 운동을 주도해 나갔다는 사실을 언급하였습니다.


개벽사를 방문한 함경도 청진의 '사립중동학교학생' 일동


그리고 소파(小波)라는 방정환의 호와 관련하여 그것이 방정환이 존경했던 일본의 유명 아동문학가 "이와나미 사자나미(岩谷小波)"의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고, 한쪽에서는 그것을 부정하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였습니다. [소파라는 호는 '잔물결'이라는 순 우리말의 한자어라는 것이 '반론'의 논거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잔물결이라는 호는 방정환 스스로 잔물결(小波)로 자처하며 파도를 불러오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어린이들이 훗날 '대파(大波)'로 화답하여, 개벽 세상을 일구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것이라고 고백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그러자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은 당신이 있는 사찰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은 일본 불교 한 종파의 스님이기도 함] 기둥에 '이와나미 사자나미'의 시구가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참, 기이한 인연이고, 언젠가 한번 찾아보기를 희망하였습니다. 


방정환의 사상과 어린이 운동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졌지만, 최근 들어 더욱 깊이 그리고 다양한 관점에서 재조명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다양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의 따님이 일본에서 방정환 연구를 하고, 그 소속된 어린이 관련 연구회와 한국의 방정환 연구소(저는 최근에 이 연구소 이사로 참여키로 하였습니다)가 교류 협력하며, 한중일의 어린이 운동, 어린이 문학 등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기약하였습니다. 


끝으로, 이야기는 다시 '토착적 근대'에 관한 것으로 이어져서, 올해 12월 말까지 약속했던 원고를 보내기로 하였고 (조성환 교수님이 번역을 해 주시기로) 내년 6월 25일 개벽 100주년에 즈음해서, 책이 나오게 해 달라는 신신 당부를 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 <개벽라키비움>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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