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2
우리가 이번 두브로브니크에서 예약한 힐튼 임페리얼 호텔은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올드 타운의 시작점인 필레문 광장에 위치해있었다. 위치 하나는 아이와 여행하기에 끝내주게 마음에 들었다. 아직 아이가 중간에 낮잠을 자야 되는데, 이런 계단 많은 유럽 중세 도시에서 유모차를 끌며 아이 낮잠 재우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피곤해할 때면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는 호텔이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육아 여행 경험상, 만족도를 높여주었다.
우리는 각자 트렁크와 유모차를 끌고 호텔 입구에 들어섰다. 사실 호텔 이름만 듣고 세계 어딜 가든 볼 수 있는 비슷비슷한 디자인의 힐튼 호텔이겠거니 별 기대를 안 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이게 웬일, 기대 이상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호텔 곳곳에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어 따뜻한 연말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클래식한 디자인의 로비 옆 라운지도 나중에 우리 집도 이렇게 꾸미면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다. 여름 성수기에는 호텔값이 서너 배가 뛴다고 하는데, 우리가 여행 온 12월은 비수기라 아주 괜찮은 가격에 좋은 방으로 업그레이드까지 되었다.
문을 열고 발코니에 나가니 하늘엔 아직 꽉 찬 보름달이 중세 도시와 깜깜한 아드리안 해를 비춰주고 있었다. 시차를 맞추기 위해 그냥 잘까 하다가 시계를 보니 아직 5시 반. 겨울이라 그런지 이 곳은 4시만 지나면 어둑어둑해지다가 5시가 되면 마치 한밤중처럼 어두워진다. 이대로 잠이 들었다간 밤 11시가 되어 우리 셋 다 눈이 말똥말똥 떠질 것 같아 좀 피곤하지만 한 번 호텔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호텔에서 한 5분 정도 걸어 나오면 높은 두브로브니크 성벽이 나오는데 이 안으로 들어가면 마법처럼 중세 도시가 펼쳐진다. 구시가지의 서쪽의 파일 게이트(Pile Gate)에서 동쪽의 플로체 게이트(Ploce Gate)까지 이어지는 스트라둔 거리는 양 옆으로 상점, 레스토랑,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았는지 반들반들해진 대리석 바닥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마침 비가 내리다 멈췄는지 바닥은 더욱 반짝반짝하게 빛나고 있었다.
연말이 되면 파리나 런던 같은 큰 도시들은 더욱 북적거리지만, 두브로브니크 같은 유럽의 소도시들은 긴 겨울잠에 들어간다. 그렇다고 사람 하나 없는 유령 도시가 되는 게 아니라, 이들만의 방식대로 소박하게 크리스마스를 즐기게 되고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도 조용히 그들의 축제에 초대된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스트라둔 거리는 여름의 명동 같은 분위기에서 벗어나 이 곳에 사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씽씽이를 끌고 나와 불 켜진 트리를 구경하고, 동네 친구들 몇 명이 바에 모여 연말을 즐기는 곳으로 변한다. 사이좋은 형제들처럼 나란히 이어진 낮은 건물들은 누구 하나 튀려는 듯이 뽐내지 않고 서로 닮은 모습의 소박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놓았다. 마른 올리브 나뭇가지를 단단하게 엮은 것 같은 크리스마스 리스에 작은 빨간 방울을 달아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하기도 하고 가게 입구를 장식해놓기도 했다.
저녁을 먹기도 뭐하고, 안 먹기도 뭐한 시간. 우린 길거리에 늘어선 노점에서 핫도그 하나씩 사 먹기로 했다. 스트라둔 거리에는 약 10개의 노점들이 있었는데 가게들마다 각자의 레시피와 재료들이 달라서 골라먹을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간 가게는 엄마와 아들이 함께 만들고 파는 곳이었는데 주문을 하면 빵을 바삭바삭하게 구워 따뜻한 소시지와 취향에 맞게 피클, 케첩, 마늘 소스를 넣어서 냅킨에 싸주었다. 장소가 주는 마법 때문인지 정말 간단한 재료들로 환상적으로 맛있는 핫도그가 완성되었다. 아이와 나와 남편은 사이좋게 핫도그를 하나씩 입에 물고 스트라둔 거리를 구경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이 멋진 거리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궁금해졌다.