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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30. 2019

삼재개벽론 시론

-개벽통문-027

'천도교의 개벽사상과 개벽운동' 발표를 준비하면서, 천도교 개벽사상은 '삼재(三才)개벽론'임을 발견합니다. 


동학-천도교의 개벽사상-론을 알 수 있는 원전은 '다시개벽'(수운) '선천개벽(물질개벽) 후천개벽(정신개벽)' '인심개벽' '도덕개벽'(이상 해월), 천지개벽-인여물개벽(의암) 등으로 나타납니다.[원불교의 물질-정신개벽론, 대종교의 개천개벽론, 증산교의 음(양)개벽론 등도 모두 이 범주 안에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후대에 와서 야뢰 이돈화를 중심으로 천도교청년들은 '삼대개벽론'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정신개벽-민족개벽-사회개벽'을 일컫는 말로서, 이 또한 깊은 연찬과 더불어, 무엇보다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에 응답하는 철학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천도교청년당'이라는 동학-천도교 전위정당을 창당하며, 그 청년당의 실천 목표로서 제시한 것입니다. 삼대개벽론이 동학-천도교 개벽론의 본류이거나 주류, 또는 원류는 아닙니다. 그 응용이며, 해석이며, 정당한 시대적 발현이지요. 중요한 것 삼대개벽론을 주창한 당시의 개벽청년들로부터는 '시대과제'를 '정면주시'하고 '살신성인'으로 '일신우일신' 개벽하였던 그 삶의 자세와 의기, 그리고 믿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제가 '삼재개벽론'을 주창하는 것은(저는 이것이 저의 독창이라기보다는 수운 최제우 선생 이래 동학-천도교 또는 개벽하는 청년(사람)들의 담론을 이 시대에 적확하게 재해석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이 시점에서 위와 같은 동학-천도교 개벽 담론들을 아우르고, 더불어 오늘의 시대 요구에 응답하는 개벽사상 담론은 '하늘개벽-땅(地-物)개벽-만물(人)개벽)', 즉 '천지인 삼재' 개벽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동학 창도주인 수운 최제우 선생이 동학을 창도하기에 이르기까지 수행하고 공부하고 수양하며 깊이 명상하기까지 한 과제(화두)가 바로 '천-지-인' 삼재에 걸친 당대의 세계적(지구적) 위기상황에 대안 응답이었다는 점과도 연관됩니다. 


지난 160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종교든, 정치(국가, 민족)든, 사회(인간)든, 물리든 철학이든 간에 서세동점에 따르는 외압과 '멘붕'과 같은 내적 붕괴의 사면초가 상황에서 그때 그때 당면하는 과제들에 응전하기에 급급했던 역사입니다. 식민 상황에서 독립투쟁을, 분단 상황에서 통일운동을, 독재 상황에서 민주화를, 절대빈곤에서 산업화를 응급처치하듯, 그야말로 '전쟁 치르듯'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응급처방ㅡ미봉미봉의 결과가 지금 우리가 당도한 '헬조선' '각자도생' '기후위기-생명종말'의 총체적 위기상황입니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엉성해 보이지만 놓치지 않는다.(天網恢恢疏而不失, 天网恢恢疏而不失)는 말이 있다면, 하늘[나는 이때 하늘은 '천지인'을 아우르는 것으로 봅니다]이 재앙에 처하면 솟아날 구멍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고,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결국 '천지인'의 총체적인 위기 그 자체입니다. 이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최소한 최수운 선생이 동학을 창도하던 당시에 이미 감지되었던 것인바, 수운 선생의 '다시개벽'이란 곧 '천지인의 다시 개벽'이라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60년이 지난 이제야, 동학-천도교인뿐만이 아니라,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천지인'의 위기상황을 직감하고 직면/직접하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것을 '삼재개벽'의 과제로 개념적으로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에 따라 삼재개벽의 비전을 따라 출구를 찾아 '광명세계'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그것이 <개벽파선언>이라는 횃불이 비추는 길을 따라 가는 개벽파의 대장정에 참여하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개벽사상'은 하나의 사상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지침이며, 이론과 주장으로, 지식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라, 개벽을 살아가는 삶이기도 합니다.('개벽을 살다'는 벽청 아띠의 술어입니다). 다시 말해 개벽을 묻는다는 것은 개벽을 산다는 것이고, 요리법을 배워서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처럼 개벽사상을 배우고 익혀서 '무궁아'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일이 개벽운동의 출발점입니다. <개벽파선언>에 함께하는 것은 그러므로, 그 개벽을 함께 사는 일이며, 동덕으로 사는 일입니다. 모두, 함께할 수 있는 그날(크라우드펀딩-텀블벅 개시)에 기쁜 얼굴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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