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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담 Oct 19. 2022

과일가게 아저씨

그 해 먹은 과일들은 참 달고 붉었습니다.

앵두, 천도복숭아부터 사과까지.

밥은 걸러도 과일은 거르지 않고 먹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제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는 과일 파는 곳이 참 많았습니다.

마트는 물론이고, 길거리 상점에도 먹음직스러운 과일이 가득했지요.

저는 항상 같은 곳에 들러 과일을 샀습니다.

손님이 가장 많은 곳도, 가장 저렴한 과일을 파는 곳도, 깔끔하게 차려진 곳도 아니었어요.     


매일 아침 몸이 약간 불편한 회족(回族)* 아저씨가 분주하게 좌판을 깔고 과일을 올려내는 것을 보며 출근했습니다.

해가 어둑해질 즈음 저는 집에 돌아오며 아저씨가 팔고 남은 과일들을 샀습니다.

여전히 달고 맛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따금씩 정겨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겨울, 제가 귀국을 준비하며 매일같이  일이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짐은 하룻나절에 다 싸버렸습니다만,

단골 과일가게 아저씨께 “저 한국으로 돌아가요” 라는 말을 꺼내기 위해서는 몇 주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손님들 중 한 명일 텐데 이런 말을 하는 게 과하지는 않을까, 웃기지는 않을까 수십 번을 고민했습니다.

떠난다는 말에 뭐라고 답하면 좋을지 고민할 아저씨에게 괜한 고민거리를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괜히 사과 몇 개라도 더 얹어주시면 어떡하지, 걱정도 했었던 것 같아요.

    

펑펑 눈이 내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물들었던 2월의 어느 날, 저는 결국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저씨가 보실까 싶어 괜히 집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그 말 하나 꺼내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말이에요,

그 때의 저도 지금만큼이나 생각이 많았나 봅니다.     

제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 아저씨는 갑자기 얼굴을 보이지 않는 저를 기다리셨을까요.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실 때 ‘매일같이 찾아오던 한국 아이가 있었는데’ 라며 제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매일 같은 곳에서 과일을 팔던 아저씨,

아직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달콤한 행복을 나눠주시고 계신가요.

아마 당신은 영영 알 수 없을 테지만,

그 해 겨울의 타국살이가 힘겹지만은 않았던 이유를 저는 당신께 빚지고 있습니다.





회족(回族)* : 중국 내에 거주하며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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