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통문-031
옆에서, 집사람은, 너무 '개벽'거린다고 말리는데, 요즘은 세상 모든 일들을 개벽학의 눈으로 재해석하고 싶어졌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오래살고, 행복하리라. 나는 '블루사이공'에서 "개벽파"를 보았다. 그 얘기..
(1) 드디어, '극단모시는사람들' 창단 30주년 기념뮤지컬 - 블루사이공 마지막 공연(5회차)이 끝났다. 막공은 전편 관람! 공연은 7시 30분에 시작됐다. 공연이 시작되는데, 오늘 판문점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만난 그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개벽적 의미는 개벽통문029에서 이야기함) 블루사이공의 구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또 역사는 자꾸만 앞으로 달려 나간다. 바람결에 먼지들을 털면서 달려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2)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빠져나오다가 김정숙 대표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았다. 거인이 극장 문앞에 서 있었다. 다가가서 가만히 안아 주었다. (울지 마세요!) 30년 전 20대의 내 모습과 30년 전, 30대 후반의 처녀가 살포시 포옹하였다.
(3) 극단 모시는사람들 30주년과 나 1 - 모시는사람들 창단공연은 1989년 5월 4일, '반쪽이전'이다. 나는 이때 '안무'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극중 연주자인 풍물패 상쇠로 참여했다. 블루사이공 공연 프로그램의 공연연보에 당당히(!) 이름이 올려졌다. 오늘, 아마도 약 30년만에, 반쪽이전의 히로인 '이쁜이' 역의 '보연'씨가 왔다. 반가이 인사.
(4) 극단 모들과 나 2 - 그 이후로는 극단의 '편집팀'으로 함께하였다. 프로그램이나 포스터 제작, 홍보 기획 등.. 이제는 성령으로 출세한 '용하' 형님과 동거인으로 살던 2년여(성대 앞 사무실) 그게 몇년도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때는 이미 출판사를 창립한 이후였다. 출판사도 어렵고 극단도 어렵던 그 시절, 결국 우리는 전세금/월세금을 아끼기 위하여 사무실을 합쳤더랬다.
(5) 극단 모들과 나 3 - 블루사이공 공연의 최고의 명곡이 내 결혼식 때 축가였다는 건 030에 밝혔다.
(6) 극단 모들과 나 4 - 1997년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을 설립하고, 첫책이 김정숙 대표의 희곡집이고, 그 표제작이 '블루사이공'이었다는 것도 030에서 밝혔다. 초기 작품과 지금 작품에서 골격(구조)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첫째 지금은 '북청'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북청은 김상사와 후엔이 헤어질 무렵, 후헨의 뱃속에 있던 아이(남자). 그는 '북청'이라는 이름을 갖고, 훗날 성장하여 아버지(김상사)를 찾아오는 것으로 그려지고, 김북청과 김신창의 만남이 엔딩을 장식하였더랬다. (몇 개 더 있을 텐데, 기억 나는 대로 추가하기로 함)
(7) 이 '블루사이공' 이야기를 '개벽통문'에서 하는 까닭이 있다. 오늘 공연을 보면서 많은 명장면들이있었지만, 내 눈에 새롭게 들어온 장면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하늘의 자손들>이라는 '김상사와 후엔'의 듀엣 곡이 '개벽적 상상력'을 품은 노래라는 것은 030에서 밝혔다.
(8) 김상사 분대원들이 작전에 투입되고, 베트콩들의 유인작전에 말려 밀림 속에서 고립되었다가 분대원(중대 전체)들이 전멸하고 김상사만 살아 드엉(후엔의 남동생 - 베트콩)에게 생포된다. 드엉은 노래한다. "베트남에는 베트남 사람이 산다. 베트남은 '사람'이 사는 땅이기 때문이다!"라고 외친다. "미군은 '미개한 베트남을 해방시키고, 개화시킨다'는 명목하에 폭탄 63만 발과 50만 톤의 야포탄을 쏟아부었다지만 우리 베트남 인민은 결코 미개하지도, 허약하지도 않다!"고 부르짖는다. 이것은 그야말로, 서세동점의 서개 제국주의(개화 지상주의)자들의 허상을 장렬하게 고발하는 '개벽파의 대 서사시'이다.
(9) 일제는 조선인을 야만시하고, 자기들이 서양인(미국인)으로부터 받았던 수모를 조선에게 안겨주면서, 그것이 미개한 조선, 정체된 조선 역사를 '문명개화'의 길로 인도하는 '선행'이라고 강변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5천년 전부터 지혜의 땅이었고, 5만년 전부터 하늘의 땅이었다. '개화'라는 색깔로 전 세계를 덧칠하려는 '정신병적 근대문명=야만에 중독된 개화병자'들의 어불성설, 적반하장의 신식 무기와 협잡으로 얼룩진 외교술(사기술)에 나라와 주권을 빼앗긴 것은 사세(事勢)가 부득이하였으나, (서구적, 야만적) 개화(자본주의)의 길은 결코 우리에게 편안한 옷도 아니고, 행복한 신발도 아닌 / 그야말로 저고리에 양복바지 입히고 어릿광대로 내모는 폭력에 다름 아니었다. 모진 채찍질(총질)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그 몰인간의 지경에 정신줄을 놓아 버리고 소위 '친일'에 내몰린 사람도 부지기수였던 것, 그것이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10) 그러나 훗날 베트남에서, '베트남 땅에 사는 사람들'이 미제국주의의 그 주구로 파병된 한국군을 내몰았듯이, 우리 조선인들은 잠시 손발/마음-머리 속에서 놓쳤던 개벽적 근대/인간적 근대/한국적 근대/영성적 근대의 길을 되찾아, 절치부심, 정좌존심으로 새로운 날을 개척해 왔다.
(11) 민족의 원수인 '한국군 김상사'를 살려 돌려 보낼 수 없다며, 우리의 혁명 - 조국(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처단하고야 말겠다는 드엉을 막아서며, 후엔은 외친다 "사람이 없는 혁명이 무슨 소용이지?" "이 사람은 핏강에서 너를 구했어!" "난 이 사람의 아기를 가졌어!" 그러자 살기(殺氣) 등등하던 드엉도 김상사를 살려 보내기로 결심한다. 누나이자 동지인 '후엔'의 '사랑'과 그 뱃속에 있는 '새 생명'의 미래에 자신의 분노를 억누른 것이다. '사람이 있는 혁명' '사랑을 잃지 않는 혁명' '생명 존중의 혁명' 그것은 곧 "개벽"이다. 사람을 짓누르고 계급과 투쟁과 집권을 앞세우는 온갖 혁명은 결국 작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직 '사람이 있는 혁명 = 개벽'만이 유효하고, 새롭고, 영구적일 수 있다.
(12) 앞으로의 '블루사이공'은 과거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자주적 근대, 인간적 근대, 사람의 근대, 개벽적 근대, 생명적 근대의 전망과 희망과 소망(꿈)을 그려내는 뮤지컬로 다시 무대 위에 올려지기를 기대하며, 30주년을, 나 홀로 기념한다, 기억한다,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